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어고은 기자

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는 이미 우리 사회에 상당한 규모를 쌓았지만 여전히 특수하다는 고정관념에 시달린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들의 일을 조명하고 노동권과 기본권 현황을 비정기적으로 연속보도한다.<편집자>

온라인 학습지교사로 일하는 박희연(50·가명)씨는 4대 보험 가운데 가입 자격이 없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제외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납입하고 있다.<본지 2024년 1월31일자 6면 “[보통의 일 ①] 고용·산재보험 확대? 방치된 온라인 학습지교사들” 참조> 한 달 실적에 따라 들쑥날쑥한 수입 탓에 매달 납부가 부담이다. 2022년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학습지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고객도 많아 소득이 컸지만, 코로나19 비대면 특수가 가라앉은 뒤에는 시장이 조정기를 겪고 있어 수입도 급감했다.

전년도 소득 기준 책정하는 보험료
들쑥날쑥 ‘변동성’ 큰 특고에 이중부담

그러나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보험료는 전년도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2022년 소득이 많았던 시절의 보험료를 수입이 반토막 난 2023년에 내는 것이다. 박씨는 “보험료 부담이 커서 차라리 일을 관둘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털어놨다.

건강보험은 상실감이 크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있었지만 일을 시작하자 직장가입자로 전환됐다. 보험료 절반을 사용자가 납부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 자동차 등을 고려해 보험료를 전액 직접 납부해야 한다. 박씨는 “한때 높은 소득을 올렸어도 평균적으로는 결국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무는 돈을 받고 있다”며 “여기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내기도 빠듯해서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은 노후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 온라인 학습지업체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40대 이상 중장년 여성이 수입이 필요해서 시작하는 게 학습지인데 수입이 달마다 천차만별이라 납부가 어렵다”며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국민연금이라도 갖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데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른 노동자처럼 국민연금을 회사와 반반 나눠서 납부하면 적립액도 더 커질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120개월(10년) 납입하면 수급자격을 부여받고, 출생연도에 따라 65세부터 일정액을 수령하는 방식이다. 기간을 채우고도 추후납부 방식으로 연금액을 높이면 수령액도 높일 수 있다.

실업급여 받는 종이 학습지교사, 못 받는 온라인 학습지교사

이들에게 4대 보험 여부는 생활의 차별 요소가 되기도 한다. 김씨는 “4대 보험이 안 되니까 대출을 이용하기 어렵다”며 “창구에서 문의하면 4대 보험 적용 여부를 묻는데 그럴 때마다 4대 보험 적용 여부가 신분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을 때 4대 보험 납부여부가 절대적이진 않지만, 소득증명 등 절차가 다소 번거롭다.

사회보장만 놓고 봤을 때 온라인 학습지교사와 종이 학습지교사 간격차는 크다. 종이 학습지교사는 고용·산재보험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것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수령액이 낮은 건 문제다. 학습지교사가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대부분 소득감소다. 소득감소를 충족하려면 이직일(퇴사) 전 3개월 평균임금이 전년도 같은 기간 임금보다 30% 이상 줄어야 한다. 이렇게 자격이 인정돼도 하한액 기준까지 있으므로 실수령액은 100만원 미만으로 감소한다.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장은 “초기 소득감소를 관리자가 인정하지 않고 강짜(시샘)를 부리거나,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관계자가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 혼선도 있었지만 최근엔 대부분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노조가 조직돼 단체협약까지 체결한 덕분이다.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 전환 논의 물꼬
보험업계 등 재계 “사용자 부담 커”

일각에서는 학습지교사 같은 특수고용직의 국민연금을 사용자가 절반 납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도 임금노동자의 경우 보험료 절반을 사용자쪽이 낸다.

전문가들은 지역가입자가 국민연그 전액을 납부하는 것은 노동자성을 의제로 삼아온 고용·산재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이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국민연금에서 사업장 가입 대상자인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자’로 규정되나 지역가입자는 ‘사업장 가입자가 아닌 자’로 광범위하다”며 “특수고용직은 종속적 노동을 할 뿐 아니라 사회보험 가입과 가입 유지에 필요한 정도의 노무제공관계 지속성을 갖고 있고 학습지교사를 비롯한 일부 업종은 전속성도 상당해 국민연금 보호의 법적 근거와 행정의지만 있다면 사업장 가입자로의 포괄하는 접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업장 가입 전환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정책당국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현황조사에 따르면 사업장 가입 전환 필요성은 커진다. 서비스연맹이 지난해 11월28일~12월10일까지 1천183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의 노후대책을 조사한 결과 미가입자 276명(23.33%), 납부유예자 114명(9.64%)으로 나타났다. 미가입 사유로는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다(59.63%)”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가입자 대부분(87.83%)은 지역가입자였다.<본지 2024년 1월23일자 12면 “특고·플랫폼 노동자 4명 중 1명은 국민연금 미가입” 참조>

학습지교사 같은 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를 직장가입자로 전환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법에 노무제공자가 국민연금 직장가입자가 되도록 하는 특례조항 설치가 뼈대다. 또 이들의 사용자로 플랫폼 등을 명시해 보험료 납부의 주체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냈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11월3일 발의된 법안은 지난해 12월19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올랐고 2차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개정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학습지업체 외에도 개정의 영향권에 있는 특수고용·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들은 보험료 부담 상승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특히 다수의 보험설계사를 고용한 보험법인대리점(GA)을 중심으로 기업부담이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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