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최근 들어 임금피크제 소송을 많이 하고 있다. 이미 위임받아서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사건 말고도 새롭게 소송하겠다고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 임금피크제 사건을 상담하고 소송을 하다 보니 이 나라에서 사업장들에서 도입한 수많은 임금피크제를 보게 된다.

사업장마다 임금삭감 등 기준은 다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물론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라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그걸 가지고 내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정년 60세로 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이 2013년 개정으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60세로 간주토록 하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2016~2017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 정년은 60세로 정해졌다. 이 나라에서는 60세 정년을 앞두고서 몇 년 전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사업장마다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도입해 운영한다. 노동자 정년에 관한 법과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실체를 보면,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그저 법상 정년을 보장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가만히 나는 생각해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법적 정년을 보장하는 것에 불과한데, 어떻게 기존 임금수준을 삭감하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할 수가 있다는 것일까. 노동자와 사용자 간 법률관계도 근로계약관계라는 계약관계인데, 어떻게 이런 방식의 임금피크제도가 도입·운영되는가.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간 관계가 민사법상 계약 자유의 원칙이 보장되고, 그 특별법인 노동법상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른 근로조건 결정이 보장된다면(근로기준법 4조 참조) 어떻게 과연 이럴 수가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온통 그렇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나라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인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데 노동자에게는 계약의 자유, 사용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도 실제로도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아니라고 사용자들이 주장해서 법원이 판결해 왔더라도 결과가 본질을 보여준다. 누가 자신의 임금수준을 삭감하는 걸 받아들이겠는가. 임금삭감에 대해 별도로 대상조치를 해주면 몰라도, 그런 조치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사용자가 해 달란다고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할 노동자는 없다.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사업장마다 그랬다. 이것은 이 나라 근로계약관계에서 노동자들에게 계약 자유가, 사용자와 등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가 보장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학설도, 판례도 여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계약 자유가, 사용자와 등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이 보장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서 노동법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한 마디만 보태면, 취업규칙을 법인 양 취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니 취업규칙이 근로계약 아래에 위치토록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3. 장황하게 이 나라에서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에 살펴봤지만, 사실 내가 이 칼럼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따로 있다. 올해 현대차, 기아 등 완성차노조들에서 임단협 요구로 임금인상 및 성과급 지급 외에도 정년연장에 관해서 별도로 하고 있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이에 한 마디하고자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뉴스를 보면, 현대차지부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에 맞춰 64세로, 기아차지부는 62세로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할까. 비정규직 철폐나 하청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 밥그릇이나 챙기는 요구라면서 비난해야 할까. 역시 대기업 정규직인 귀족노동자를 위한 귀족노조의 요구일 뿐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제 26일, 매일노동뉴스도 “완성차노조의 단체교섭은 우리나라 정규직 노조 교섭의 표상”인데 “최근 들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원인 중 하나로 정규직 노조를 지목하는 경우 늘었”다며 이는 “교섭력이 강한 정규직 노조의 교섭 요구안에는 2차 노동시장 노동자를 위한 요구”가 없기 때문이라며 올해 현대차, 기아차 등 완성차노조의 임단협 요구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서 내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 반대라고 이 칼럼을 통해서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매일노동뉴스 기사에서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 내부의 성과들이 사회 전체로, 비임금 노동자 같은 취약·불안정 노동자에게 확산했냐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며 “이것들을 정부나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해 온 것인데, 사회적으로 보면 조족지혈이라 정규직 노조의 자기 잇속 챙기기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완성차에서 임단협의 한계를 지적한 것인데, 사업장교섭이 아닌 산별교섭 체계 확립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오늘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하청 내지 협력업체 노동자가 권리수준이 낮은 것이 정규직이 대기업 원청노동자가 임단협을 통해 높은 권리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보지 않는다. 높다고 하는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수준이 진정으로 높은 것인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이 나라 언론들이 세계적으로 대단히 높은 임금수준을 받는다고 말해 온, 현대차 등 자동차 생산현장 노동자들의 시간급 통상임금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높은 임금 수준을 지급받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10년 전, 현대차 통상임금소송을 할 당시 2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의 회사 통상시급이 1만원도 안 됐다. 그 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됐다 해도 통상시급이 현재 2만5천원도 안 될 텐데, 이걸 두고서 귀족 노동자로서 대단히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사실 노동자의 권리 중 임금은 일부다. 중요한 노동자의 권리에는 노동시간, 그리고 오늘 현대차지부 등에서 요구했다는 정년연장 등 고용에 관한 권리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노동시간에 관해서 보자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 권리는 형편없다. 법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소정근로시간을 정해 근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근로기준법 50조, 2조1항 8호), 이 나라에서 현대차를 비롯해서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1일 8시간, 1주 40시간보다 짧은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있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제발 귀족노조라도 근로기준법상 소정근로제도의 부합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걸 보고 싶다. 어차피 모든 사업장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1주 40시간보다 짧은 소정근로시간을 쟁취하긴 어렵다면, 나는 힘센 노조부터라도 쟁취하길 바라고 있다.

4. 정년연장도 마찬가지다. 도대체가 이 나라에서는 사업장마다 법상 정년 60세를 그대로 노동자의 정년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귀족노조 사업장이라도 정년은 60세로 정하고 있다. 분명히 노조법은 법보다 우월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교섭과 쟁의를 보장하고 있건만, 이 나라 정년에서는 그런 단체협약을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시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업장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정년연장을 쟁취할 수 없다면, 힘센 노조부터 정년연장을 쟁취해야 한다. 힘센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한 것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면 조족지혈이라 정규직노조 자기 잇속 챙기기라는 비판’하는 이가 있다면 그 비판을 비판하고 싶다. 힘센 노조가 조합원의 정년에 관해 법적 정년보다 더 연장된 정년을 요구해서 쟁취하지 못한 걸 비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조가 할 일은 조합원을 위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이걸 하지 못한 노조는 비난해야 하지만, 이걸 위해서 사용자에게 요구해 교섭하고 투쟁하는 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현대차지부 등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합원을 위해서 권리 삭감 없이 정년 연장을 쟁취하는 것, 이 나라 노동자를 위해 당신들이 할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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