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국민카드 유튜브 갈무리

국내 대형 카드사인 KB국민카드 대리점에서 총무업무를 담당한 보험설계사가 ‘임신 퇴사’를 종용당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위원회는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위임계약을 체결한 ‘사용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해고가 인정되지 못했다. 보험사 지점으로부터 실제 업무 지휘·감독을 받았으나 소속은 카드사였던 탓이다. ‘숨은 사용자 찾기’에 보험설계 관련 종사자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수형태 종사자 육아휴직 없다” 으름장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에서 근무한 김아무개(34)씨는 지난해 10월11일 해고됐다. 2022년 6월 입사한 지 1년5개월 만이었다. 복잡한 ‘계약 상대방’ 문제가 뇌관이 됐다. 같은 장소에 근무하지만 소속은 달랐다. KB국민카드는 2014년 KB생명보험과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보험계약 업무를 위탁받았고, 지점에서 이를 담당했다.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에서 일하다가 육아휴직 문제로 해고된 김아무개(34)씨가 동료 총무와 휴일 문제로 대화하는 내용. 지점장이 연차휴가 등 인사를 관리했다. <김씨 제공>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에서 일하다가 육아휴직 문제로 해고된 김아무개(34)씨가 동료 총무와 휴일 문제로 대화하는 내용. 지점장이 연차휴가 등 인사를 관리했다. <김씨 제공>

TM 보험설계사였던 김씨는 KB국민카드 소속이었지만, 실제 KB생명보험의 상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반면 지점장 A씨와 교육실장 B씨는 KB생명보험과 위임계약을 맺고 일했다. 김씨는 B씨 권유로 2022년 10월 보험설계사를 보조하는 ‘보험 총무’로 업무가 전환됐다. 총무의 계약형태는 고객 모집과 유지에 따른 수수료를 받아가는 위임계약이었다.

그런데 김씨가 임신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김씨는 그해 10월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문제로 교육실장 B씨에게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교육실장 B씨는 “배가 부르면 회사를 다닐 수 없잖아. 언제까지 다니는 거야”라며 김씨에게 퇴사를 종용했다. 그러면서 지점에는 육아휴직 제도가 없어 임신하면 계속 일을 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특수고용직이란 ‘약점’도 파고들었다. B씨는 “넌 3.3% 세금만 떼잖아. 특수형태 종사자라 육아휴직 개념이 없고 원래 연차도 없어”라며 “연차도 지점장이 만든 거 알지? 그래서 지점장이 연차 기준을 정하는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돌아온 건 ‘계약해지 통보’ 결국 노동위로

지점장인 A씨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닷새 뒤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신청서를 작성해 A씨에게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지점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B씨와 재차 면담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계약종료’였다. B씨는 지점장 재량으로 연차를 제공했고 임신해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씨는 ‘퇴사 의사’가 없다고 누차 말했지만, B씨는 “네가 그만두는 게 아니고 잘리는 거야.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할 수 없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실제 지점은 김씨에게 계약종료와 관련한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10월12일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지점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6일 만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쟁점은 △김씨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 △근로자에 해당한다면 해고 존재 여부 △해고가 존재한다면 해고의 정당성 여부가 다퉈졌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해고 존부 판단까지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성 인정됐지만 “해고 권한 없어”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에서 일하다가 육아휴직 문제로 해고된 김아무개(34)씨의 업무용 책상. 업무지시 내용과 각종 연락처, 일정표로 빼곡하다. <김씨 제공>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에서 일하다가 육아휴직 문제로 해고된 김아무개(34)씨의 업무용 책상. 업무지시 내용과 각종 연락처, 일정표로 빼곡하다. <김씨 제공>

서울지노위는 지난달 14일 김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총무업무는 사실상 카드사에 의해 정해지므로, 김씨가 국민카드에 종속됐다는 취지다. 지노위는 “김씨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총무업무를 했더라도 이는 단순·반복적인 총무업무 특성에 기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자율적으로 업무 범위와 내용을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총무업무와 보험설계사 업무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부분도 작용했다.

그러나 ‘해고’가 이뤄졌다고 보지 않았다. 김씨는 마지막 면담일에 B씨로부터 계약해지 구두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혼재’된 소속이 발목을 잡았다. 지노위는 “지점장과 교육실장이 김씨에게 실질적으로 업무지시에 관한 권한을 행사한 사정은 확인된다”면서도 “그러나 KB국민카드가 생명보험사 소속인 지점장이나 교육실장에게 근로관계 종료에 관한 권한까지 위임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점장과 교육실장은 계약해지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특히 KB국민카드가 직접 계약관계 종료를 통보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B씨가 계약을 해지한다고 말한 점도 KB국민카드의 해고 결정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김씨가 계약관계 종료 여부를 문의하거나 출근을 시도해 보지 않은 부분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노위는 “KB국민카드는 일관되게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며 “(KB국민카드는) 김씨의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유지했고, 2023년 10월 보수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만, KB국민카드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육아휴직 요청에도 카드사 ‘묵묵부답’

결국 인사권한이 없는 지점측이 계약해지를 통보한 셈이다. KB국민카드는 어떠한 응답도 없는 상태다. 위임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하지 않아 여전히 계약이 존속한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내용증명을 보내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신청서를 재차 제출했다. 하지만 KB국민카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상자가 아니라고 회신했다.

노동자성이 인정된 지노위 판정에 김씨는 다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KB국민카드 답변은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고용노동부로도 향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진정했다.

특수고용직은 육아휴직 제도조차 누릴 수 없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김씨를 대리한 이상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비젼)는 “노동부와 정치권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6+6 육아휴직 등 정책을 연일 내놓고 있지만, ‘근로자’가 아니면 제도를 사용하기가 너무나 힘든 현실”이라며 “임신과 출산이 축복이 될 수 있도록 대기업이 모범을 보여야 하고, 노동부도 모성보호제도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점장 A씨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그는 “나 자신도 촉탁직 보험설계사인데, 어떻게 육아휴직의 권한이 있겠느냐”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해당 보험설계사는 위촉계약직으로 업무지시나 인사노무관리에 관여한 바 없고, 따라서 별도의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는 해당사항이 없다”며 “근로자성 관련 내용은 분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요구했다가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김아무개(34)씨가 근무하던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 내용.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문>
육아휴직을 요구했다가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김아무개(34)씨가 근무하던 서울 마포구의 KB국민카드 보험판매 TM(텔레마케팅) 지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 내용.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문>

다음달 출산 앞둔 해고자 “KB국민카드가 사용자? 대표 본 적 없다”

김씨는 출산을 불과 20일여 앞두고 있다. 지난해 6월 임신과 거의 동시에 회사에 알렸지만, 돌아온 것은 동료의 차가운 시선과 퇴사 종용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사용자가 KB국민카드라는 이유로 구제가 어렵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그는 ‘사용자 찾기’가 이렇게 힘든지 이번 일을 계기로 체감했다고 토로했다.

“계약서에 적힌 KB국민카드 대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SNS나 이메일을 통해 업무를 지시한 건 모두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해고가 없다는 이유로 육아휴직을 쓸 수조차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이번 일을 통해 다른 특수고용직에게 희망이 되고 태어날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