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선거 대응용 가설정당 방식으로 당을 만드는 건 정의당은 물론 시민들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이 안에 대해 찬반이 갈려 있는 상황이다. 녹색당도 부정적이고, 노동당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보정당을 하나로 합치자고 했던 좋은 의도가, 민주노총 내부 분란까지 이어지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리한 결정 시도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표한다.”

이정미(57·사진) 정의당 대표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일산 킨텍스에서 임시대대를 열고 정치·총선방침을 논의한다. 내년 총선에서 진보대연합정당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기존 진보정당을 유지한 채 후보들은 진보대연합정당 소속으로 출마하고, 총선을 치른 후 당선자가 기존 소속 정당 복귀를 원하는 경우 이를 보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후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이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정의당이 위헌이라 주장한 방식,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

- 민주노총의 진보대연합정당안에 대해 정의당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
“반대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정당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이를 강령과 조직노선에 담아내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합의점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만들었다가 분열하는 경험을 해 왔다. 다시 이런 부침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총선 1년을 앞두고 당을 만드는 작업을 거치는 건 민주노총에 큰 부담이다.

다른 이유는 시민, 당, 민주노총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안이라는 것이다. 정의당에서 2020년에 위헌이라고 주장했고, 헌법재판소에 제소까지 한 방식이다. 위헌이라 주장했던 방식을 사용하면 시민들이 납득하겠나. 또 이 당에 참여하기 위해 정의당 대표인 제가 탈당을 해야 하고, 비례의원들의 지역구 출마를 위해서는 그들을 제명해야 한다. 녹색당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노동당도 의견이 분분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찬반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진보정당을 합치자고 했던 의도가, 민주노총 내부 분란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정의당이 대중조직이 결정하는 정치방침에 적극적으로 토론과 논의를 하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지도부가 민주노총 안을 받을 수 없으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토론을 해 왔다. 실제로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만들어진 민주노총·진보정당 연석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입장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지 않나. 당내에서도 토론을 거쳐 왔다. 제가 당대표가 되고 난 후 17개 시·도를 돌아다니는 ‘재창당 전국대장정’을 하면서도 당원 간담회 토론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고, 당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다. 숙고 끝에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무관심 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 이 안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통과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상황을 봐야 하겠다. 다만 우려를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의 의지와 열의를 얼마만큼 불러 모을 수 있겠는가. 양경수 위원장이 밀어붙인 안 아닌가. 찬반이 양분된 상황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의 직권 상정으로 안건이 올랐다.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느끼는 지도부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민주노총의 위기 극복은 총선 때 분열된 진보정당을 모두 모아 시민들에게서 투표를 많이 받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치 승부 걸어 볼 지역 기반 있어,
집중 지역·진보정당 후보 공동선정해 보자”

- 민주노총 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정의당 대안은 무엇인가.
“‘총선무지개연대’다. 진보정당과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를 공동의 목표로 삼는 정치세력들과 공동후보를 내는 방식이다. 2024년 총선을 공동대응해 보자는 대안들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제대로 된 선거운동이나 지지운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예전에는 진보정당 후보, 민주노총 지지후보 리스트를 내려보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출신들을 모두 모아 지지후보로 선정하고, 총선 후보들의 명단을 내려보내는 식으로만 대응했을 뿐이었다. 당연히 선거 운동은 없었다.”

-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진보정치가 승부를 걸어 볼 만한 지역 기반들이 있다. 전국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몇 군데가 있다. 부산·울산·경남과 같은 노동자 벨트, 진보세력이 있는 지역 같은 경우 ‘여기는 어떤 당’ ‘저기는 어떤 당’ 이렇게 총력집중할 수 있는 데를 정해서 민주노총도 전폭 지원을 하자. 진보정당을 다 아우를 순 없겠지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역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나.”

-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지역들이 있는가.
“지금 시점에서 콕 집어 이야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다만 번뜩 떠오르는 지역들이 있을 거다. 같이 상의를 해 보면 되지 않겠냐는 거다. 일단 민주노총 임시대대까지 지켜봐야 하겠다. 만약 임시대대에서 양경수 위원장 안이 통과한다면 진보정치 연대·연합에 더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정한) 국면이 지나고 나면 총선연대 테이블을 만들어서 다른 진보정당과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 연대 확장 방향성 세우면
정의당이 노동정치로 뒷받침할 것”

- 정의당은 지난해 재창당을 거치며 노동 중심으로 진보정치와 노동계가 공동대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당연하다. 다만 ‘무엇에 대한 공동대응’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이 함께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함께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이 고민해 보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산별교섭이라는 목표를 갖고, 노조로 보호되지 못하는 노동계층 안에서 사회적 약자 계층을 세게 끌어안는 노력을 펼쳐 나간다면 정의당은 산별교섭 법제화, 일하는 시민 기본법, ‘노란봉투법’ 입법과 통과 활동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이 되면 좋겠다.”

- 민주노총의 현재 목표가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지.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악이 전면화하고, 민주노조 압살 정책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내부를 단결시키기 위해 대응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표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노조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투쟁을 거듭해 온 시기를 넘어, 지금은 연대를 확장시켜야 하는 시점이다.

1987년 민주노조가 전국으로 확산했을 때 기업별노조의 틀을 부수지 못한 한계가 있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공장을 중심으로 엄청난 정리해고 바람이 불면서 노조 내부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했고, 지금은 노동시장 구조가 다변화하는 상황이 됐다. 노조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 역할에 정의당의 노동정치가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 민주노총의 방향성을 논하기 전에 정의당의 정체성부터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의당의 정체성은 명확한가.
“정의당이 누구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를 생각해 줬으면 한다. 21대 국회에서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같이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법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단식농성을 했다. 의원 한 명 한 명을 만났다. 국회 질의시간마다 집요하게 의제를 제기했다. 정의당이 국회에 없었으면 이런 법안들이 우리나라에 탄생할 수 있었을까. 더불어민주당에서 법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정의당이 싸웠기 때문에 이를 끌고 올 수 있었다.

정의당은 일하는 시민을 위한 기본법도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이 만들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생뚱맞은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일하는 시민을 위한 기본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삶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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