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 노동안전, 미디어, 구술기록 등 다영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노동자 인터뷰를 보내왔다. 여덟 차례 걸쳐 싣는다. <편집자>

▲김진권씨는 인터뷰하는 동안 엄지와 검지로 종이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았다. 철근을 손으로 꼬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꼬는 행위가 손에 습관적으로 남은 걸까 싶을 만큼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
▲김진권씨는 인터뷰하는 동안 엄지와 검지로 종이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았다. 철근을 손으로 꼬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꼬는 행위가 손에 습관적으로 남은 걸까 싶을 만큼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

“귀족노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저 의자에 앉으면 말이에요.”

메시 소재의 등받이가 있는 연두색 의자였다. 오래된 의자는 색이 바래 누리끼리했다.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으면 귀족노조 된다며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걸 보니, 또 정말 그 의자에 앉지 않는 것을 보니 농담으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처음 통화를 할 때 “건설노조 너무 힘듭니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너무 힘들다는 첫 마디가 무겁게 느껴졌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이 무게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소환조사 받던 날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갈 혐의’와 ‘업무방해’를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 현장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실랑이가 일 년 반이 지나 업무방해가 됐다. 공갈 혐의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사관은 ‘밑도 끝도 없이’ 노조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쫓아냈냐고 물었다. 내용을 몰라 답을 못하자, 같은 질문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묻고 또 물었다. ‘그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 결정하라’고 재촉할 때는 정말 ‘황당’했다고 한다.

“이분들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닌가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같은 걸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없는 답을 만들어 내라는 건가? 하는 느낌을 받아서 괴로웠습니다.”

조사를 받기까지 3주 동안 그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무슨 공갈을 했지? 무슨 죄를 지었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샅샅이 뒤지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조사관은 “50명이나 되는 조합원을 일일이 소환할 수 없어서 공갈죄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공갈죄가 없는데 일단 공갈죄로 불렀다는 말로 들렸다. 동료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취급을 받고 있나’는 의문이 들었다. 김진권씨는 의아하기만 하다.

“체불이 사라졌다”

건설노조에 가입한 건 2017년 말이었다. 근처 지역에 건설노조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먼저 노조에 전화를 걸어 가입하겠다고 했던 그였다. 아직 팀이 없다는 말을 듣고 팀이 생기기만을 기다렸다. 노조팀이 생기자마자 그는 ‘신나게’ 가입했다.

건설노동 30년 차 김씨는 ‘내일은 일이 있을까, 일을 하면 돈을 다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을 달고 살았다. 노조팀은 달랐다. 노조에 가입한 뒤로 체불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노조팀이 투입된 현장에는 중대재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지역의 첫 번째 건설안전기사라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30년 동안 체불에 말 한마디 못 한 건 ‘내일 선택받기 위해서’였다. ‘오늘 엄청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빨리빨리’ 움직였다. 내일이 없다는 공포와 불안이 삶의 방식을 결정했다.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에 넣었고 돈 주고 옷을 사 본 적도 없었다. 평생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것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 온 김진권에게 “내일 나오지 마세요”라는 해고통지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노조에 들어가자 ‘내일’이 생겼다. 노조는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업체와 교섭을 하며 일종의 에이전시 역할을 했다. 노조팀이 직접고용으로 현장에 들어오면 불법 하도급으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이 사라졌고, 조합원들은 고용 걱정 없이 안전한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단체협약으로 이뤄 낸 ‘꿈만 같은’ 일이 공갈이 되고 협박이 될 줄은 몰랐다.

“고용 강요가 아닙니다. 단체협약 체결할 때 건설사들이 도장 찍었습니다. 사회적인 약속을 한 것이고 조합원들을 채용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건폭’이다 ‘고용 강요’다 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비겁한 겁니다. 정부도 권장해야 할 일이지 처벌할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건설노조에 상을 줘야 해요. 오히려요. (노동조합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에요.”

▲김진권씨의 말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 지나가다가 아빠가 일하는 거 보거든요. 그러면 지나가면서 그래요. 저거 아빠가 지었다고. 저는 철근만 넣었을 뿐인데. 그러니까 대충하는 걸 가만 놔두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김진권씨의 말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 지나가다가 아빠가 일하는 거 보거든요. 그러면 지나가면서 그래요. 저거 아빠가 지었다고. 저는 철근만 넣었을 뿐인데. 그러니까 대충하는 걸 가만 놔두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건설노동자야!”

“할 것 없으면 노가다나 하라”고 하지만 파이프 하나가 길이 6미터, 무게는 20킬로그램이나 된다. 힘이 없으면 들지 못하지만, 힘만 있다고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물을 올린다는 건 철근을 위로 올려 연결한다는 뜻이다. 처음엔 두 명이 낑낑거리며 세워 올리던 파이프를 이제는 땅에 대지 않고도 세워 올릴 수 있다. 경력자라 가능한 기술이다.

경력자라도 무거운 철근을 세워 올리다 보면 어깨가 남아나질 않는다. 일이 끝나면 팔이 올라가지 않아 세수하기 힘들 정도다. 철근과 철근을 갈고리로 꼬아 연결할 때 팔과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래 일할 수가 없다. 철근공들의 요령이다.

30년 넘게 기술과 요령을 익혀 왔지만, 자신을 기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처음 노조에 들어올 때도 ‘돈이나 벌자’ 싶었다. 노조에 들어오고 ‘그저 하나의 노가다꾼’이었던 김씨는 처음으로 ‘이제 나도 이 나라 국민이구나’ 생각했다. 노동자로서, 국민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벅찬 감정을 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했다. 노조에서 하는 활동은 무엇이든 빠짐없이 다 참여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자랑스러운 건설노동자’라는 말이 입에 붙었고, 그 말은 삶의 태도가 됐다. 전이나 지금이나 열심히 일하는 건 똑같지만, 목표가 달라졌다. ‘돈이나 벌자’가 아니라 ‘제대로 건물을 짓자’다.

“역사기행 다니고 연대하면서 사회에 투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건설노조 아니었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죠. 제가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도) 시대적인 참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됐고. 그래, 나는 건설노동자야. 내가 하는 일이 그거야. 왜 어때서? 이렇게 됐어요. 양회동 열사님이 자랑스러운 건설노조라고 그랬는데요, 건설노조에 들어간 게 정말 제 인생에 있어서 큰 기회였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노조를 했다면 이런 소회가 없었을 겁니다.”

‘건폭’ 몰이에 현장은 사라지고 김씨도 일을 못 한지 세 달이 넘었다. 이 시간이 의아하고 괴롭지만 ‘곧 틀림없이 반전되리라’ 그는 기대한다. 노조가 만들어 온 현장은 ‘올바른 시공을 하는’ 건설노동자에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풍물패 활동으로 어느 때보다 바쁘다. 투쟁 현장 어디든, 연대가 필요한 곳 어디든 북을 매고 달려간다. 철근을 꼬아 건물을 올리던 김씨의 손은 불법 현장을 깨부수는 손이 됐다가 이제, 북채를 쥐고 연대하는 소리를 울리는 손이 됐다. 북채를 꽉 쥐고 그는 찢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북을 세게 친다.

▲“해 봤냐? 라는 말 있죠? 혐오발언 하는 분들한테 해 봤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노동조합을 해 봤습니다. 해 봤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자신 있게 하는 겁니다.”
▲“해 봤냐? 라는 말 있죠? 혐오발언 하는 분들한테 해 봤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노동조합을 해 봤습니다. 해 봤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자신 있게 하는 겁니다.”

글=윤영(싸람: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사진=건설노동자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

영상=효진(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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