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이 건설업체로부터 급여 외 별도로 받아 왔던 월례비는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월례비의 성격을 판단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월례비를 요구하는 것을 불법행위로 보고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정부 시각에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도급 건설사, 월례비 ‘300만원반환 요구

17<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광주고법 민사3-1(재판장 박정훈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전남 담양군 소재 철근콘크리트 공사업체 D사가 타워크레인 운전기사 A씨를 포함한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 등은 D사가 20169월께부터 시공사 두 곳에서 하도급받은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했다. 시공사와 타워크레인 임대차계약을 맺은 타워크레인 회사 소속이었다. 운전기사들은 업계 관행이라며 월례비 등을 명목으로 한 달에 약 300만원의 돈을 달라고 D사에 요구해 받았다.

그러자 D사는 201911월 월례비로 총 65천여만원을 지급해 손해를 입었다며 A씨 등에게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D사는 작업거부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월례비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 등은 타워크레인 회사가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D사가 대신 지급한 것이라며 “D사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임금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1고용관계 부정, 월례비 지급 의무 없다

1심은 A씨 등이 받은 월례비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D사와 시공사 사이에 각 하도급계약이 체결됐을 뿐 월례비 지급에 대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월례비가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 등은 타워크레인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았고, D사가 타워크레인 회사를 대신해 임금을 주기로 약정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타워크레인 기사의 고용관계도 부정하면서 D사가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D사가 월례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지급했다고 보고 D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채무가 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742) 규정에 따른 판단이다. D사는 소송 제기 이후인 20207월께 이의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줬다. 재판부는 만약 D사가 월례비 지급에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월례비를 주면서 확약서를 작성해 교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소심 묵시적 계약, 월례비 의사 합치

항소심은 월례비판단을 뒤집었다. 월례비는 임금의 성격이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D사가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하는 내용의 묵시적 계약이 성립했다이에 따라 A씨 등은 월례비를 지급받은 것이라고 판시했다. 하청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라는 것이다.

공사 입찰 참여 업체들이 월례비를 견적금액에 반영해 입찰하도록 정한 시공사의 시방서(공사 진행을 위해 순서를 적은 문서)가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하도급 계약서에 월례비 부담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면서도 현장설명서에는 타워크레인 장비임대료 외 일체 비용을 하청업체가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D사 대표가 과거 운영했던 업체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1심에서 월례비를 받지 않는다면 작업 자체를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D사가 월례비를 지급할 당시 적어도 A씨 등이 월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의사 합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월례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작업을 거부하거나 월례비 지급을 강제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인 수준의 월례비라는 취지다.

정부, 월례비 받은 타워기사 면허 취소 추진
건설노조 원청 건설사의 책임, 직접고용해야

월례비 지급논란은 최근 정부가 불법행위라고 지목하며 불거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경기 수원의 주택공사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월례비 수수를 언급하면서 “(건설노조는) 부당이득을 취하는 민폐집단이다. 이런 돈이 분양가에 전가돼 국민 부담으로 지워진듯하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이달 중으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에는 월례비를 요구하거나 지급한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부당금품을 수취하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도 포함될 전망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불법하도급이 월례비 관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지난 1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실태와 진실 바로보기기자간담회에서 월례비 관행을 없애려면 건설사(시공사)가 타워크레인 기사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설사가 공기단축을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를 의도적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원청 사용자의 책임이라며 이를 불법행위로 처벌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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