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 대표자들이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지방선거 승리·정치개혁 민주노총·진보정당 합의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총선방침을 결정하는 2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건설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분열이 아닌 단결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맞부딪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건 철회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돌리고 있다. 24일 대의원대회에서 격론이 예상되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경수 위원장 안으로 안건 상정
“총선 뒤 단결해 정치세력화 지속해야”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일산 킨텍스에서 76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2023년 총파업기금 조성 △규약 개정 △정치방침 및 총선방침 수립 건을 논의한다. 총파업기금 조성과 규약 개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지 않지만, 세 번째 안건인 정치·총선 방침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어 대회 현장에서도 격론이 예상된다. 지난달 16일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위원장안으로 임시대대에 오른 것이다.

‘2024년 민주노총 총선방침(안)’은 내년 총선에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을 만들어 지역·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존 진보정당을 유지하고 총선을 치르고 나서 당선자가 기존 소속 정당 복귀를 원하는 경우 이를 보장토록 하는 것이다. 이양수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선거를 치르고 해산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은 이 정당을 중심으로 계속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자는 입장”이라며 “(정당 복귀를) 열어 놓자는 것이지, 이를 전제로 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에 위성정당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역후보는 기존 정당 소속으로 각자 출마하고, 비례대표만 연합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선거 이후 복귀하는 비례위성 연합정당 방안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심화하고 있는 만큼 분열이 아닌 통합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단식농성 등 ‘바깥’에서의 투쟁을 이어 왔지만 법 통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세력화에 대한 요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2012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한 뒤 뚜렷한 정치방침을 세우지 못하면서 선거 때마다 혼란을 반복해 오기도 했다.

“민주노총 결정 따라라? 특정정당 패권주의 의심”
“진보정당 희망 키워야, 준비 안 됐다고 가만 있나”

그럼에도 정당 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합’만을 추진했을 때 본래 취지는 퇴색되고 실효성도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치방침·총선방침 반대 및 안건 철회 요구 연서’ 제안자로 이름을 올린 김호규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등 조건을 따져 봤을 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나’를 버리고 ‘우리’로 나아가자라고 하는 데 대한 합의 없이 민주노총이 결정했으니까 (정당은) 따르라는 식은 앞뒤가 바뀐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방향성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더라도 양경수 위원장이 추진하는 방식과 절차, 시기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안건 철회 연서 제안자인 최준식 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정당이 동의할 수 있는 여건과 방식과 시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기만 하면 조합원들의 동의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며 “특히 중집에서 합의되지 않은 안을 위원장 직권으로 올린 것은 치명적인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비판했다.

4개 진보정당 가운데 대부분이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에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가능케 하는 안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2011년 통합진보당으로의 통합 과정과 선거에서 전략공천 등에서 문제가 됐던 특정 세력의 패권주의가 다시 엿보인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강행을 한다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정치방침 ‘공백’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단결하라고 하면서 정작 우리가 단결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이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을 많이 잃어 가고 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보정당은 더 이상 노동자들의 희망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청한 산별대표자는 “조합 내부로만 운동이 향한 지난 10년의 후과가 현재”라며 “노조는 조합원을 상대로 교육을 하지 않았고, 경제투쟁에 몰두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자는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며 “현실을 자각하고 무엇이든 시작하지 않으면 노조는 더 보수화하고 기득권화 한다”고 덧붙였다.

표결 처리 가능성도, 결과는 안갯속

양쪽의 간극이 큰 만큼 2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견을 좁히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합의 없이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게 될 공산이 크다. 안건 통과를 표결에 부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결과는 안갯속이다. 가결되더라도 진보대연합정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논란과 갈등이 재연할 수 있다. 부결된다면 양경수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노총 집행부 입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고은·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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