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지 2년을 맞았다.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정해진 법률이 법원에선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5차례에 걸쳐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을 분석해 법 적용의 한계와 개선점을 모색한다. <편집자>

①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솜방망이 처벌’ 답습
② ‘후진국형 재해’ 대부분, 법원은 ‘피해자 과실’|
 법원도 입법취지 주목, ‘적당주의’ 안 통했다
④ ‘고의성’ 짙은 검찰, 구형량 낮고 회장님 불기소
⑤ 기업은 ‘바지사장’ 로펌은 ‘경영책임자 방어’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해 다음 각호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4조에서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정의하고 있다. ‘사업장 특성’이 핵심이다. 사업장 특성과 규모에 따라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마련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라고 주문한다. 구체적인 사항은 하위 법령인 시행령 4·5조에 규율하고 있다. 사업주는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나아가 유해 및 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 절차 등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령이 정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는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어떻게 적용됐고, 사법부는 이러한 입법취지를 어떻게 봤을까. <매일노동뉴스>가 2022년 1월27일 법이 시행된 이후 선고된 13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사법부의 시각을 살펴봤다.

무늬만 컨설팅에 법원 “일반적 경험 적용 불과”

법원은 사업주의 ‘형식적인’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5호 선고’인 건륭건설 사건이다. 건륭건설 대표 A(52)씨는 30대 하청노동자 B씨가 2022년 3월9일 오후 12시50분께 고양시 덕양구 한 상가 신축공사 현장의 크레인에서 떨어진 약 190킬로그램의 철근에 머리를 맞아 숨진 사고와 관련해 기소됐다. 두 줄로 걸려야 했던 철근 중 한 더미가 ‘한줄걸이’로 묶였던 탓에 풀리면서 노동자를 덮친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사고는 예견됐다. 공사현장 주변에는 약 6미터 높이의 펜스가 둘러싸여 있어 크레인 기사가 현장 내부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량물 낙하를 대비한 작업계획서나 작업지휘자는 없었다. 현장소장은 오후 1시까지 점심 식사를 이유로 현장을 비웠다. 검찰은 A씨가 최소한 고용노동부 고시인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이 정한 기준을 지켰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안전매뉴얼에 ‘일반적인 절차’만 기재해 실질적인 위험요인을 찾아낼 수 없었단 의미다.

법원 역시 ‘사업장 특성’을 외면한 부분을 강하게 질타했다. 형식적인 안전보건 컨설팅과 매뉴얼만으론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 매뉴얼은 일반적인 공사현장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일 뿐 이를 ‘공사현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작업기간 중 작성된 위험성평가표도 다른 공사현장의 경험을 기초로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위험성평가표에 ‘한줄걸이’에 대한 평가가 누락돼 위험요인 개선 절차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부 ‘자기규율’ 방침 배치, 실효성 의문

사법부의 이러한 시각은 노동부 방침과 결이 다르다. 노동부는 2022년 12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다. 위험성평가에 노사가 참여하도록 계획했지만,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 등 형식적인 조치에 치중됐다는 비판이 노동계 위주로 나왔다. 노동부는 위험성평가 결과를 수사자료에 넣어 양형에 고려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원 판단에 따르면 ‘자기규율’ 계획만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선고된 13건의 판결 중 사업장 특성과 규모를 고려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진 경영책임자만 11명에 달하고, 혐의 전부 유죄로 인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과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은 경영책임자의 적극적인 역할로 꼽힌다.

중대재해전문가넷 소속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검찰과 법원은 원청의 구체적인 위험성 평가가 없었을 경우 안전보건 관리체계 미이행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위험성 평가에 따른 안전보건관리자의 업무수행 평가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역시 처벌될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 이행 여부가 실무에서 엄격히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판결 경향성을 보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이행에 그치거나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반적 절차만을 규정한 경우는 의무 불이행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형식적인 의무이행은 의무 불이행으로 판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이행이 이뤄져야만 경영책임자의 처벌이 경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헌 신청 판단도 일관돼 “기업별로 특수성 달라”

위헌성 논란에서도 ‘구체성’을 강조한 법원 시각이 드러난다. 법원은 ‘1호 기소’로 집단 독성간염이 발생한 두성산업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지난해 11월3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두성산업측이 주장한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은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결정문을 보면 ‘사업장 특성’이 반영됐다.

재판부는 “기업은 각기 다른 유해·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어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해·위험요인을 확인·개선하는 절차를 일률적으로 정하면 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조항이 명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 역시 유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2022년 1월 일선 검찰청에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에 따르면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여부는 법률 문언만으로 충족한다고 해석했다. 다만 ‘고의성’이 드러나면 처벌이 가능하다.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을 경우 ‘현저한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점이 입증됐을 때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해예방을 위한 예산 마련 역시 경영책임자가 예산편성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이를 이유로 형사처벌이 될 수는 없고, 시스템을 방치했을 때만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봤다.

지금까지 판례는 작업계획서나 위험성평가 실시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 유죄로 판단하고 있다. 판례가 축적되면 원·하청 모두에 경영책임자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에서 연구를 담당한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언은 사법부 해석으로 일부 보완될 여지가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