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불법 하도급 같은 건설현장 불법·부조리에 ‘맹탕’ 대책을 내놓으면서 노동계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건설노조 압수수색을 추가로 실시했다. 16·17일 대규모 서울 도심 집회를 예고한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고질적 문제인 저가경쟁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짜맞추기 수사 논란에
‘관심법’ 압수수색 영장

1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경찰은 지난 12일 새벽 6시께 건설노조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 사무실과 지부장·사무국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1월18일 건설노조 광주전라타워지부와 이튿날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등 압수수색을 비롯해 15번째 압수수색이다. 구속자는 현재까지 16명에 달한다.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는 영장에 구체적 혐의점이 없음에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부에 따르면 “비록 피의자들이 단체협약시 피해자들에게 협박 또는 해악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을시 위와 같이 행동을 통해 이후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게 영장 사유다. 일종의 ‘관심법 영장’인 셈이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는 “단 한 줄도 납득할 수 없는 노동 3권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경찰 수사가 짜맞추기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사실상 민주노총의 쟁의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한 내용의 ‘예시’를 담은 피해신고서를 현장 건설업자들에게 배포하고, 구체적 혐의점이 없는데도 포괄적인 소환조사를 실시하거나 8시간 넘는 장시간 압박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허용하고 있는 쟁의행위를 두고 ‘협박·공갈’ 등으로 해석해 형법을 적용하면서 노조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지목해 혐오를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공갈범’ 지목에 대한 모멸감을 호소하며 노동절인 1일 아침 분신해 2일 끝내 사망했다.

불법 하도급 기존 대책 되풀이

고 양 3지대장이 정권 퇴진과 구속 노동자 석방을 호소하며 쓴 유서를 전달받은 원내 야 4당은 정권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의당은 9일 오전 경찰청을 방문해 수사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당은 사과와 수사 중단이 없을 경우 윤 경찰청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건설현장의 사용자쪽 불법이나 부조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1일 오전 정부와 국민의힘은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건설현장 대책으로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과 수수를 모두 처벌하는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을 포함해 5개 법령 개정안을 내놨다. 모두 건설노조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그러면서 불법 하도급 대응으로는 건설산업정보망과 건설공제조합 비교·검증을 고도화한다는 내용만 내놨다. 이미 실시하고 있는 방식으로 ‘고도화’의 구체적 내용조차 없다는 비판이다.

노동계는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려면 임금 하한선을 두는 적정임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단속·처벌 강화만으로는 불법 하도급 근절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건설 전문가 “적정임금제 도입해야”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불법 하도급 금지 규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건설업계가) 스스로 자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정임금제란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건설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심 전문위원은 “한국도 시중노임단가를 공표하지만 노동자에게 지급하라는 게 아니라 발주처 설계금액에 반영하라는 의미”라며 “미국은 ‘prevailing wage(적정임금)’를 똑같이 공표하는데 이를 노동자에게 지급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전문위원은 “적정임금제 도입 후 다단계 하도급을 억제해 미국에서는 재해건수 50%, 사망재해 15% 감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미 국회에는 건설업 적정임금제 근거를 마련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이렇다 할 논의 없이 잠자는 중이다.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옥주 같은당 의원은 2021년 각각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과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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