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김해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대흥알앤티의 국소배기장치 모습. 대흥알앤티 노동자 13명은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돼 급성간염을 일으켰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노동자들이 집단 급성간염을 일으킨 ‘두성산업’ 사건에서 독성물질이 든 세척제를 납품해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세척제 납품업체 대표에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보다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됐다.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죄가 중대재해처벌법보다 법정형이 낮아 처벌의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화관법 법정형 중대재해처벌법보다 가벼운데
납품업체 대표만 법정구속

두성산업의 천성민 대표는 지난 3일 창원지법 형사4단독(강희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두성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소(8호 선고)’이자 첫 직업성 질병 중대재해 기업이다. 천 대표는 지난해 2월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국소배기장치를 갖추지 않아 노동자 16명에게 급성중독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반면 세척제를 판매한 유성케미칼의 윤승지 대표는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유성케미칼 대표는 트리클로로메탄이 10% 이상 함유된 세척제를 알리지 않은 채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에 세척제를 납품했다. 대흥알앤티는 두성산업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13명이 급성 독성간염에 걸렸지만, 국소배기장치 등을 설치해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했다. 송영수 대흥알앤티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법정형은 화학물질관리법의 두 배 이상 엄중하다. 하지만 유성케미칼 대표는 두성산업 대표보다 두 배 무거운 선고형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6조2항)에 따르면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반면 화학물질관리법은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29곳에 팔았는데 2곳만 탈나” 발뺌
세척제 납품업체 대표 ‘책임회피’로 재판에 불리

유성케미칼 대표가 두성산업보다 형량이 높았던 데는 ‘책임회피’식 대응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성케미칼측은 재판에서 ‘세척제를 공급받은 다른 업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대표는 지난 9월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판매한 업체가 29곳이 되는데 이 중 두 업체만 탈이 나 이해가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법원은 이 부분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다른 업체들이 공급받아 사용한 세척제의 양·사용기간·노출 횟수 등에 관한 객관적·구체적 자료 없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요건을 갖춰 영업허가를 올해 7월1일까지 받도록 하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유독물질의 지정고시’ 시행 이전에 세척제를 구입해 판매했으므로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의 자체점검 미이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윤 대표측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세척제에 트리클로로메탄을 다량 넣은 이유가 고시 부칙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관할 관청에 정식으로 문의해 보지도 않은 채 만연히 종전과 같이 트리클로로메탄을 85%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오인한 자체로 죄책이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윤 대표의 법정 언행과 태도를 봤을 때도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경각심’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두성산업 의무 위반, ‘처벌불원’ 이유로 감형

그런데 재판부는 두성산업 대표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형량은 낮췄다. 두성산업 대표는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및 반기 1회 이상 점검(시행령 4조3항)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시행령 4조5항)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두성산업측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했다”며 “사고가 허위로 작성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로 인해 트리클로로메탄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바람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험성평가 매뉴얼이 사업장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구축됐다면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됐을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 두성산업은 2021년 9월까지 염화메틸렌을 세척제로 사용하면서도 위험성평가 결과보고서에는 국소배기장치 설치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업무수행 평가기준’ 역시 재판부는 관리직에 대한 인사평가에 불과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어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피해자들과 합의 △피해자들의 선처 탄원 △피해자들의 건강상태 회복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양형이유는 앞선 7번의 선고와 유사하다. 2호 선고로 2심에서 원청 대표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된 ‘한국제강 사건’을 제외하면 ‘처벌불원’이 양형에 작용했다.

전문가들 “형평성 맞지 않아, 실효성 제고 미흡”

전문가들은 집행유예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흥알앤티 피해자들을 지원한 김태형 변호사(김태형 법률사무소)는 “해당 사업장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조치사항은 의무이행의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미를 명확히 한 유의미한 해석”이라면서도 “두성산업 대표의 형량은 사전적인 체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화학물질관리법에 비해 법정형이 높은데도 유성케미칼 대표에게만 실형을 선고한 것은 법 취지와 처벌의 형평성에 비춰봐도 양형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이 무죄로 판단된 데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무성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노동위원장은 “유독물질이 시설 결함 등으로 보관 장소에서 밖으로 새어 나간 것이 아니라는 재판부 결론이 나온 데는 검찰의 구체적 반박이 결여된 측면이 있다”며 “사용자 봐주기식 수사 한계가 재차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상 직업성 질병에 대한 첫 사법부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는 보상 중심이었는데, 이제 책임의 문제를 따지기 시작해 의의가 크다”며 “화학물질 공급망을 아우르는 책임의 체제와 고의로 인한 잘못된 정보 전달의 문제, 화학물질 노출 저감의 필요성이 환기됐다”고 진단했다.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사업장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해야 하고, 안전보건 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 평가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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