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절 아침 분신한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21일 영면에 들었다. 지난달 2일 사망 후 50일 만에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절차를 마무리했다. 장례는 끝났지만 고인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양회동 지대장은 유서에서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와 검·경의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부른 양회동 지대장 분신 사망은 노동계를 윤석열 퇴진 구호로 묶은 변곡점이 됐다.

“먹고 살려고” 노조했던 노동자
윤석열 정권 퇴진 본격화 변곡점 됐다

양회동 지대장 장례는 빗속에서 엄수됐다. 이날 장례는 양회동 지대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시작으로 서대문구 경찰청 앞 노제와 광화문 세종대로 영결식으로 이어졌다. 양회동 지대장은 영결식 뒤 경기 남양주시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빗속에서 치른 영결식이었지만 노동자와 시민 6천명이 운집했다. 경찰이 영정차량을 막아 세우고 교통 통제를 소홀히 해 시민과 운구행렬 갈등을 방조하는 등 크고 작은 방해가 있었지만 장례는 대체로 큰 충돌 없이 마무리했다.

197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양 지대장은 철근공이다. 건설현장 철근팀장까지 올랐지만 만연한 중간착취와 임금체불, 만성적 고용불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2019년 11월 노조 강원건설지부에 가입했다. 양회동 지대장은 유서에 “먹고 살려고 노조에 가입했다”고 썼다. 노조에서 활동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고성·속초·양양·강릉 북부권을 담당하는 3지대장을 맡았다. 조합원의 일감을 따오는 게 양 지대장의 주된 업무였다고 한다. 본인의 공수(하루 업무)는 챙기지도 못해도 조합원이 일자리를 얻는 것을 기뻐하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증언이 동료들로부터 쏟아진다.

대통령 건폭 발언 뒤 강도 높은 몰이 수사
법조계 “교섭은 상호 이해 부딪히는 과정, 경찰 몰이해 심각”

양회동 지대장은 지난해 12월 건설노조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경찰조사를 받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 혐의가 적용됐다.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관철한 행위,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노조 전임비 지급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영장에 피해자로 등장한 4개 업체 중 2개 업체 현장소장은 처벌불원 탄원서를 썼지만 구속영장 청구를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혐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노조활동을 형법으로 해석해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건설업 특성상)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확보하기 힘들다 보니 노조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일정하게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 문제를 해결해 왔다”며 “그런데 정부는 건설업계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노조의 지배력 행사에만 집중한 채 사태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영장에는 차량으로 노동가를 송출하거나, 법령에서 정한 작업장 안전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산업안전수칙 의무 위반으로 고발한 점도 모두 ‘범죄 수법’으로 기재돼 있다. 노동자집회를 비롯한 별개의 노조활동을 한 데 엮어 채용과 전임비 요구를 위한 수단으로 욱여넣은 셈이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교섭은 상호 이해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노사 모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이를 거쳐 일정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과정”이라며 “개별적으로 발생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교섭 과정을 강요죄나 공갈죄로 보는 것은 노사관계와 교섭 과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양회동 지대장은 노조활동을 불온시한 정권 아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노동절(5월1일) 오전 9시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사망했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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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 노동자 외침에도
경찰 특진에 국무위원의 사자 모독까지

양회동 지대장 분신 이후 정권의 대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억울하다”는 분신 노동자의 외침에도 ‘노조 때리기’는 계속됐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11일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 사망 이후 ‘건폭’ 몰이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효과는 현장에서 드러났다. 건설노조와 체결한 단협 위반,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해고가 잇따랐다. 양회동 지대장이 활동한 강원건설지부는 조합원 1천명 중 600명 이상이 실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노조에 대한 압박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경찰청은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특진자 중 단일수사 부문에 가장 많은 인원을 ‘건폭 수사’에 할당했고, 최근 특진 인원을 50명에서 90명으로 확대했다.

‘사자 명예훼손’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양 지대장 분신 당시 이를 목격한 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양 지대장 유서들이 서로 필체가 다르다고 기사화했다. 이후 유서 3통 모두 양 지대장이 작성한 것라는 필적감정 결과가 나왔고, 월간조선은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강릉경찰서 관계자가 ‘분신 방조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이 밝혔음에도 여전히 기사는 그대로다.

정부는 이런 보도를 적극 활용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의 의미를 희석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의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입을 통해 확산됐다. 원 장관은 “죽음을 동력 삼으려는 의도”라고 페이스북에 쓰는가 하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양회동 지대장 분신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양회동 지대장 형 회선씨는 영결식에서 원 장관 발언에 대해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 소식을 들었던 순간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의무와 권리를 지키며 살아왔을 뿐인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고 외쳤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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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때리기서 집회·시위 때리기로
인권활동가 “표현의 자유마저 옭아매려 해”

정권 차원의 강경대응이 이어지면서 ‘노조 때리기’가 ‘집회·시위 때리기’로 확전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1박2일간 건설노조가 서울 도심에서 연 집회가 계기다. 경찰은 이 집회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불법집회를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불법집회 근절을 강조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사태는 노동권 관련 싸움에서 이제는 집회·시위의 자유 싸움으로 확전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정부·여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고쳐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주최하거나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개최하는 집회는 금지·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집회 주최자를 제한하고, 집회의 시간과 장소를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집회·시위를 허가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집시법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건설노조 사무실까지 압수수색 했고, 지난달 31일에는 청계광장 부근 고 양회동 지대장 분향소 설치마저 강제로 철거하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노조에 대한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회계나 비리 문제에 집중하다 교통불편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마저 옭아매려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런 경찰의 무리한 집회·시위의 자유 훼손은 전남 광양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포스코 하청업체 교섭을 지원하던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경찰 진압으로 지난달 30일 목이 짓눌린 채 뒷수갑을 찼고,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이튿날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15차례 머리를 가격당하고 무릎 연골까지 파열된 채 고공농성에서 끌려 내려오자 분노한 한국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금속노련 임원을 폭력적으로 연행한 대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서민 정치를 말하면서도 정작 노동계와는 거리를 뒀던 민주당이 참전했다. 건설노동자 관련 당내 태스크포스(TF)를 마련했고 대정부질문에서도 건설노조와 금속노련 관련 질문을 집요하게 이어갔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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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건설 특별단속 연장 시사
건설노조 조합원 정신건강 우려 수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계는 이번 양회동 지대장의 장례를 반복해서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찰도 갈등을 풀 생각은 없어 보인다. 경찰은 양회동 지대장 노동시민사회장 조문을 받고 있던 와중에도 건설노조 간부 등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장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도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집시법 위반 조사를 받는다. 앞서 경찰은 장 위원장 등에게 5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고, 노조는 장례 절차를 마치고 나서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장 위원장 등은 1박2일 노숙농성과 관련해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건폭 몰이’ 수사도 끝이 아니다. 25일 마무리 예정이었던 경찰의 건설현장 특별단속도 수사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노조에 따르면 21일 현재 19차례 사무실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1천300여명이 업무방해와 강요·공갈 등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았다. 석방된 3명을 제외하고 19명이 구속돼 있다. 특별단속 기간이 늘어나면 ‘무더기’ 소환과 압수수색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노조는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건폭 몰이’를 당하는 건설노조는 조합원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건설노조가 수사 대상자 295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10명 중 3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2차 총파업을 검토 중이다. 장옥기 위원장은 지난 17일 ‘양회동 열사 범시민 추모제’에서 양회동 열사 장례를 마무리하고 2차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총 7월 총파업과는 별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대회를 예고한 상태여서 하반기 노정갈등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어고은·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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