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근절 대상’으로 삼은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의 ‘월례비’는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이라는 판결이 확정됐다.<본지 2023년 2월17일 “[단독]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임금” 첫 판결, 정부 노조 때리기 제동 걸리나” 참조>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을 불법으로 판단한 정부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법부 판단이다. 건설노동자를 ‘건폭’이라고 매도하면서 추진하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청 건설사, 관행 따라 월례비 월 300만원 지급

2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대법원 2부는 이날 전남 담양군 소재 철근콘크리트 공사업체 D사가 타워크레인 운전기사 A씨를 포함한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본안 심리를 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D사는 2016년 9월께부터 원청(발주사) 건설사 2곳으로부터 하도급받아 광주 서구의 건설공사를 담당했다. 원청은 기사들이 소속된 타워크레인 회사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대금을 지급해 왔다. 그런데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회사의 임금과 별개로 하청인 D사에서 시간외근무수당(고정OT) 명목으로 매달 약 300만원을 받았다.

그러자 D사는 “월례비는 부당이득”이라며 2019년 11월 A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월례비로 총 6억5천여만원을 지급해 손해를 입었다며 A씨 등에게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취지다. D사는 “작업거부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월례비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사들은 “D사가 자신의 지휘를 받는 기사들에게 지급한 임금 또는 위험부담에 대한 사례금”이라고 반박했다.

1심 “월례비, 근절 관행, 부당이득” 건설사 손

1심은 D사 손을 들어줬다. 기사와 D사 사이에 고용계약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D사와 시공사 사이에 각 하도급계약이 체결됐을 뿐 월례비 지급에 대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월례비 자체를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타워크레인 회사가 부담할 인건비를 합리적 이유 없이 하도급 업체들에 전가하고 있다”며 “허위 회계처리, 소득세 탈루 등 조세법상 불법적 결과가 발생하는 점을 보면 월례비 지급은 근절해야 할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D사가 월례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지급했다고 보고 D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채무가 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정한 ‘비채변제’를 적용했다. 민법(742조) 규정에 따른 판단이다.

상고 3개월 만에 최종 결론 “묵시적 계약 성립”

‘월례비 성격’ 판단은 2심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월례비는 ‘임금의 성격’이라고 명시됐다. 재판부는 “D사가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하는 내용의 묵시적 계약이 성립했다”며 “이에 따라 A씨 등은 월례비를 지급받은 것”이라고 판시했다. 공사 입찰 참여 업체들이 월례비를 견적금액에 반영해 입찰하도록 정한 시공사의 시방서(공사 진행을 위해 순서를 적은 문서)가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현장설명서에는 타워크레인 장비임대료 외 일체 비용을 하청업체가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월례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기사들이 월례비 지급을 강제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유지하며 ‘월례비=임금’ 판단이 최종 확정됐다. 무엇보다 별도 추가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 도과 기간인 통상 3개월 이내에서 결론이 난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법리를 더 따져 볼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대법원 판결 볼 것” 원희룡, 입장 낼지 주목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제 정부가 법에 따를 차례다. 국토교통부는 월례비를 요구하는 건설기계 조종사에 대해 공갈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여기에다 올해 2월 조종사가 월례비를 받거나 작업을 전면 거부할 경우 법원 ‘확정판결’이 없어도 면허를 최대 1년간 정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월 “(월례비 판단은) 1·2심이 엇갈린 것이라 대법원 판결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만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라는 명목의 근절대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기사들을 대리한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는 “사법부의 최종 결론이 나왔으므로 정부는 더 이상 월례비를 부정한 금품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하는 면허정지 절차나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가 공갈죄를 언급하며 노동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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