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른바 ‘시럽(Syrup)급여’ 논란이 계속되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다양한 의견을 들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만들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 고용보험제도 개선 과정에 노동계 의견이 반영될 공간은 전무한 상태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안을 발표하면서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아 ‘재검토’에 들어간 ‘주 69시간제’ 전철을 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고용보험 기금은 노사가 각각 납부하는 보험료로 대부분 구성돼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소득기반 고용보험” 추진한다더니
실업급여 수급 요건 강화 ‘본말전도’

당정은 지난 12일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실업급여 제도개선 비공개 공청회에서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직급여 수급을 위해 갖춰야 하는 고용보험 가입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늦춘다는 내용이 거론됐다. 현행 실업급여 제도를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제도”로 규정하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주장이다. 당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실업급여에 ‘달콤한 보너스’란 의미를 더해 ‘시럽급여’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자초했다.

논란은 일찌감치 예상됐다. 노동부는 노·사·공·정부 위원으로 구성된 소득기반 고용보험제도개선 TF를 지난 3월 구성해 운영해 왔지만 5월 양대 노총은 “사회안전망 축소, 실업급여 삭감 논의”라며 박차고 나왔다.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 80%에서 60%로 낮추고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본격 논의되면서다. 당정이 이번에 밝힌 고용보험 제도개선 추진방향에 포함돼 있다.

당초 TF에서는 소득기반 고용보험제도 개선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소득기반 고용보험 제도는 비임금 노동자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자영업자 등에 실업급여 적용을 위한 방편으로 논의돼 왔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이행계획서를 통해 “소득기반 고용보험 체계 개편을 위한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료징수법 등 관련 법 개정을 2023년 하반기에 추친”하겠다고 밝혔다.

“손 하나 안 대고 코 푼 정부
고용보험기금으로 산 건물부터 팔아라”

노사가 각각 납부한 보험료로 구성된 고용보험기금을 향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고민하는 자리에 노동계를 참여시킬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과 관련 논의를 위해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자영업자연구회를 운영했다. 노동부는 자영업자연구회를 발전시킨 ‘소득기반 고용보험 확대 연구회’를 지난해 6월 발족해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을 논의 중이다. 연구회는 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국세청 등 전문가로 구성됐다. 논의는 깜깜이로 진행 중이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보험 제도에서 정부의 몫은 제한적이다. 노사가 모은 돈을 가지고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노사 입장에 완전히 반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은 지난해 12월 ‘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 보고서(고용분야)’에서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 필요성을 일부 긍정하면서도 “고용보험 설계의 최종안은 노동자, 사용자, 정부 간의 사회적 대화를 바탕으로 설계돼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려는 실업급여 정책은 2019년 10월 노사가 참여하는 고용보험위원회 의결을 거쳐 마련된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방안과 충돌한다. 정부는 당시 상한액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려 보장성을 강화했다.

2021년 고용보험기금 건전성 악화를 지적하는 언론보도에 노동부는 “OECD 국가 대부분(일본, 독일 등)에서 인정하고 있는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실업급여가 아직까지 도입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며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코로나 시기에 기획재정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을 빌린 뒤 갚기 위해 지출을 효율화시키겠다며 실업급여를 타기도 어렵고, 액수를 낮추고, 가입자 확대도 중단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며 “그동안 노사의 기금으로 손 하나 안 대고 코를 푼 정부가 재정건전성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고용보험기금으로 매입한 고용센터 건물들을 매각하려는 진정성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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