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 노동안전, 미디어, 구술기록 등 다영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노동자 인터뷰를 보내왔다. 여덟 차례 걸쳐 싣는다. <편집자>

홍세호씨는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아파트를 짓든 호텔을 짓든 ‘힘들고 습한’ 공사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는 군대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15년 이상을, 기초를 다진 땅에 파이프를 박고 그것들을 옆으로 또는 위로 연결해 건물의 뼈대를 만드는 철근노동자다.

▲ 홍세호씨는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건설노조가 하고 있는데 왜 나쁜 짓인지 모르겠다”며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지난 노동절(5월1일) 이후 다시 하루 두 갑씩 핀다”고 했다.
▲ 홍세호씨는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건설노조가 하고 있는데 왜 나쁜 짓인지 모르겠다”며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지난 노동절(5월1일) 이후 다시 하루 두 갑씩 핀다”고 했다.

무겁고 날카로운 철근이 건물 뼈대가 되기 위해

조합원 철근팀은 12명이 한 팀을 이루고, 팀에서 2~3개조로 나눠 철근 옮기기, 잡아 주고 묶어 주기, 간격 맞추기 같은 역할을 서로 맡는다. 팀원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해서 10년·20년 한 팀으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는 기술 좋은 노동자도, 팀워크가 좋은 이들도 조심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많은 건 골절이에요. 철근 같은 경우는 정타로 맞으면 금 가고 부러집니다. 그리고 찢어지는 거요. 저희가 좁은 공간에 철을 넣고 묶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단면이 날카로워요. 칼날이에요 칼날. 타박도 많죠. 형님들 사우나 가서 옷을 벗겨 놓으면 무릎 정강이가 시커매요. 늘상 부딪히고 철근 일을 하다 보면 그래요.”

철근이 무겁다는 건 알았지만 날카롭다는 생각은 왜 해본 적이 없을까. 철근노동자들은 기술을 몸으로 익힌다는 홍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해 그도 공사현장에서 튕겨 나온 16미터 철근에 맞아 코가 함몰되고 두개골에 금이 갔다. 그는 산재로 두 달 치료받고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건물 뼈대 만들다가 뼈가 부러지는 일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벌어진다. 문득 카타르 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다 죽은 6천751명의 건설노동자를 추모하는 고층건물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프로젝트 건물의 높이는 준비한 이들의 상상을 3배나 뛰어넘는 높이가 돼 멈췄다.

▲굽은 철근에 옷이 찢어지고 다리만 살짝 긁힌 경험이 일상인 현장에선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한다.
▲굽은 철근에 옷이 찢어지고 다리만 살짝 긁힌 경험이 일상인 현장에선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한다.

“우리가 있으면 철근 빼먹는 부실공사 어려워”

그는 조합원 철근팀이 일하는 현장에서는 “어떤 굵기의 철을 어떤 높이로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몇 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정한 도면을 보고 그렇게 행한다. 우리는 도면을 안 봐도 그 정도 공식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며 “철근 빼먹는 부실공사는 어렵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조합원팀은 ‘순살 자이’ ‘통뼈 캐슬’ 건물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며 작업할 수 있다.

하중을 지탱하는 철근을 빼 버려 무너진 주차장, 보강철근 없는 아파트가 계속 밝혀지니 불안하고 분노하지 않는 이들이 없다.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면보다 더 적은 철근, 더 얇은 철근을 사용한다. 도면 자체를 엉터리로 만들어 무너지는 건물을 짓는다. 또 층층인 하도급방식은 아래로 갈수록 공사비가 적어지는데, 하도급업체는 몫을 많이 남기려고만 한다. 결국 업체에서 시키는 대로 일할 사람, 임금을 더 적게 줘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로 현장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 빨리 빨리 공사기간을 단축해 기업의 이익이 높아지는 만큼 건물의 붕괴 속도도 빨라진다. 결국 아파트가 무너지는 악순환의 동력은 기업의 이윤 욕심이고, 악순환을 유지하는 구조는 다단계 하도급인 셈이다.

사실 홍씨도 하도급 오야지에게 퇴직금도 못 받고 잘린 적이 있다. 그때 건설노조를 만나 못 받은 퇴직금도 받고 팀 전체가 노조에 가입했다.

▲철근노동자들이 손과 팔을 집어넣어 작업해 만드는 촘촘한 철근구조물이 건물을 지탱안전을 보장한다.
▲철근노동자들이 손과 팔을 집어넣어 작업해 만드는 촘촘한 철근구조물이 건물을 지탱안전을 보장한다.

내일의 약속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게 돼

그래도 노조에 가입하니 불편한 게 있단다. 정당한 방법과 규율을 지켜야 하는 불편함. 그래도 권리를 찾으려면 감수해야 한다는 건 이제 안다. 노조 때문에 좀 더 사람다워졌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사람다워졌다는 그의 느낌은 “8시간 노동에 아침 시작과, 끝나는 시각과,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어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전에는 오야지와 반장이 일을 하라면 해야 했고, 몇 시에 시작하고 끝난다 하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다. 개인 일이 있다 하면 “그냥 쭉 일 보세요”라는 핀잔도 받았다. 지금은 “내일부터 일 없으니까 쉬세요. 그 팀 나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을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행복한 그였다. 노조가 교섭으로 조합원의 고용기간을 합의하니 ‘내일도 일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주는, 오늘이 행복해지는 기회를 더 많은 노동자들이 누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에겐 있다.

우리가 하면 모두가 누린다

추운 겨울, 철근노동자들은 콘크리트 양생용 고체연료를 담은 깡통에 불을 피워 손을 녹인다. 홍씨는 “유해가스가 나오는데도 손이 곱으면 일을 못하니까” 회사에서 그걸 준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바꿔야 할 것들이 있는 현장이지만, 변화된 것들은 현장의 비조합원들도 누릴 수 있다. 같이 일하는데 룰이 같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다. 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모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지 일부의 독점적 이익을 갈취하지 않는다.

그는 건설사들이 조합원을 채용한 것은 노조 요구 때문만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조합원들의 좋은 솜씨, 노조가 유지해 주는 현장 질서와 기술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작업은 노조 조합원팀에게 맡겼다. 그에게는 정부가 쓴 ‘건폭’이라는 말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이상한 얘기일 뿐이었다. 노사가 교섭할 때 정부가 와서 보고 판단하라고 요구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며 그의 목소리는 커졌다. “협박을 하는 건지 공갈을 하는 건지. 정당한 것을 누가 안 지키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정부가 봐야 한다).”

그래도 홍씨는 “누군가는 해야 해요 이 일을. 그래야 집도 짓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발전소도 지어야 전기도 생산하니까”라며 건설노동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거라 했다. 그는 오늘의 소소한 저녁 행복을 누리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삶을 이제는 버릴 수가 없다. 사람다워졌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글=권미정(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

사진=건설노동자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

영상=허브&효진(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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