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있어 대법원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의 폐기를 환영한다. 그러나 대법원의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이론에 심히 우려를 표명한다.” 1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이렇게 논평했다.

11일 대법원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병합) 전원합의체 판결). 이에 대한 논평이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집단적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작성·변경해 근로자에게 기존보다 불리하게 근로조건을 변경했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적법, 유효하다고 판단했던 종전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했다. 이러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의 폐기는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지 않고, 노동자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조건을 덧붙여서 판결했다. 노동자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종전과 같이 노동자측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고서 한 사용자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적법, 유효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민변 노동위는 우려를 표한 것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것은 환영하지만,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법리를 보태서 판결한 것은 우려하고 있다.

2. 사실 나도 할 말이 많다.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 그저 법리적 관심 말고도 사건 자체에서도 무심할 수가 없다. 현대차에서 간부사원에 대한 취업규칙을 제정해 논란이 됐을 당시 그 취업규칙을 적용받게 된 간부사원들이 찾아와 상담했다. 2000년대 중반으로 기억되는 데 당시 나는 그 취업규칙이 위법, 무효라고 답변했고, 그 취업규칙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었다. 과반수로 조직된 현대차노조의 동의 없이 만들어 간부사원에게 적용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근로기준법 94조에서 규정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서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주된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서 사용자 현대차의 주장은 현대차 노동자 일반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 적용되는 별도의 취업규칙을 제정한 것이라며 취업규칙 변경에 해당하지 않고, 취업규칙 변경에 해당한다 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돼 적법, 유효하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하급심 법원은 간부사원의 청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현대차에서는 간부사원까지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부사원만 별도로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만들어 적용해 새로 취업규칙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기존 취업규칙을 변경한 것이고, 기존 취업규칙의 연월차 등을 불리하게 한 것이라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한 것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달된 법원 판결문에는 내 주장과 달리 판시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판결에 유감을 갖고 있었다. 법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판결을 읽는 건 쉽지 않다. 법리적으로 확신할수록 더 어렵다. 이렇게 당시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관한 하급심 판결은 내 법적 확신을 짓밟았고, 그렇게 내게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 사건은 심히 유감스럽게 남아있다.

3.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해 대법원이 판시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거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해왔다.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근로기준법 규정에 반하는 것이라서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대법원 판결문을 읽을 때면 나는 이 나라에서 법집행은 어째서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작동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는 1989년 개정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했다.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다(현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 이 규정 대로 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법집행을 해야 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예외를 규정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우리 법원은 사용자를 위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노동자측의 동의가 없어도 적법, 유효한 취업규칙으로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 6명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사용자의 취업규칙 작성·변경 권한을 제한할 이유가 없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신의칙이나 조리 등 법의 일반원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법문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별도의견을 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의 폐기에 반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법리적 주장에 따라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관한 판결한 것이다.

어떤가. 당신도 나름 이해할 만한 법리적 주장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사회통념상으로 합리성이 인정될 취업규칙 변경이면 그 효력을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당신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그렇게 생각하고서 이 법리에 관해서 평석하고 학설했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납득되지 않는 법리가 당당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에 관한 주장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있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 했다. 만약 별도의견과 같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신의칙이나 조리 등 법의 일반원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법문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면, 어째서 이 나라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위반한 사용자를 위해서만 작동했던 것인가. 그야말로 신의칙이나 조리 등 법의 일반원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라면 오히려 그 법리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를 위해서 작동하는 것으로 판결했어야 했다. 근래 문제가 되는 임금피크제를 예로 들어 보면, 과반수노조의 동의로 도입된 것이라 해도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32조3항)과,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4조) 등에 의하면 근로기준법 94조에서 규정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친다 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위법, 무효라고 법원은 판결했어야 했는데, 이 나라에서 법원이 이렇게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를 위해서 그 법리를 작동한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 나라에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데만 그 법리가 사용될 뿐이다. 신의칙이나 조리 등 법의 일반원칙이라면 사용자를 위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법리여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 나라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그런 법의 일반원칙이 아니었다.

4. 이 나라의 취업규칙 법리에 나는 할 말이 많다. 이렇게 말했어도 겨우 머리말을 끄적거린 것에 불과하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동자측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을 덧붙여 판시한 데 나도 심히 우려를 표한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대신에 이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통해서 노동자측의 동의 없이 사용자가 불이익하게 변경한 취업규칙을 적법, 유효하다고 법원이 판결할까 염려한다.

이에 더해 나는 이 나라의 취업규칙 법리 일반에 유감이라고 말해야겠다. 취업규칙은 사업(장) 노동자의 근로조건 및 복무규율 기준에 관해 사용자가 정한 준칙이라고 보는 것이 판례고 학설이다. 별도의견을 낸 대법관도, 노사를 대리하는 변호사도, 로스쿨의 노동법 교수도 취업규칙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취업규칙은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인 근로조건에 관해 사용자가 정한 기준에 불과해야 한다. 그러니 취업규칙은 사업장에서 근로계약관계에 관한 법규범으로서 성격과 효력을 갖는다고 파악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가 정한 기준에 불과한 것이라고 취급해야 하고, 그 기준이 근로계약의 기준을 상회하는 경우에는 그 취업규칙 기준이 근로계약의 기준으로 간주해 적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용자가 정한 기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면 된다. 이렇게 근로기준법을 해석해 적용해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목적에 부합하게 법집행을 할 수 있다. 불이익 변경된 취업규칙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노동자의 계약 자유를 보장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동의했다고 해서 불이익 변경된 취업규칙을 그에 반대하는 노동자에 적용하는 것은 노동자를 자유 없는 노예로 취급하는 짓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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