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 노동안전, 미디어, 구술기록 등 다영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노동자 인터뷰를 보내왔다. 여덟 차례 걸쳐 싣는다. <편집자>

“4시쯤 일어나죠.”

이른 아침부터 돌아가는 건설현장이지만, 콘크리트 펌프카 조종사인 김현권씨의 하루는 더 일찍 시작한다. 멀찍이 떨어진 주기장(건설기계 주차장)으로 펌프카를 가지러 가야 해서다. 그는 2002년 펌프카 일을 시작했다. 그 전 7년간 일했던 직장을 그만둘 때 받은 과장 월급보다 펌프카로 처음 받은 월급이 더 많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먹고 살기 더 나을 거 같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일이었다.

펌프카 임대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장비 조작은 기본, 간단한 수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몸에 익히며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도 걸린다. 콘크리트 펌프카는 타설 장비다. 레미콘에서 옮겨진 콘크리트를 펌프카에 달린 붐호스로 쏘아 높은 곳에도 타설할 수 있다. 타설에 앞서 세팅을 잘해 둬야 한다. “타설할 부위로 붐을 쫙 펼쳐서 작업하는데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물렁한 흙인지 딱딱한 콘크리트인지 어떤 지반 위에서 하냐에 따라 세팅 시간이 달라지죠. 지반 침하가 우려될 땐 단단히 고정하느라 시간이 더 걸려요. 레미콘이 들어오기 전 세팅을 다 마쳐야 해요.”

타설이 끝나고도 남은 일이 있다. “그날 사용한 콘크리트 슬러지(폐기물)가 남거든요. 세척해야 다음날 다시 일할 수 있어요.”

“펌프카 조종사가 좀 슬픈 게요, 아침에도 먼저 가야 하는데 저녁에도 혼자 남거든요. 그 큰 현장에 신호수도 아무도 없이요. 현장 밖으로 장비가 빠져나갈 때까지 안전관리를 해 줘야 하는데, 타설을 마치면 그냥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도 남아서 정리하는데 타워크레인에 달린 서치등을 꺼 버린 적이 있다. 빛 하나 없는 어두운 현장을 나오다 사고가 나기도 한다. “시화에 있던 현장에서 조종사가 사망한 일이 있어요. 혼자 남아 정리하다 쓰러졌던 건데, 아무도 없어서 다음날 발견됐어요. 바로 목격해 응급조치를 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화가 났죠.” 가장 늦게 현장을 나서도 고단한 하루를 마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를 타고 주기장까지 장비를 놓고 오면 어느덧 밤 10시다.

▲지난 9일 경기도 안성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닥면이 붕괴한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 타설하던 콘크리트 펌프카가 중심을 잃고 전도되면서 공중에 떠 있는 모습.
▲지난 9일 경기도 안성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닥면이 붕괴한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 타설하던 콘크리트 펌프카가 중심을 잃고 전도되면서 공중에 떠 있는 모습.

기계 뒤에서 모두 사람이 하는 일

콘크리트가 통과하는 붐은 작게는 26미터, 최대는 77미터다. 붐 길이에 따라 조종사 급여가 달라진다. 일이 어려워지는 만큼 경력을 쌓아야 큰 장비를 탈 수 있다. 돈 욕심도, 나름의 자부심도 더해 그는 2016년 당시 가장 큰 60미터 펌프카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임대회사) 조종사로 일할 때는 그저 열심히 하고 그걸 인정받으면 됐거든요. 내 차로 현장에 들어가 일하려니 이런저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 줘야 하더라고요. 안 받으면 거래 끝이라고 하니.” 경제적으로도 기대한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주가 되면 월급생활보다 더 풍족할 거라 생각했어요. 돈을 번 건 사실이지만, 고스란히 돈이 나가는 건 생각 못 했어요. 펌퍼카가 전액 할부니 매달 나가는 캐피탈, 그리고 펌프카가 기름을 엄청 먹거든요. 덤프트럭 기름통 용량이 400(리터)쯤 되는데, 저희 펌프카는 1000(리터)이예요. 세워 놓고 작업하는데도 엔진을 굉장히 많이 돌려서 기름 소모가 엄청나 보조기름 탱크가 있을 정도예요. 기름값이랑 캐피탈 내고 세금 나가면 남는 게 월급 받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남들이 볼 때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타설 작업인 만큼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타설할 때 붐호스를 항상 사람이 잡고 있어요.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타설 부위를 평평하게 해 주려면, 붐 방향도 콘크리트 나오는 양도 계속 조정해야 해요.” 3~4킬로그램 컨트롤박스(리모컨)를 종일 메고 일하니 어깨가 성한 사람이 없다 했다. “안전이랑 직결된 작업이라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해야지, 무전이나 모니터로 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에요.”

점심시간조차 잠깐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 도시락으로 때우기 일쑤다. 줄지은 레미콘이 교차하며 쏟아 내는 콘크리트를 모두 타설할 때까지 끊을 수가 없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돼서 콘크리트가 굳어 버리면 장비도, 타설작업도 사고로 이어진다.

“장비 이상 유무를 소리로 알 수 있거든요.” 눈으로 쫓고 귀도 세우면서 손을 움직인다.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 서너 가지를 하는 거예요. 예전엔 한 현장에서 장비 한 대에 3명씩 있었대요. 세팅하고 조종하고 정리하고 다 나눠 했다는데, 지금은 혼자 다니는 장비들이 대부분이에요. 장비는 더 대형화됐는데, 혼자 다 해야 하는 거죠.”

펌프카 조종사의 노동이 그려지며 기계 뒤에 사람을 떠올리지 못한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기계는 타설을 할 수 있는 도구인 거죠. 도구가 스스로 하지 않잖아요. 사람이 움직여 줘야 하는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하고 있는 김현권씨의 모습.
▲인터뷰하고 있는 김현권씨의 모습.

어떤 불공정이고 어떤 불법인가

“최근 몇 년 펌프카 사고가 많았거든요. 내려앉은 붐에 깔려 죽기도 하고요.”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위험하게 일하도록 내모는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직종을 넘어 함께해야 한다. 타설 공정을 함께하는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가 공동교섭에 나선 이유다. 안전수칙을 지키고 장비 임대료와 OT(시간외 수당)를 제대로 지급하라 요구한 게 ‘공갈 협박’이 됐다. 자본 입장에서는 안 나가도 되는 돈이 나가는 거니 ‘공갈 협박’으로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건설노조 탄압에서 건설기계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신종 방식도 등장했다. “이미 공정하게 거래하고 있지 않아요. 저희 임대료가 10년 전이랑 지금 똑같거든요. 기름값은 아니잖아요. 임금도 올랐고요. 근데 왜 장비 임대료는 똑같을까요? 중간에서 계속 떼먹어서거든요. 체불도 비일비재고요. 불법하도급은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공정거래 운운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죠.”

십 년 전 일요휴무제 쟁취로 일주일에 하루는 몸도 장비도 쉴 수 있게 됐다. 다시 장시간 노동 철폐 투쟁으로 인간답게 일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 길을 함께할 동료가 더욱 많아지길 바라며, 그는 펌프카 조종사들이 속한 SNS를 이야기해 줬다. “현재 타설 작업 중인 사진이 올라왔어요. 지금 비가 많이 오는데도 우비를 입고 하는 거예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원인으로 악천후 속 강행한 타설작업이 지적됐다. 하지만 현장은 더 빨리, 그래서 더 많이 남겨야 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바뀐 게 없다. SNS에서는 실시간으로 현장의 위험한 작업, 열악한 환경을 서로에게 고발하고 있었다. 이를 체크하며 고용노동부에 관리·감독을 요구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간다. 국가와 자본이 외면하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신호수’로 현권씨는 오늘도 곳곳을 살피고 있다.

▲또 다른 타설 현장. 펌프카 조종사가 콘크리트가 통과하는 펌프카 붐대를 타워크레인 아래에서 조종하며 아슬하게 타설작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타설 현장. 펌프카 조종사가 콘크리트가 통과하는 펌프카 붐대를 타워크레인 아래에서 조종하며 아슬하게 타설작업을 하고 있다.

필자=민선(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사진=건설노동자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

영상=선미(스튜디오 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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