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

대상판결 : 광주고등법원 2023. 2. 16. 선고 2021나22465 판결 [부당이득금]

1. 사건의 경위

원고는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이고, 피고들은 타워크레인 회사에 소속된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이다.

원고는 원청으로부터 형틀 철근공사를 하도급받았다. 원청은 타워크레인 회사들과 타워크레인에 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고, 타워크레인 회사는 피고들을 공사현장으로 보내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건설장비와 골재를 운반하는 일을 하게 했다.

원고는 피고들에게 월례비 명목으로 약 300만원 상당의 돈을 지급했다. 원고는 원청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을 뿐 피고들과 사이에는 어떠한 계약도 체결한 사실이 없으므로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에도 피고들은 원고에게 시간외근무수당에 해당하는 OT비 이외에 별도로 월례비의 지급을 요구했고, 원고는 피고들의 작업 거부나 태업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했는 바, 피고들은 법률상 원인 없이 월례비 상당의 이익을 얻고, 원고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했으므로 피고들은 원고에게 각자 수령한 월례비 상당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월례비는 ① 타워크레인 회사가 피고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원고가 대신 지급한 것이거나 ② 원고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 또는 파견 관계에 있는 피고들에게 근로를 지시하고 사용자의 지위에서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③ 도급 또는 위임사무에 대한 보수에 해당하거나 ④ 용역 또는 위험부담의 대가와 사례금의 성격을 가진 것이므로 피고들이 법률상 원인 없이 그 가액 상당의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고가 상관습 등에 따라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한 점, 피고들은 월례비를 받고 철근 선조립 등 위험 업무를 수행했고, 이로 인해 원고는 공사기간 단축 등의 이익을 본 점,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이고, 만일 원고의 월례비 반환 청구를 인정하게 된다면 건설산업의 특수성에 따른 문제의 책임을 모두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피고들에게 월례비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2. 쟁점

위와 같은 당사자 상호 공방 내용을 보면, 이 사건의 쟁점은 ① 피고들이 원고에게 수령한 월례비가 부당이득에 해당하는지 ②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면 비채변제에 해당하는지 ③ 원고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다.

3. 경과 및 대상판결의 요지

가. 1심 판단(광주지방법원 2021. 6. 4. 선고 2019가합59979 판결)

광주지방법원은 원고와 원청 사이에 각 하도급 계약이 체결됐을 뿐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월례비 지급에 대한 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 피고들은 원고의 월례비 지급으로 인해 수령한 월례비 상당의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를 가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고들은 원고에게 수령한 월례비 상당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원고가 이 사건 소 제기 시점부터 변론종결일 현재까지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고용, 도급, 위임관계 등이 존재하지 않아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음은 기록상 명백하고, 원고의 현장소장이 이 사건 소 제기 이후인 2020년 8월 및 9월께 피고 중 한 명에게 월례비를 지급하면서 ‘이의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확약서를 작성해 교부한 사실이 있고, 만약 원고가 자신의 월례비 지급에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피고 중 한 명에게 월례비를 지급하면서 ‘이의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확약서를 작성해 교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바,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춰 보면, 원고는 월례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비채변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광주고등법원 2023. 2. 16. 선고 2021나22465 판결)

대상판결은 △하청업체인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해 온 관행으로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는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지게 된 점 △공사에 관한 특기시방서에 원고를 비롯한 입찰 참여업체들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월례비 등을 견적금액에 반영해 입찰할 것이 규정돼 있고, 원고가 소속된 광주·전남 철근콘크리트 협의회도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지급해야 할 월례비 액수를 통일하기도 한 것 등을 보면 원고가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할 당시 시공사와 원고 및 피고들 사이에는 적어도 피고들이 월례비를 지급받아야 한다는 점에 관한 의사의 합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가 시공사들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명시적으로 월례비를 하도급 공사대금의 항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입찰에 참가하면서 자신이 지출할 비용에 월례비를 반영해 견적금액을 정했을 것으로 보이며, 원고와 시공사 사이에 월례비를 원고가 부담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가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피고들이 작업을 거부했다거나 월례비의 지급을 강제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원고가 일부 시공사들에게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작업 거부로 인한 공사지연은 원고의 책임이 아니므로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협조문을 보내기도 하는 등 시공사에게 월례비 지급에 관한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이 사건 각 공사현장에 관해 원고가 피고들에게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묵시적인 계약이 성립했고, 피고들은 이에 따라 원고로부터 월례비를 지급받은 것이므로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상판결은 설령 원고의 주장과 같이 피고들이 법률상 원인 없이 월례비 상당의 이익을 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원고가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부득이하게 피고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하게 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민법 742조에 따라 피고들에게 월례비의 반환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4. 대상판결의 의미

가. 월례비 성격에 관한 판단

대상판결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지급된 월례비가 수십 년간 지속해 온 관행으로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는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하고,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이 사건 각 공사현장에 관해 원고가 피고들에게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묵시적인 계약이 성립했고, 피고들은 이에 따라 원고로부터 월례비를 지급받은 것이므로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함으로써 월례비의 성격과 법률관계를 명확히 판단했다.

건설사는 건설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까지 건설기계를 소유하고,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노동자들도 직접고용했다. 그런데 건설사는 1990년대 들어 건설산업이 침체하자 건설기계 부분을 외부화했고, 대부분의 건설기계 운전자들은 자영업자로 외부화되거나 하청업체 소속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공사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 타워크레인 기사는 소속만 변경됐을 뿐 원청 또는 형틀 철근공사를 하는 업체로부터 여전히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타워크레인 회사 관리자는 공사 현장에 있지 않으므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조정실에서 철근콘크리트 회사의 소속 직원으로부터 작업을 지시받고,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건설장비와 골재를 운반한다.

이처럼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작업지시는 철근콘크리트 회사로부터 받다 보니 타워크레인 회사로부터 받는 고정급 이외에 성과금 등 임금에 대해서는 작업을 직접 지시하는 철근콘크리트 업체와 협의해 받는 관행이 더욱 확고해지게 됐다.

한편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낙찰받기 위해 낮은 공사대금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노력한다.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공정의 약 50%를 담당하는 타워크레인의 작업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근로 의욕을 촉진할 목적으로 월례비를 지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월례비를 지급했다.

그리고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및 타워크레인 안전 운행 수칙의 경계에 있는 작업이나 근로기준법 위반인 주 52시간을 초과한 근로를 요구하고,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월례비를 받는 대가로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요청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다.

이처럼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현장에서 약 200명의 작업 분량을 수행하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해 근로 의욕을 촉진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월례비를 지급했고, 이는 수십 년간 지속돼 관행이 됐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월례비의 배경과 지급 상황을 고려해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나. 정부 입장에 관해

최근 정부는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의 면허를 최대 1년간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수사기관은 월례비 요구가 공갈이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월례비가 노동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하고, 시공사와 철근콘크리트 회사, 타워크레인 기사 사이에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월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 등을 고려하면 월례비가 부당이득이자 근절돼야 하는 것을 전제한 공갈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같은 논리로 월례비를 요구하면 면허를 정지하겠다는 정부 입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월례비는 기사와 타워임대업체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작업지시는 원청사 또는 철근콘크리트 회사가 하는 기형적인 고용구조에서 기사와 철근콘크리트 회사의 이익이 합치돼 만들어진 특수한 임금체계이며, 이는 노사가 고용구조와 임금체계를 개선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노동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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