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현대차 노사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잠정합의했다. 이 칼럼이 게재된 18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가 나왔을 테지만 내 관심은 가결 여부에 있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본급 11만1천원 인상과 기술직(생산직) 800명 추가 신규채용, 이에 더해 2022년 경영실적 성과급 300%+800만원, 2023년 하반기 사업목표 달성 격려금 100% 등 지급하기로 했고, 국내 공장을 중장기 미래사업 핵심 제조기지로 전환하기 위한 ‘노사 미래 동반 성장을 위한 특별협약’을 체결했다. 정년연장과 관련해선 내년 상반기까지 정부 정책, 사회적 인식변화로 법 개정 시 노사가 협의하기로 했다.

이번 잠정합의안대로 임단협이 마무리될 경우 1987년 현대차지부 설립 이후 처음으로 5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우게 된다며 언론은 파업 없는 타결에 관심을 보인다. 내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아마도 이번 노사합의에 찬성하는 현대차 조합원들은 임금인상과 성과급 등으로 수천만 원을 지급받는 데 관심을 두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나는 현대차지부가 올해 임단협에서 요구했던 정년연장이 어떻게 합의됐는지가 관심이었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까지 정부 정책, 사회적 인식변화로 법 개정시 노사가 협의하기로 했다’는 것이 유감이다. 그렇다. 현대차지부의 올해 단체교섭에서 정년연장 요구를 지지했던 나는 정년연장에 관한 아무런 합의 없이 법 개정 시에 노사협의하기로 한 데 실망했다.

2. 한국노총은 지난달 16일 국민동원청원을 신청했던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위한 고령자고용법 및 관련 법률(고령자고용법) 개정’ 국민동의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지난 14일 5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공개일로부터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며, 심사해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게 되는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국민동의청원에 힘을 모아준 조합원과 국민께 감사드린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라며 “노후 빈곤 예방과 고령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국회는 정년연장 입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매일노동뉴스 2023년 9월14일자 참고)

정년연장에 관한 현대차 노사의 합의나 한국노총 국민동의청원 신청을 통해 본다면, 이 나라 노동자의 정년연장은 결국 고령자고용법 등 입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누가 뭐래도 가장 조직력 있는 노조와 규모 있는 총연합단체가 입법으로 정년연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3. 전미자동차노조(UAW)가 파업에 들어갔다.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3대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파업에 들어간 건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처음이다. 노조는 당초 40%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가 현재 4년간 36%로 조정했다. 생계비 수당, 연금과 퇴직자 의료보험 지급,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32시간 근무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노조의 파업에 대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미국 자동차노동자 파업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36%나 되는 임금인상을 요구해서도 아니고, 퇴직자 의료보험 등 복리비 지급을 요구해서도 아니다. 주 32시간 근무를 요구해서다. 미국 노동법도 물론 법정근로시간으로 최장 근로시간을 제한한다. 이번에 UAW가 주 32시간 근무를 요구한다는 것은, 주 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정한다 해서 노동조합이 이를 소정근로시간으로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법정근로시간보다 단축된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해서 그 범위에서만 조합원이 근무하도록 노동조합이 요구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뜻이다.

4. 그렇다고 해서 UAW가 특별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법으로 정한 것이 노동자보호법이다. 개별 노동자의 권리로서 최저 기준을 국가법으로 정해서 보호하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대표적인 법률이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같은 비정규직법도, 고령 노동자를 보호하는 고령자고용법도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자 권리를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저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보다 우월한 수준은 근로계약, 단협 등을 통해서 쟁취해야 한다. 물론 개별 노동자가 특별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우월한 수준의 근로계약을 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노동자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법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파업 등 투쟁해서 단협 체결을 통해 쟁취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한다. 이런 노동법의 질서에 따라 이 세상에서 노조운동은 법보다 우월한 수준의 노동자 권리를 단협에 새겼다. 임금, 근로시간, 인사이동과 해고, 고용 등에 관해 수많은 권리를 조합원을 위해서 노동자를 위해서 노동조합은 쟁취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노조운동은 단순히 법정 기준을 단협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근로시간을 보자. UAW 외 이 세상의 노동조합들은 단순히 법정근로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단협에 규정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독일에서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으로, 주휴일 1일을 제외하고 6일을 근무할 수 있으니, 주 48시간인데, 독일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은 그 법정근로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단협에 그대로 옮기지 않고, 법정근로시간보다 단축된 주 35시간 등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요구해서 단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다. 이 세상 어디든 노동조합들은 법정근로시간보다 단축된 소정근로시간을 쟁취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단지 이 나라 대한민국 노동조합만 특별하다. 그저 법이 정한 대로 단협에 규정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국가)권력과 자본에 길들여진 관제노조, 어용노조가 아닌데도 이런 노동조합이 이런다는 게 나는 신기하고, 그래서 이 나라 노동조합들이 특별하다.

5. 노조운동의 결과는 단협에 드러난다. 단협은 조합원을 위해서 노동조합이 교섭하고 투쟁해서 쟁취한 노동자 권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단협을 살펴보면, 그 단협을 체결한 노동조합의 상태를 볼 수가 있다. 아무리 강성노조라고 으스대도 단협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자권리가 형편없다면 별 볼일 없이 으스댔던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이 나라 노동조합의 상태는 별 볼 일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사용자 자본에 대해 노동자 권리를 주장해 온 노동변호사로서 지금까지 수천 개의 단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임금인상 말고 무슨 노동자 권리를 조합원을 위해 쟁취해 낸 것인지 찾기 어려웠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법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서 법이 정한 기준보다 우월한 수준으로 교섭하고 투쟁해서 단협을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건만(대한민국 헌법 33조1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1항4호 등) 신기하게도 그런 단협을 찾기 어려웠다. 현대차 노사가 합의하고 한국노총이 국민동의청원한 정년연장에 관해서 보면, 결국 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겠다는 것만 보일 뿐이다. 과거 2013년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으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정년을 60세로 간주하도록 했을 때도 그랬다. 결국 이렇게 정한 법적 정년 60세를 이 나라 노동조합은 단협, 취업규칙 등에 규정했을 뿐이고, 그보다 연장된 정년을 단협에 규정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세상에서 새로운 노동자 권리는 사용자를 상대로 쟁취해야 한다.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교섭력과 투쟁력을 갖춘 강력한 노조라야 한다. 정년 60세를 넘어서 64세, 나아가 70세 정년을 바라는 조합원을 위해서 정년연장을 쟁취해낼 정도로 강력한 노조는 이 나라에서 몇 안 된다. 나는 올해 현대차지부가 정년연장을 요구한 것을 보고서 그걸 해 내길 바랐다. 귀족노조라고 비난해도 나는 비난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이 새로운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 내기를, 이 나라에서도 노동조합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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