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올해도 ‘귀족노조’ 타령이다. 현대자동차 임금협상을 하면 매년 노동조합은 교섭을 요구해서 사측이 들어주지 않으면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결의한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어김없이 비난을 퍼붓는다. 억대 연봉자들이 더 받겠다고 과도하게 임금인상을 요구한다고 비난하고, 퇴직 뒤에도 차량 할인 구입혜택을 달라고 요구한다고 비난하고….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현대차에서 노조가 쟁의 결의를 한 요구에 대해서는 비난을 한다.

오늘도 이 나라 언론이 뽑아낸 기사 제목은 노조 요구를 비난하는데 맞추고 있다. 노조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서 보도 내용을 읽어 보면, 어째서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노동자들 입장에서 쓴 것은 찾을 수 없다. 회사 사정이, 나라 경제가 어떻고.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 청년들의 처지가 어떻다면서 온갖 것들을 가져다가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렇게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쏟아지는 비난을 듣다 보면, 이 대한민국에서 현대차 노동자가 그토록 대우를 받고 현대차지부가 그렇게 대단한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단순히 현대차의 경영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듯이 비난을 쏟아 내니 말이다.

2. 언제였나. 이 나라에서 언론이 쟁의 결의한 노조 요구에 대해서 사측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지 않고 중립에서 객관적으로 보도했던 것이. 현대차와 같이 대기업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 그 조합원인 노동자 입장에서 주요 언론에서 보도하는 걸 보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 주요 언론이라고 해 봐야 일부 공영방송을 제외하고는 현대차 자본과 같이 재벌이 소유한 재벌언론이거나 조선일보 등과 같이 언론재벌이다. 그래서였나. 괜한 기대를 했던 것인가. 이처럼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이 장악한 언론의 보도만이 아니다. 재벌언론과 언론재벌로 분류되지 않는 일부 진보언론조차도 현대차지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보도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과는 달리 고액 연봉을 받고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라서 그런가. 왠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하기에는 사회적 형평을 고려한 정의관념에 비춰 볼 때 괜히 찜찜했나. 사회적 약자의 요구가 아니라서 외면하고 나아가 비난했던 것인가. 사실 이런 감정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도 느껴진다.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말하면서 대기업 노조운동을 비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런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적극적으로 현대차지부의 요구를 지지하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차지부가 속한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의 지지 성명 말고는, 이 나라에서 현대차지부의 임금인상 요구를, 정년연장 요구를 적극 지지하는 걸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 오늘 현대차에서 노조가 정년연장을 요구했다고, 상여금 인상을 요구했다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3. “미국의 노동·시민단체 연합이 조지아와 앨라배마주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는 현대자동차에 일종의 단체협약을 맺자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 단체는 이번 주부터 현대차를 압박하는 캠페인도 펼치기로 했다. 내년 재선을 위해 노조 지원이 절실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들의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뜻을 전달해 현대차 부담이 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와 전미자동차노조(UAW) 등 대형 노조들이 지역·환경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현대차 미국법인에 지역사회 혜택 협약(Community Benefits Agreement·CBA)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국민일보 2023. 8. 28.)

이처럼 아직 노조가 없는 현대차 미국공장에 대한 것 말고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배터리 합작 법인 얼티엄셀즈를 상대로 근로자의 임금을 25% 인상하기로 잠정합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협상이 끝나면 다른 한국배터리업체와의 합작회사들을 상대로 시급 32달러(약 4만2천400원)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는 협상을 계획하고 있고, GM 등 자동차 완성사를 상대로 해서는 임금 46% 인상, 전통적 연금 복원, 생활비 인상, 주 40시간 근무를 32시간으로 단축, 퇴직연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이 같은 노조의 요구에 언론이 일제히 비난을 쏟아내는 걸 찾아볼 수 없다. 위 미국 노조의 요구를 보자면, 그 임금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요구 수준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다. 만약 이 나라에서 노조가 이런 요구를 했다면 언론은 회사 경영사정과 나라 경제를 걱정하면서, 심지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처지를 말하면서 온갖 비난을 쏟아 냈을 것이다. 최소한의 객관성도 포기한 채 비중립적으로 노동자의 요구를 매도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바로 오늘 이 나라에서 현대차지부의 요구에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4. 언론은 현대차지부의 정년연장 요구에 청년의 일자리 기회 박탈과 기업 부담 증가를 내세워 비난하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의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들이 채용될 일자리를 잃게 되고, 현대차 자본의 부담이 증가하게 되는 것인데 현대차지부가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청년 일자리 기회의 박탈이란, 정년이 연장되지 않고 지금처럼 노동자들이 퇴직하게 되면 그 자리 일부에 대해 신규 채용할 수 있는데 정년연장되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겠다. 이런 식의 비난은 이 나라에서는 낯설지 않다. 성과연봉제 등 직무·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통상해고 등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 그리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추진하면서 이 나라에서 그 취지로 생산성 향상과 효율, 인건비 절감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왔다. 이런 취지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기존 노동자의 임금 및 고용 등 처우를 저하시켜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사고가 널려 있으니,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해 줄 수 있고,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유연화해서 고용보장 수준을 낮춰야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을 이 나라에서는 뻔뻔하게 하는 것이다. 사용자 자본과 이를 편드는 권력은 노동자의 요구에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다른 노동자 탓으로 내세웠고, 일부 노조 활동가들도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서 대기업 정규직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을, 그 노조를 탓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 등 처우를 해 주는 것은 사용자지, 다른 노동자들이 아니다.

5. 노조는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현대차지부는 사용자 현대차를 상대로 조합원의 임금, 고용 등 권리 쟁취를 위해서 일하면 된다. 대한민국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이 나라에서 노조를 정의하고 노조의 일을 규정한 법률을 읽어 보라. 노조는 제 조합원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 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조에 대한 비난은 이렇게 규정한 노조로서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노조를 향해야 한다. 간혹 회사 경영사정이니 나라 경제니 뭐니 하면서 노사협력을 내세워 이런 일을 외면하는 노조도 있는데, 법적으로는 마땅히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지부를 비롯해서 이 나라에서 노조에 대한 비난은 노조로서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는 노조는 노조로서의 일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해당 노조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였는지는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단체협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나라 노조들이 체결한 단체협약은 임금을 제외하고 보면, 정말 형편없다.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소정근로시간을 쟁취한 단체협약을 나는 보지 못했고, 정년에 관해서도 법적 정년 60세를 초과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현대차지부의 정년연장 요구를 나는 적극 지지한다. 이번에라도 이 나라에서 노조가 제대로 제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쟁취할 수 있는 사업장 노조부터 나서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업장에서도 요구하고 투쟁할 수 있다. 귀족노조라는 비난을 무서워할 일이 아니고, 노조로서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내지 못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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