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권 변호사(법무법인 이현)

대상판결 : 대법원 2023. 5. 11. 2017다35588·2017다35595(병합)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안의 개요

가. 피고(현대자동차)는 취업규칙을 제정해 전체 직원에 적용하는데,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구 근로기준법(2003년 9월15일 법률 제6974호로 개정)이 2004년 7월1일부터 피고 사업장에 시행되면서 이에 맞춰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했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구 취업규칙과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부여하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나. 피고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제정하면서 전체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다만 피고는 2004년 8월16일 지역본부별, 부서별로 간부사원들을 모아 전체 간부사원 6천683명 중 약 89%에 해당하는 5천958명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다. 원고(선정 당사자)들 및 선정자들은 피고에 입사해 과장급 이상의 직위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인데 1심에서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2004년부터 지급받지 못한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부당이득 반환으로서 청구했다.

라. 1심은 청구원인 주장 자체에 따라도 원고 등이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원고 등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원고(선정당사자)들은 항소했고, 원심에서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의 지급청구를 추가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여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구 취업규칙과 달리 월차유급휴가 조항을 삭제하고 연차휴가일수의 상한을 25일로 제한한 부분은 그 문언상 간부사원들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변경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나.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대한 동의주체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간부사원 취업규칙 제정 당시 간부사원이었던 직원뿐만 아니라 장래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던 일반직·연구직·생산직 등의 직원들까지 포함한 근로자 집단이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의 동의주체가 된다고 보았는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동의주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다.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를 위반해 작성·변경된 취업규칙의 효력

1) 법률의 규정 및 기존 대법원 판례의 태도

취업규칙의 작성·변경이 근로자가 가진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해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하는 내용일 때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 적용을 받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종전 대법원은 해당 취업규칙 작성 또는 변경이 필요성과 내용의 양면에서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 정도를 고려해도 여전히 해당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던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단해 왔다(대법원 1978. 9. 12. 선고 78다1046 판결, 대법원 2015. 8. 13. 선고 2012다43522 판결 등 다수).

그러나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

2)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

민법은 신의성실과 권리남용 금지를 민사법의 중요한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서 실정법을 형식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부당한 결과를 막고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하는 작용을 한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행사할 때도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란 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나아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는 취업규칙의 변경 반대 등을 말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의 입법 취지와 절차적 권리로서 동의권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3.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대상판결은 일견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관한 근로자들의 동의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는 획기적인 판결로 보인다. 다만 동의권 남용의 법리가 새롭게 제시됐기 때문에 앞으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소송에서 법원이 과연 어떤 구체적인 기준으로 동의권 남용 여부를 판단할지에 따라 실제로 동의권 보장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할 때보다 더 나아졌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

다만 종전의 합리성 법리와 새로운 동의권 남용 법리의 고려사항이 일부 겹칠 여지가 있어 종전 법리의 폐기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 점에 관해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대법원이 대상판결에서 새롭게 제시한 동의권 남용의 법리는, 원칙적으로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있어야 유효한 변경이 되지만 예외적으로는 동의가 없더라도 동의권이 남용되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유효한 변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란 ① 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② 나아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③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판단했다.

종전의 판례상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유무는 ① 취업규칙의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 ② 사용자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③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④ 대상조치 등 관련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상황 ⑤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경위 및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⑥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동의권 남용 법리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그 법적 근거면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전자는 민법의 권리남용 규정을 근거로 보고 있으나 후자는 실정법상의 근거가 없고 오히려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에 반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용요건 면에서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전자의 경우 ① 취업규칙을 변경할 객관적 필요성과 ② 동의를 받기 위한 설득과 노력이라는 사정은 후자의 법리를 적용할 때 고려했던 사정과는 다른 사정이다. 그러나 ③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나 이유 없는 반대’라는 사정은 후자의 법리 즉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하는 데 고려한 사정과 겹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법리가 실무에서 오랫동안 적용됐고 해당 법리를 적용하는데 고려할 사정이 상당히 많은 사례로 축적이 돼 있다. ‘변경 반대의 합리성’을 판단하는데도 그러한 사정들이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종전의 법리가 사실상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과연 합리성 법리의 폐기가 동의권 보장 강화라는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은 불확실성이 있다. 앞으로 개별 사건에서 동의권 남용 법리 적용 사례가 축적돼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