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2006년 이후 정부가 수백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저출생 대책을 내놨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떨어져 역대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위기가 커지면서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둔 핵심 공약으로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남성의 육아 참여가 확대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하고, 비임금 노동자에게도 일·가정양립 제도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공통으로 담겼다. 인식과 정책의 일부 진전이 보이지만 현재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대책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컨트롤타워 신설,
부모 육아 참여 확대 위한 제도 정비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저출생의 원인을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성차별적 노동시장, 주거·고용 불안에 있다는 인식에는 여야가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저출생 정책도 공통된 흐름이 엿보인다. 먼저 여야는 각각 저출생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부처인 인구부(국민의힘), 인구위기대응부(더불어민주당)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출산·육아휴직 제도 정비도 공통된 주장이다. 여당은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만으로 자동 개시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배우자의 출산휴가 1개월(유급) 의무화를 공약했다. 현재 배우자 출산휴가는 10일로, 의무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부모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자동 육아휴직이 되게 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다만 저임금 노동자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에 50만원 상당의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 지급을 주장했다.

비임금 노동자도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적용받게 하자는 주장도 같다. 민주당은 취업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를 가진 모든 국민에게 출산·육아급여의 보편적 보장을, 국민의힘은 2025년에 특수고용직·예술인·자영업자·농어민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일·가정양립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측면은 두 당의 공통분모”라며 “여야 불문하고 이런 안이 나온 것에 대해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당 “동료수당 신설, 육휴 기업지원”
VS 야당 “결혼·출산지원금, 아동수당”

국민의힘
국민의힘

 

차이점도 눈에 띈다. 여당은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회사 내부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동료수당 신설, 기업 지원금 확대 등을 내놨다. 반면 야당은 소득분위를 따져 지원하던 기존 제도를 보편적으로 확대하고, 아이를 낳는 청년세대의 현금·자산 지원 확대에 방점을 뒀다.

국민의힘은 일·가정 양립제도를 잘 운영하는 가족친화 우수 중소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하고, 중소기업 육아휴직 대체인력지원금 2~3배 확대, 육아 동료수당을 신설하는 식의 대책이 주를 이룬다. 반면 민주당은 주거대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 자녀를 출산하면 24평 분양전환 공공임대를 지원하고, 세 자녀 출산시 33평 분양전환 공공임대 제공한다. 현금지원 정책이 특히 많은데 △결혼하는 부부에게 소득·자산과 무관하게 가구당 10년 만기로 1억원 대출 △8~17세 자녀에 월 20만원씩 수당 지급 △출생 후 고교 졸업때까지 아이가 크면 자립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정부가 월 10만원씩 펀드 적립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공공임대 확대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긴 하지만, 청년세대가 원하는 직주근접한 곳에 공공임대를 확대하지 못한다면 효과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세대·계층 간 타협 위한 정치 필요”

과연 여야의 공약은 저출생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센터장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표 나올 만큼 만든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이 센터장은 “저출산의 핵심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청년의 문제인데 두 정당은 아이를 낳는 가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특히 민주당의 경우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 센터장은 “지금은 (개별) 정책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계는 한참 지났고, 세대·계층 간 타협을 이끌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부동산·교육 시스템 등 총체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단 의미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약은) 주로 출산에 대한 보상으로, 노동시장이나 일하는 환경 개선을 포함하지 않은 반쪽짜리 정책”이라며 “노동시간이나 시간주권의 문제가 남녀 불문하고 (노동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절대적인 노동시간 양을 줄이고,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공약에는 근로시간에 대한 고민은 완전이 빠졌고, 국민의힘은 ‘육아기 유연근무 취업규칙·근로계약서·정기적 공지 의무’를 내세웠지만 유연근무 확산을 독려할만한 충분한 해법은 없는 상태다.

아이 낳으면 대출 감액?
“모욕적으로 들려, 현실 인식은 0점”

양육자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서울에서 사는 한나정(43·가명)씨는 “아이를 낳으면 얼마 주고, 대출(이자·원금)을 감해 준다는 게 되려 모욕적으로 들렸다”며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그냥 불편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낳고 기르는 일은 굉장한 노동과 정성이 필요한 것으로 전인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이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얼마만큼 희생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보고 커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8살 자녀를 키우는 김동환(가명)씨는 “정책을 보니 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지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이를 키울 때는 턱이 있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둘 중 한 명은 휴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정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남녀 고용률, 임금격차 등 성평등 수치는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격차는 크다. ‘2023년 여성경제활동백서’에 따르면 2022년 고용률의 성별 격차는 여전히 18.6%, 시간당 남성임금 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70%에 달한다. 2019년 맞벌이 가구 기준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87분으로 남성(54분)의 3배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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