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하나(40)·김은영(가명)씨. <정소희 기자>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를 잡고 시작한 투쟁은 아니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악 소리는 내고 죽자”는 심정이었다. 3년 넘게 열심히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 그저 “너무 억울”했다. 그렇게 길에 나와 투쟁한 것이 벌써 200일이 됐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노동자 3명의 이야기다. 지난 4일 <매일노동뉴스>가 6개월 넘게 복직을 촉구하며 길에서 싸우는 김은영(가명)씨와 이하나(40)씨를 서울 영등포구 효성ITX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돌봐야 할 반려 가족이 아홉이나 있는 정순금씨는 생계로 인해 생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어 만나지 못했다. 김씨와 이씨 역시 이달 말로 실업급여 지급이 끝나 복직이 더욱 절박한 처지가 됐다.

단 5분, 이력서도 없던 ‘날림’ 면접

해고 통보인 계약해지 통보는 불과 계약만료 4~5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저축은행중앙회가 통합콜센터 수탁업체를 효성ITX로 바꾸면서 상담사 10명이 재계약되지 않았다. 처음엔 4명이 불합격했다. 6명은 업무공백을 우려하며 불합격된 인원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다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지난해 12월26일·27일 이틀간 면접을 본 뒤 27일 저녁에 이메일을 통해 합격 여부를 통보받았다. 면접은 단 5분. 면접에 들어온 관리자들은 상담사들이 제출한 이력서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면접자들이 자신의 이력을 줄줄 읊어야만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계약해지로 해고된 10명 중 3명이 남아 복직 싸움을 이어 가게 됐다. 해고되기 전까지는 서로 인사 정도만 하던 사이였다. 이하나씨와 정순금씨는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일하는 심야조였고, 김은영씨는 오전조였다. 이하나씨는 당초 합격했지만 팀장인 정순금씨를 비롯해 경력자들이 계약만료 통보를 받자 업무 부담이 크다며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다 자진해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사례다. 이씨는 “경력자 4명이 신입직원 5명을 3일 만에 교육하고 일해야 했던 상황”이라며 “팀장 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야간조와 함께 싸우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너무 말도 안 되게 갑자기 계약이 종료되니 공감대가 생기게 됐다”고 했다.

효성ITX “입찰 제안서에 쓴 고용승계는 거짓말”

노조 결성은 계약만료 두 달 뒤에야 가능했다. 이하나씨는 “정규직 노조의 반대로 노조가입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노조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복직과 관련된 상담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같이 싸워 보자’는 대답을 들으면서 본부 더불어사는지부에 가입해 싸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연대의 힘은 강했다. 이씨는 “길바닥에 우리 셋밖에 없었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다른 분들이 힘내라고 연대를 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셋이 아닌 여럿이서 싸우니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부터 5월까지는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 건물 앞에서 피케팅이나 기자회견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정순금씨와 김은영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기각됐다. 심문 과정에서 효성ITX가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에 ‘희망 직원 100% 고용승계’ ‘경력을 감안해 연차 부여’라는 내용의 제안서를 쓴 사실이 밝혀졌다. 김은영씨는 “효성ITX 관계자가 심문회의에 나와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안서는 다른 입찰 기업들도 작성할 것을 대비해 허위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할 때 기가 찼다”며 “아무리 수익을 위해서라지만 해고된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상담사 쉽게 자르는 콜센터 바꾸고파”

지난달부터 효성ITX 건물 앞으로 농성 장소를 옮기면서 대화가 시작됐는데 효성측에서는 3명 중 이씨를 제외한 2명만 복직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하나씨와 김은영씨는 이달 말부터 실업급여가 끊긴다. 복직이 간절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더 크다. 7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이씨는 “콜센터 업계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투쟁을 하면서 콜센터 업계 착취구조를 알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콜센터 업계 상위 기업들이 고용승계라는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업체 변경시 상담사를 전배보내는 방식으로 상담사들을 잘라 온 사실을 투쟁하면서 알게 됐다”고 거들었다. 콜센터 상담노동이 힘들다 보니 근속연수가 길지 않아 원청이 하청업체를 변경하는 일을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업체가 바뀌어 잘리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일이 잦다. 콜센터 업체들은 일이 고되 이직이 잦은 업계의 어려움을 악용해 왔다. 고용승계를 하지 않음으로써 다시금 업계의 고용구조를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를 반복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씨와 김씨는 “2019년부터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일터에 대한 애정이 생겨 일터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돌고 돌아 콜센터”라는 말로 자조하지만 “우리를 착취하는 이곳이 바뀌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씨는 “우리가 포기하면 이런 일을 콜센터 업체에서 계속 하겠구나. 처음엔 억울해서 길로 나왔는데 우리가 지면 다음에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은 싸워 볼 생각도 못 하겠구나. 그러니까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업계에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