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을까. 2024년을 달굴 최대 노동 판결 이슈는 ‘원청 사용자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당정의 반대로 막혔던 만큼 대법원 판결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이 원청의 교섭의무를 인정한다면 사실상 입법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 지배력’ 확립·파기 중대 갈림길

‘원청 사용자성’ 쟁점으로 가장 주목받는 사건은 ‘HD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사건이다. 대법원에서 5년째 심리 중이다. 올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 입법보다 현대중공업 소송 결과가 더욱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대법원 결론에 시선이 집중돼 있다. 특히 대법원이 2010년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현대중공업 사건’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로 한정된 반면, 지금 계류 중인 이번 사건은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직접 청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감도 다르다.

그러나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의 큰 줄기는 이번 사건에서도 중요 쟁점으로 심리될 전망이다. 2010년 3월 당시 대법원은 ‘사용자’를 두고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면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의무를 부담하는 노조법상 사용자라는 의미다.

관건은 원심 파기환송 여부다. 1·2심은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모두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노조는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측 손을 들어줬다. 하청업체가 스스로 업무를 지시하며 임금체계를 결정해 ‘독립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원심 파기 관건, CJ 대한통운 사건 등에 영향

당시 하급심은 “하청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독립성을 잃어 제3자의 노무 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형식적·명목적으로 운영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청이 실질적으로 하청업체에 지배·결정권을 행사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권 행사에 관한 증거를 두고 대법원에서 공방이 치열한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측은 2018년 12월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 1부에 배당된 상태다. 현재까지 무려 여덟 차례나 보충서면이 제출되고, 사측에서 답변하는 등 법리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도 관심사다. 다만 법조계는 기존 판례가 없었기 때문에 판례 변경이 필요한 전원합의체가 아닌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본다.

만약 대법원이 현대중공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경우 미칠 파급력은 상당하다. 당장 이달 24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된 ‘CJ 대한통운 부당노동행위 사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CJ 대한통운 사건 2심 판결이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단보다 먼저 나오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든 대법원까지 다툴 확률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1심은 지난해 1월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라며 사측 청구를 기각했다. 사측은 “실질적 지배 결정권을 위주로 단체교섭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지위를 확대 해석할 경우 교섭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난제들이 초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심이 진행 중인 현대제철의 부당노동행위 사건도 마찬가지다. 서울행정법원에서 다섯 차례 변론이 열렸다.

통상임금 ‘재직자 조건’ 대법 결론에 시선

‘통상임금의 재직자 조건’ 소송도 주목해야 할 사건이다. 세아베스틸 소송 결론에 노동계 관심이 쏠려 있다. 각종 수당을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할 때 통상임금이라고 본 판결이 바뀔 경우 임금 구성과 항목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9년 세아베스틸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4년 넘게 심리 중이다.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2013년 대법원 전웝합의체 법리는 무너진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재직자 조건은 통상임금 요건인 ‘고정성’을 부정하는 지표라고 판단돼 왔다.

최근 법원 흐름은 바뀌는 추세다. 하급심은 재직자 조건 자체를 무효로 보거나 ‘일할 규정(퇴사시 일한 만큼 나눠 지급)’이 없더라도 근로 대가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022년 11월 금융감독원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이나 지난해 11월 삼성화재 통상임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2020년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며 기류가 바뀌었다. 당시 대법원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재직자 조건과 일할 정산 규정을 함께 두고 있는 경우,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기상여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취지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세아베스틸 사건도 이러한 판례 경향을 이어 갈지 주목된다. 세아베스틸 소송의 2심 법원인 서울고법은 2018년 12월 최초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며 기존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 판결이 인용되면 소송이 제기된 지 약 10년 만에 통상임금 판단 기준이 바뀌게 된다. 세아베스틸도 금감원처럼 퇴직자에 대한 일할계산 규정이 없다. 2심 판결이 올해 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되면 과거 대법원 판례에 따라 통상임금을 계산했던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보면 통상임금 분쟁 ‘2라운드’에 돌입할 전망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성과급 임금 포함, 사기업도 확장할까

‘민간기업 경영성과급의 평균임금성 사건’ 역시 대법원 결론을 남겨 두고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 임금 소송이 대상이다. 2022년 1월 2심에서 경영성과급의 평균임금성을 인정하자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경영성과급은 노동 관행 등에 의해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는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의 성질을 가지므로,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에 해당한다는 게 하급심 판단이었다.

심리불속행 기간인 4개월이 지나 대법원 2부가 법리·쟁점에 관해 종합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급의 임금성이 인정될 경우 이를 평균임금에 포함시켜 다시 퇴직금을 계산해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사용자에게 부과된다. 서울보증보험 퇴직자들의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2022년 6월 성과급이 평균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해상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유사한 민간기업 사건에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복잡한 법리 해석으로 올해 결론 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이 밖에도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타다 운전기사’ 사건도 대법원에서 최종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심 판결이 지난달 21일 나온 만큼 대법원 판단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도 속속 하급심 판결이 이어지고 있어 지난달 28일 대법원에서 선고된 ‘한국제강 사건’에 이어 대법원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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