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소속 전문가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도지사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

충북 재난·재해 총지휘권자인 김영환 충북지사가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20일 오전 충북도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고개를 숙였다. 김 지사는 참사 이후 “(일찍) 거기 갔다고 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고 말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날 합동분향소 방문에서도 사죄하면서도 “책임자를 밝힐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예상된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소방 등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인 지난 15일 오전 4시10분께 금강홍수통제소가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2시간 전에는 흥덕구에 교통통제가 필요하다고 통보했지만, 흥덕구에서 이를 전달받은 청주시가 충북도로관리사업소에 전하지 않아 도로는 통제되지 못했다. CCTV만 감시했던 충북도도 공사 구간 제방높이를 낮췄다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을 탓하고 있다.

14명 사망·10명 부상 ‘중대시민재해’ 적용

중대재해 전문가들이 ‘환경부장관·충북지사·청주시장·행복청’ 모두 중대시민재해 책임자로 수사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충북지사·청주시장·행정청장 등의 책임이 중첩적으로 결합해 발생한 중대시민재해가 분명하며, 향후 수사 과정에서 각 책임주체들의 책임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시민재해는 ①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②설계·제조·설치·관리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적용된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는 1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자체장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공중이용시설’ 관리 미흡, 복합 작용해 참사

먼저 지하차도와 미호강의 제방이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이다. 하천이 범람한 미호강은 궁평2지하차도와 직선거리로 불과 400미터에 떨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궁평2지하차도와 미호강은 ‘공중이용시설’이라고 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별표3에 따르면 터널구간의 연장 100미터 이상인 지하차도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2019년 준공된 궁평2지하차도는 터널구간이 430미터에 달한다. 미호강도 국가하천이므로 제방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상 시설물에 해당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는 공중이용시설이다. 미호강은 2019년 7월 국가하천으로 승격했다.

‘지하차도’와 ‘미호강 제방’이 공중이용시설이라면 ‘책임 주체’도 문제가 된다. 미호강 제방의 설치·관리상 결함과 지하차도 관리 미흡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참사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지하차도에 대한 관리상의 결함과 미호강 인근 임시제방의 설치 및 관리상의 결함이 경합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호강 제방이 붕괴해도 지하차도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호강 관리 위임 환경부 장관·충북지사, 책임 있어”

하천법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미호강을 직접 관리하는 ‘청주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환경부는 미호강 관리 권한을 충북도에 위임하고, 충북도는 이를 청주시에 재위임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미호강 관리를 재위임받은 청주시장이 미호강을 직접 관리하는 하천관리청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진다”고 주장했다.

다만 시설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 시설을 제3자에게 위탁한 기관에도 의무가 있다. 이런 경우 미호강 관리를 위임한 ‘환경부 장관’과 ‘충북도지사’도 수사대상에 오른다. 임시제방을 설치한 행복청도 임시제방에 대한 관리청으로서 하천점용 허가를 받은 조건에 따른 관리상 의무가 있는지, 청장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만약 제방의 안전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허가 주체인 ‘금강유역환경청장’도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

이번 참사 원인의 다른 한 축은 ‘지하차도 관리’ 부분이다. 궁평2지하차도가 포함된 도로는 충북지사가 지정·고시한 도로로, ‘충북지사’가 도로법상 도로관리청에 해당한다. ‘청주시장’의 경우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재난관리책임기관이 된다. 권 변호사는 “충북지사는 통행 제한 등 긴급안전조치를 해야 하고 도로관리청의 경영책임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청주시장도 행정구역 내 재난이 발생했을 때 즉시 재난 발생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들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충북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등 12개 단체가 20일 오전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충북 노동·시민사회 단체 제공>
▲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들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충북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등 12개 단체가 20일 오전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충북 노동·시민사회 단체 제공>

“구체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 규명돼야”

집중호우로 범람이 예고됐으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미호강 제방이 유실돼 강물이 범람하며 지하차도가 침수된 ‘인재’라는 결론이다.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충북지사와 청주시장·행복청 각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며 “하천 관리를 위임한 환경부 장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된 선례가 없어 예산 편성, 안전계획 이행, 인력 확보 등 구체적인 의무사항에 대한 수사가 책임 소재를 가를 열쇠라고 짚었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기관장이 담당자의 안전관리 업무를 감독했는지, 공중이용시설의 위험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업무처리 절차가 있는지 등이 실질적으로 책임을 가를 것”이라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는데 어떤 원인으로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송 참사 유족들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충북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등 12개 단체는 이날 오전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유족 권리 보장 △철저한 진상규명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지난 19일에는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행복청장을 중대시민재해로 처벌해 달라고 고발했다.

참사의 원인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장을 본부장으로 ‘오송지하차도 참사 전담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수사인원은 138명 선으로, 목격자와 생존자 진술을 통해 사고 원인을 파악한 뒤 관리상 결함 여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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