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

한국의 출생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다. 올해 8월 출산율은 1년 전보다 12.8%나 감소하면서, 이제는 최초의 소멸국가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출생의 원인은 간단치 않다. 형제자매와 친밀감을 경험하지 못한 외동의 시대, 많은 혜택만큼 더 경쟁적인 학업과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장기간의 정규직 취업준비와 비정규직 일자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연애와 결혼의 자유를 저당잡히고, 부모될 권리를 선택하기에 일터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실타래처럼 물려 있는 사회구조를 살펴야 한다. 특히 삶을 지탱하는 일자리 환경은 부모의 권리를 선택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200년의 산업화 기간에 걸쳐 어떻게 성별 소득과 고용률 격차가 나타났는지 연구한 노동경제학자다. 골딘 교수는 ‘여성이 육아를 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은 부부 사이 형평성을 깨뜨리고 남녀의 임금 차이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매년 1위(31.1%)다. 같은 회사, 같은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성별 임금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다. 특히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결혼 이후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성별 임금격차가 지난 2019년 36.7%, 2020년 35.9%, 2021년 38.1%였던 것에 비해 올해 30% 초반대로 낮아졌지만, 올해 출산율의 급감을 보면서 성별 임금격차 개선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출산휴가 직후 자동으로 육아휴직을 개시하는 자동 육아휴직제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육아휴직 사용을 활성화해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줄이고 여성이 출산 자체를 꺼리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육아휴직 신청시 회사의 승인 절차를 없애는 절차 개정 수준으로 내용을 축소했다.

육아휴직 제도의 문제는 우선 육아휴직 사용이 여성에게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출생아 100명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노동자가 21.4명인 반면 남성은 1.3명이다. 육아휴직 사용은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 낮은 고과평가와 임금차별, 돌봄을 이유로 한 일자리 상실의 위험까지 고용상 성차별로 나타난다.

성별 임금격차와 저출생 문제에 동시에 대응하려면 “일하는 사람의 표준”을 ‘육아를 해야 하는 노동자’에 맞추는, 통상의 노동조건의 기준인 인간상을 바꾸는 인식의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서 남녀 노동자 중 누가 육아를 부담할 것인가, 부모의 육아선택권이 아니라 남녀 노동자 모두 육아에 참여하도록 하는 “의무 육아휴직제”가 도입돼야 한다. 노동자가 신청권을 행사할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를 사용하려면 모든 노동자에게 반드시 부모로서의 육아휴직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용자의 의무’로서 접근하는 것이다.

또한 육아휴직 사용이 더 임금이 낮은 여성에게 전가되는 이유는 낮은 육아휴직급여 때문이다. 한 가족이 더 늘어난 육아가정에서 통상임금의 75%(사후지급금 공제)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다. 한국의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은 44.6%로 OECD에서 최저 수준이다. ‘의무 육아휴직제’를 도입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소득대체율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고용보험기금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출생 위기는 이제 국가 존립 문제다. 조세재정을 기반으로 육아휴직 제도의 전면적인 정비를 검토해야 한다.

한편 ‘의무 육아휴직 제도’의 전제조건은 육아휴직자를 대체할 대체인력 확보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발생하는 육아휴직 규모를 반영한 회사의 “상시적인 인력수급 계획”이 수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육아휴직 정부지원금을 신청할 때, 상시 육아휴직 규모를 반영한 인력수급 계획을 제출하도록 사용자 의무를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일수록 육아휴직 사용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300명 미만 사업장에 정부지원금 투입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 노동자, 자영업자도 육아휴직 접근권을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비정규직 및 소상공인 지원대책과 직종별 대체인력풀 구성 등 추가적인 정책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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