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이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구직 청년·여성비하발언 공개사과 촉구! 실업급여 삭감 및 폐지 추진 윤석열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직장 동료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A씨는 회사로부터 괴롭힘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가해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 가해자들 중 1명은 징계 처분을 받아 부서이동을 했지만 나머지는 주의나 경고조치만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사측에서 “개인 사유로 사직서를 쓰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는 이렇게 퇴사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 직장갑질119에 문의했다.

정부·여당은 실업급여 부정수급 문제를 거론하며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가운데, 정작 대다수 노동자들은 수급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에 비자발적 해고를 당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접수된 이메일 제보 941건 중 실업급여 관련 내용은 67건(7.1%)이었다고 17일 밝혔다. 특히 회사가 정부지원금을 받는 경우 고용보험 상실 코드를 권고사직으로 입력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탓에 자발적 퇴사 처리를 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할 수 있다며 노동자를 압박하는 사례도 있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해고됐다는 B씨는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 절차를 밟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구제신청을 취하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취소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이미 3차까지 수급을 받은 상태인데 그간 받은 실업급여를 반환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실업급여는 노동자의 재취업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사장님 쌈짓돈’이 됐다”며 “자발적 퇴사자를 포함한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보험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실업급여는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이직하게 된 경우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만 지급된다”며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시럽급여’라는 유치한 말장난에 기댄 실업자 모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폄훼한 것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청년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업급여는 공적 부조가 아니라 사회보험으로 노동자들이 취업 중에 낸 보험료를 실직 후에 받는 것”이라며 “그런데 마치 정부는 실업급여를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하고 있으며 저소득 청년·여성들이 복지에 중독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약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지희 전교조 청년국장은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보호하고 재취업을 위한 안전망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동자들의 안전벨트인 실업급여를 함부로 깎기 전에 비정규직부터 철폐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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