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정년연장 없는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은 국민연금 개악이며 허상이다. 진정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법정 정년부터 연장하라.” 국민연금 받는 나이를 올려 재정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정부 연금개혁안이 나온 가운데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위한 고령자고용법 및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 발의 국회 신속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지난 5일 열었다. 한국노총은 “지난 연금개혁 때 수급개시연령을 늦춰 연금 받을 때까지 5년간 소득 없이 살아야 한다”며 “정년연장 없는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은 개악이며 허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현행 법적 정년연령 60세를 64세로 연장하라고 촉구했다.(2023년 10월6일자 매일노동뉴스)

지난 8월 정년연장 법제화를 위한 관련 법률 개정안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한 한국노총은 지난달 5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에 회부된 상태인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서 한국노총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년연장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출산율 저하로 급격한 인구감소 추세 속에서 “고령노동자들이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실질 퇴직연령을 늦추기 위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시대적 당면과제”라면서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임금·단체협상 투쟁에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도 요구한 것이다.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요구한 한국노총과 달리 직접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이만 “정년연장하라”는 목소리는 같았다. 비록 관철하지 못한 채 꼬리를 내려 요구안에 불과한 것이 돼버렸지만, 어쨌건 이렇게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2. “정년연장 반대한다.” 최근까지 프랑스에서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외치며 시위와 파업을 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하면서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려 하자 이에 반대한 프랑스 노조는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올해 1월부터 프랑스 노동운동은 대대적으로 정부가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데 반대해서 투쟁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2010년에도 62세로 정부가 정년연장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투쟁을 전개했다. 프랑스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이 나라 노동자와 노동운동과는 반대로 투쟁했던 것이다.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는 투쟁의 규모나 강도로 보자면, 기껏해야 국회 입법청원에 5만명 서명을 조직하고, 사용자에게 요구해 교섭을 한 정도를 훨씬 넘어서 수백만 명이 참여한 시위와 파업을 전개했던 프랑스 노동자의 투쟁과 이 나라의 경우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요구 자체만을 살펴보자면, 분명히 서로 반대의 것을 요구해서 투쟁한 것처럼 보인다. 별일이다. 나라가 다르다고 정년연장이 노동자에게 권리이기도 하고, 권리가 아니기도 하다는 것인가. 정년제도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퇴직시키는 제도다. 더는 근로계약관계가 계속되지 않고, 종료시키는 것으로 노동자에게는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근로관계를 유지해서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나라 노동자들처럼 프랑스 노동자들도 정부의 정년연장 추진에 적극 찬성하며 환영할 일일 텐데 오히려 격렬히 반대해서 투쟁했다. 왜 그런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연금제도를 개혁하면서 그 수급연령을 상향시키면서 당연하게 이와 연계해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었기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연금 수급연령을 상향시키지 않고 기존처럼 연금을 수급받겠다고, 정년을 연장해서 더 일하고 수급받지는 않겠다고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투쟁을 한 것이다. 정년을 연장해서 64세까지 2년 더 일하고 연금을 지급받을 것인가, 아니면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62세까지 일하고서 연금을 지급받을 것인가. 바로 이에 대한 프랑스 노동자들의 대답이 정부의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만약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연계돼 노동자가 정년 60세에 퇴직하면 그때부터 연금을 지급받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운영된다면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정부가 정년을 연장해서 연금 수급연령을 상향시키고자 한다면, 우리 노동자도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반대해 투쟁했을 것이다.

3. 이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프랑스처럼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을 추진하면서 당연하게 정년연장을 연계하지 않는다. 현재까지는 분명히 그렇다. 몇십 년이 지나면 국민연금 재원이 고갈되니 보험료를 인상하고 수급연령을 상향하자는 논의만 요란하다. 만약 이 나라에서도 정부가 프랑스처럼 연금 수급연령을 상향하면서 이에 따라 정년을 연장한다면, 과연 우리 노동자들도 이에 반대해서 투쟁할까. 프랑스 노동계에 따르면 정년이 연장되는 만큼 몇 년을 더 일해야 하는 것이니 더 일하지 못하겠다고 시위하고 파업할 것인가. 나는 우리 노동자들도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의 요구와 투쟁으로만 보자면 정부의 정년연장 추진에 적극 찬성하고 환영하지, 그와 반대로 반대해서 투쟁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년연장과 연계 없이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상향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해서 “정년연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금 수급연령의 상향은 당연하게 정년연장과 연계해 추진돼야 한다.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찬성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닌데, 이 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조차 그렇지 못하니 “정년연장하라”고 외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찌된 것이 이 나라에서는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상향돼도 정년연장 없이 퇴직해서 몇 년을 임금도 연금도 보장되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국가가 노동자를 몰아가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고작해야 40%로 프랑스의 62%에 비해 형편없고 그것도 많은 노동자들이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나라인데, 그마저도 이 모양이다. 이번만이 아니다. 지금도 이미 국민연금 수급연령은 정년과 연계돼 있지 않아서 60세 정년퇴직해도 노동자는 3년을 임금도 연금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아무렇지 않게 국민연금 수급을 63세에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법적 정년은 60세로 정해 놓으니 노동자에게는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고 이상할 뿐이다. 사실 노동자에게 이상한 제도는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지 않게 국민연금의 제도가 마련·운영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노동자가 매월 보험료를 납부하는데 그 비중만큼 노동자의 대표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결코 노동자가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제도가 마련돼 운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지경인 나라인데 노동자들은 수급연령을 상향하려면 정년도 연장해 달라고 투쟁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자는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정년연장하라”는 요구는 왠지 초라해 보인다. 프랑스에서처럼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것이 당당해 보인다. 더 적게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투쟁하는 것이니 말이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상향과 연계된 정년연장에 관한 요구고 투쟁이라서 그렇다.

4. 정년연장 자체만을 살펴보자. 노동자에게 정년제도란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사업장에서 퇴직해야 하는 제도다. 일정 연령 도달을 사유로 사업장에서 쫓겨나야 한다. 노동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자에 의해서 더 일하고자 해도 당연히 퇴직해야 하는 제도로 본질적으로 해고제도다. 기간을 정하지 않는 근로계약관계에 있어서 일정 연령 도달을 이유로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쫓아낸다면, 그 노동자가 여전히 건강해서 정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정년이 됐다고 해서 근로관계를 종료하고 퇴직시킨다면 그 해고의 사유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일정 연령 도달을 이유로 한 해고는 정당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이 나라에서 정년제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것은 연령을 이유로 한 해고이고, 정당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정년제도를 폐지해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듯하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듣는다면, 무슨 망발이냐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년제도가 해고제도이고, 그 해고는 정당하지 않다는 내 말이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연계돼 듣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상향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지, 더 일할 수 있는 데도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년제도에 찬성하기 때문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 그 해고는 정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정년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은 “정년을 폐지하라”를 요구해서 투쟁해야 하는데, 이 나라 노동자에겐 너무도 먼 이상적인 요구로 들릴 뿐이다. 최소한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연계한 정년조차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연금 수급연령까지만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오늘도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렇게 투쟁하고 있다.

“정년연장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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