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타워크레인 업계의 ‘월례비’ 지급 관행과 관련해 법원이 월례비는 임금 성격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관심이 쏠린다. 월례비가 ‘근로의 대가’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월례비를 요구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형법상 공갈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국토교통부 해석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나온다. 국토부는 월례비를 받은 조종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근절해야 할 관행” 1심 뒤집고 “근로 대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 업체·조종사 의사 합치”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고법 민사3-1부(재판장 박정훈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전남 담양군 소재 철근콘크리트 공사업체 D사가 타워크레인 운전조종사 A씨 등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 등은 D사가 2016년 9월께부터 시공사 두 곳에서 하도급받은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했다. 시공사들은 조종사들이 소속된 타워크레인 회사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조종사들은 업계 관행을 이유로 각각 월 300여만원의 돈을 D사에서 받았다.

D사는 월례비로 총 6억5천여만원을 지급해 손해를 입었다며 A씨 등에게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반면 A씨 등은 “타워크레인 회사가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D사가 대신 지급한 것이니 사실상 D사가 지급한 임금 또는 위험부담에 대한 사례금”이라고 반박했다.

1심은 조종사들이 받은 월례비는 ‘부당이득’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D사와 시공사 사이에 각 하도급계약이 체결됐을 뿐 월례비 지급에 대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D사가 조종사의 시간외근무수당(고정OT)을 지급했으므로 월례비는 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와 D사 간 고용관계도 부정하면서 D사가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월례비 지급은 근절돼야 할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타워크레인 회사가 부담할 인건비를 합리적 이유 없이 하도급 업체들에 전가한다는 것이다. 다만 D사가 월례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지급했다고 보고 D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채무가 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742조) 규정에 따른 판단이다.

항소심은 1심의 ‘월례비’ 판단을 전부 뒤집었다. 재판부는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판시했다. D사와 조종사 사이에 성립한 묵시적 계약에 따라 월례비를 받은 것이라는 뜻이다.

공사 입찰 참여 업체들이 월례비를 견적금액에 반영해 입찰하도록 정한 시공사의 시방서(공사 순서를 적은 문서)를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D사가 월례비를 지급할 당시 적어도 A씨 등이 월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의사 합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작업거부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월례비를 지급했다”는 D사 주장에 대해서는 월례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조종사들이 작업을 거부하거나 월례비 지급을 강제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봤다.

원희룡 장관 “월례비 요구하면 과태료”
노동계 “노동자 탄압만으로 해결 못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정부 방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월례비를 요구하거나 지급한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11개 건설사 사장단과 가진 긴급간담회에서 조종사들의 월례비 요구 등의 사례를 공유하고 대응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달 중으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판결을 환영하면서 정부 방침을 규탄했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법원은 월례비가 단순히 금품수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연한 판결”이라며 “원청이 조종사를 직접고용하고 정당하게 작업을 지시한다면 월례비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에서 월례비를 없애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노조와 대화를 통해 방향성을 의논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국장은 “노조는 건설업계에 대화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과도하게 월례비를 요구하는 조종사가 있다면 고발하라고 안내한 적도 있었다”며 “이러한 노조의 노력에 전혀 응답하지 않은 채 타워크레인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종사들을 대리한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는 “이번 판결에서 월례비가 노동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하고 시공사와 철근콘크리트 회사, 타워크레인 조종사 사이에 월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주장하는 공갈에 해당할 수 없다”며 “정부가 공갈죄를 언급하며 노동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종사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원청이 작업을 지시하는 기형적인 고용구조에서 비롯된 임금체계의 문제이므로 노사가 고용구조와 임금체계를 개선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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