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2024년 최저임금을 9천860원으로 지난 4일 고시했다. 올해 최저임금 9천620원 보다 240원(2.5%) 올랐다. 논의기간은 역대 최장을 기록했지만 인상 수준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데다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3.4%)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위 논의 과정에서는 노동자위원 해촉을 시작으로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전망하는 정부 고위 관계자 발언 보도로 독립성 침해 논란이 반복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63·사진)을 만나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각종 논란과 쟁점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한림대 교수(사회학)인 박 위원장은 2019년 5월부터 최저임금위원장직을 맡았다. 내년 5월 임기가 종료된다. 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업종별 구분적용 효과? 회의적”

- 내년 최저임금 결정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다소 아쉽지만, 2.5%가 인상된 시간당 9천860원은 2024년도 우리나라 노동시장과 경제 여건 전망을 고려할 때 경제주체들이 적응하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본다. 최저임금은 우리나라 전 국민 단일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수준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국민경제 차원의 영향이 큰 변수가 됐기 때문에 과거보다도 더 조심스럽고 무게감 있게 다뤄야 한다.”

- 최저임금법상 업종별 차등적용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주로 사용자측에서 일부 업종이 너무 어려우니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달라고 한다. 저임금 민간서비스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인 구조조정 과정에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구조조정에) 대처할 수 있느냐 물으면 회의적이다. 이 분(해당 산업 종사자)들이 어렵지 않다는 게 아니라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최저임금의 구분적용 요구는 저임금 업종 내에서의 고용형태 다양화, 업종 간 지불 능력 격차 확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현실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임금 노동계층 내에서의 격차와 이질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실태조사와 추세 파악, 그리고 사실적 근거에 기초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러나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와 합리적 근거 없이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집단을 고착화시켜 저임금 계층의 신분적 격리를 초래할 위험성도 심각하게 봐야 한다. 노동시장의 제도적 격차는 한 번 규정되면 그 구조가 고착화돼 해소하기 어려운 낙인과 차별로 전환할 수 있다.”

- 저임금이나 임금불평등 해소대책이 있다면.
“외국은 그런 부분을 사회복지가 담당한다. 유럽 국가는 세금을 많이 내니 (복지 수준이 높아) 오히려 임금 수준이 최저 수준밖에 안 된다. (불평등을) 최저임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지, 불평등을 해소하는 제도가 아니다. 불평등의 원인은 임금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소득, 결혼과 상속 등이 훨씬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제도 등을 빼고) 임금격차만을 가지고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공정성 침해 논란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올해 유난히 심했다. 김준영 노동자위원이 해촉되는 일도 있었다.
“위원회의 임무는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의결하는 것에 있다. 위원의 임면과 관련한 결정 권한이 위원회에 있지 않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역량과 경험이 충분히 검증된 김준영 위원이 위원회와 무관한 일로 심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경제성장률, 국민경제 가장 가깝게 반영”

- 내년 최저임금 결정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공익위원 산식(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취업자증가율)을 2021년·2022년 논의때 적용해 문제제기가 꾸준히 제기됐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전국적 단일임금 기준으로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의 경제행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의 사회적 기준 임금으로 진화했다.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0% 수준을 초과하면서부터는 국민경제, 노동시장, 복지, 기업 경영,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 경제활동의 구석구석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핵심 경제요소들에 대한 영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100% 동의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1년 후 임금이 이렇게 결정될 것이라는 기대치로 비즈니스 계획, 일할 계획 등을 짠다.

경제성장률은 다른 경제지표와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변수다. 국민경제의 생산성, 상승 정도를 가장 가깝게 반영하는 일반지표다. 물가도 널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표다. 다만 작년과 재작년에 썼던 방식에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올해에는 심의 초기부터 노사 자율적 교섭과 합의를 표명하고 유도했다.”

- 정부 고위관계자 발언 등 보도내용을 둔 논란도 컸다. 이런 맥락에서 전원회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외부에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일에 대한 문제제기가 최저임금위 내부에 있었다. 과도한 통제라는 비판도 있다.
“협상 과정을 생중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협상과정을 공개하면 협상이 될 수 없다. 학술적으로 대리인 문제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대리해 협상을 하라고 선수를 내보낸 것인데, 경기를 하는 중 잘하는지 못하는지 계속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사람도 있다. 온갖 사회세력, 이익단체, 정부 당국자, 정치인들이 전부 다 (최저임금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최저임금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최저임금위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단호하게 개입을 해 왔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비표준적 노동 급속히 팽창, 초당적 대책 필요”

- 플랫폼·프리랜서 등 사각지대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포괄할 수 있게 최저임금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지위는 사실상 노동자다. 얼마나 일하느냐에 따라서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자영업자들도 대다수 플랫폼에 종속돼 있고 ‘워킹피플(Working people)’이다. 일하는 사람이지만 표준적인 고용체계 바깥에 있어 (각종 사회) 제도의 예외가 된다. 플랫폼이 굉장히 값싸게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룰 수 있는 사회적 기본체계가 없다.

비표준적 노동과 사업 영역의 급속한 팽창으로 최저임금 제도의 실효성도 큰 도전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정파적 이해를 초월한 초당적 대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국회 등에서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며, 합리적 대책 마련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최저임금이) 지금은 저임금 노동자층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직업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위 차원의 역할을 요구한다.
“현재 최저임금위는 표준적인 고용관계 틀 안에 있는 노동자를 다루는 것도 벅차다. 놀라운 속도로 확장하는 비표준적 고용형태 문제까지 다룰 권한이 없다. 최저임금법을 바꿔 역할을 부여하든, 국가임금위원회로 격상시켜 전문적으로 (해당 문제를) 연구조사하고 모니터링하고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다면 가능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돼 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위원 너무 많아 논의 어렵게 해”

- 최저임금위 논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제도는 87년 노동자대투쟁과 한국 사회 민주화의 핵심적인 제도 성취로 볼 수 있다. 위원회는 발전 과정에서 더 많은 이해 당사자들을 포용하고, 사회적 협의와 교섭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노·사·공 위원 절반을 축소해도 상관없다고 본다. 최저임금위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각계의 대표를 앉힌다는 취지였지만 열다섯 번 전원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두 번 이상 발언하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된다. 최저임금 당사자들과 거리가 있는 단체나 조직이 업종의 특수이익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념적 주장만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된다.

충분한 경험과 전문적 식견이 있는 위원들이 중심이 돼 논의하면 좋겠다. 제도개선을 위한 초당적·국가적 노력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 노사 각각 다른 지표를 가지고 주장해 의견을 좁히기 어렵다. 이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은.
“지금은 노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위 심의자료로 올릴 수 없다. 각자가 좋아하는 (유리한) 자료만 올리라는 것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국민 경제를 이야기하면 최저임금과 무관한 데이터라고 입에도 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높은 수준의 학술적인 연구자료가 당연히 인용돼야 하고, 열어 놓고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돼야 한다.”

- 최저임금위 위원장 임기가 내년 5월이면 종료된다. 느낀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위원장으로서 5회에 걸쳐 우리나라 저임금·저소득 근로계층의 삶을 지키는 데 중요한 의사결정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지난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큰 폭으로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상태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높은 인상률을 유지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금융산업공익재단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 재단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노사 공동기금으로 만든 사회공헌재단이다. 취약계층에 다양한 지원사업을 할 수 있는 임무가 나에게 주어져서 명예롭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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