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형식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려면 50명 미만 사업장에 전면적용하고, 과징금제도를 도입해 법인에 징벌적으로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5차 산업안전보건포럼을 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개편 방안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전자공학)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이 사그라들고 드러난 영향은 법률 제정 찬반 양쪽 모두의 기대와 전망을 비껴갔다”며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제정된 법률이라 개정 논의에 민감할 수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재 상태로 고착화해 종잇조각이 되기 전에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0명 미만 중대재해 집중, 정작 적용제외
사망 잦은 사고 뻔한데 규정 없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 쏟아진 재계의 우려나 노동계의 기대와 달리 사업주의 무차별적인 구속기소나 처벌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재를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 제정 과정에서 도입된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조치와 도입 뒤 검찰의 소극적 수사, 안전관리비용의 실질적 증가 같은 요인은 다양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연장을 검토하거나 안전관리를 사업장 자율평가로 묶어 두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법률 제정의 맥락도 희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0명 미만 사업장에 전면적용하고, 과징금제도를 도입해 법인에 징벌적으로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50명 미만 사업장 전면적용 필요성에 대해 박 교수는 “대상의 무차별화, 위험의 차별화 원칙”을 제시했다. 안전관리 적용대상은 예외를 두지 않되, 주의의무 대상은 특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주장은 국내 산재사망 통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지난해 업무상 사고 사망자수를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0명 미만 사업장 발생률이 80.9%를 차지한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 사고사망 발생률이 높다. 그런데도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한 것은 박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대상을 차별한 셈이다.

반면 위험 요인은 무차별적이다. 2021년 사고사망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떨어짐(추락)이다. 42.4%다. 사망사고 유형별로 살펴보면 떨어짐을 포함해 끼임(11.5%)·부딪힘(8.7%)·사업장외 교통사고(6.8%)·깔림 또는 뒤집힘(6.5%) 같은 5대 사고유형이 전체 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8%다. 10대 유형으로 넓히면 93.4%에 달한다. 사실상 산재로 사망하는 위험사례는 특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런 사고유형을 실질적으로 방지할 대책 마련 등에 대해선 규정하지 않는다.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험의 차별화로, 그가 제시한 대상의 무차별화, 위험의 차별화 원칙에 정확히 배치된다.

박 교수는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많이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표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법원에서 굳어지는 중대재해 처벌 수위
“과징금으로 ‘이익몰수’ 실효성 더 클 수도”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형식적으로 적용되지 않기 위해 과징금 제도 도입도 제안해 눈길을 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맥락상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조되지만, 최근 검찰의 조사와 법원의 판결이 경향성을 띄기 시작하면서 그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최근 한국제강 판결에서 대표이사가 1·2심 모두 실형을 받았지만 다른 사건에서는 집행유예가 나왔고, 에쓰오일 사건에서는 아예 경영책임자(CEO) 기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상 13가지 의무를 형식적으로 갖추면 검찰로서도 기소하기 어려워지고 법원도 양형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이미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과징금 제도를 도입해 법인에 영업정지 같은 규제를 적용하면 기업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자본) 속성인데 영업정지 같은 규제는 그런 영업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라 위하력이 더욱 강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 같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보다 화학물질관리법이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더욱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영업정지와 상당한 과징금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형식화되고 기업의 대응과 사법부의 결정도 정형화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도록 하는 힘은 과징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50명 미만 사업장 전면적용 2라운드
사용자쪽 “준비 안됐다, 2년 또 유예”

박 교수는 이런 논의가 단순히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처벌강화 또는 규제완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을 50명 이하 사업장에 시행하는 게 화두가 될 것이고 따라서 각계의 논의도 그에 종속될 것”이라며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한 안전보건체계 전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들여다보고, 자칫 법률을 약화할까 봐 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눈뜨고 코 베이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적용을 두고 노사의 관심은 뜨겁다. 법률상 내년 1월27일부터 50명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을 확대한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포럼에서도 적용제외 연장을 요구했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법 시행 이후 2년간 유예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중소기업이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핵심 판단 기준인 위험성평가도 올해 5월 고시돼 현장 안착에 시간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한 정부의 컨설팅 지원도 턱없이 더딜 뿐 아니라 안전업무 담당자도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최소 2년 이상의 유예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유예가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장은 “2020년 법 제정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50명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지키기 어렵다고 하는데, 2년이 더 지난다고 상황이 변할 것이라 전망하기 어렵다”며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할 때 절대다수의 사업장 노동자가 법 적용을 받지 않게 되는 문제를 염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법 시행 유예를 강조하기보다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정부가 어떤 지점을 지원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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