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근로시간 개편’이 화두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입법예고 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진화에 나섰다. 현행 ‘주 52시간’과 ‘주 60시간’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몰아치기 노동’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과로’를 넘어 노동시간이 한꺼번에 몰리는 ‘폭로(暴勞)’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시간 노동, 특히 집중근무로 과로해 숨지거나 쓰러진 노동자들과 유족을 연속으로 심층 인터뷰한다. ‘몰아서 일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짚는다. 과로사 통계를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핀다.<편집자>

“아버님이 쓰러지기 며칠 전 코 밑이 헐어 있었어요. ‘식사하실래요?’라고 여쭸는데 ‘잘 거야’라고 하시고는 주무셨습니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어요. 돌아가시고서야 교대근무로 굉장히 피곤하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어요.”

야간에 이틀간 밤새 일하다 2017년 5월6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20여일 만에 숨진 초등학교 경비원 이도관(가명·사망 당시 70세)씨의 며느리는 시아버지 이씨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씨 며느리는 3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버님이 빨간 날 연달아 밤새워 일하며 몸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며 “남들은 쉬지만, 경비원에게는 더 피곤한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속상했다”고 울먹였다.

한 달 2번 쉬고 휴일 24시간 근무에 ‘쪽잠’

트럭 운전기사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이씨는 2015년 7월부터 경비업체 소속으로 부산 동래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야간에 학교 출입시설 개방·순찰·폐문 등 경비 업무를 ‘홀로’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상주하는 일이 많았다. 평일은 오후 4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16시간을 학교에 머물렀다. 계약서상에는 휴식 2시간과 수면 8시간을 제외한 6시간을 근무하도록 했다.

‘공휴일’ 근무시간은 더 길었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24시간을 상주했다. 휴게(3시간)와 수면(8시간)을 빼더라도 하루 13시간을 일했다. 휴무는 월 2회에 그쳤다. 매일 수면시간(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씨 ‘단독’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대기시간에도 쉬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른바 감시업무나 근로가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뤄지는 ‘감시·단속적’ 노동자다.

실제 학교 행정실 관계자와 동료 경비원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학교에서 약 30분간 저녁식사를 마친 후 경비실에서 근무대기를 했다. 주말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학교 밖으로 외출하지 못했다. 순찰시간은 고정돼 있었지만 시건 장치와 전원 코드, 창문 열림 상태 등을 확인하고 휴지와 담배꽁초 등을 줍는 일을 병행했다. 식사 중에도 행정실 전화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해서 상황 발생시 행정실에 즉시 보고해야 했다.

특히 배드민턴 동호회가 생긴 이후 쉬는 시간이 더욱 줄었다. 동호회 회원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체육관을 개방해야 했다. 사실상 보안장치를 작동하고 순찰을 마치면 다시 잠을 이루기 힘든 날이 지속됐다. 이씨 며느리는 “아버님은 숙직실에서 주무시다가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오면 불을 켜러 가거나 미리 체육관 문을 열어 놨다”며 “늘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동물이 지나가서 센서 등이 켜지기라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했던 것 같다. 쪽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최대 14시간 근무, 산재 인정까지 5년

이때부터 이씨는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고 유족측은 전했다. 이씨 며느리는 “아버님이 경비만 하는 게 아니라 잡무가 많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휴게시간이 있지만 온전히 쉬지 못한 상황이 많아 피로가 쌓였다”고 회상했다. 이씨가 퇴근하면 한낮이지만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족한 잠을 채우기 바빴다고 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이씨는 어린이날 전날부터 이틀간 연속으로 야간근무를 하다가 2017년 5월6일 오전 10시께 강당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에서 뇌경색과 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갔지만 20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씨 며느리는 “평소 특별한 지병이 없었기에 너무 놀랐다”며 “제대로 면회도 하지 못하고 아버님을 보내드려야 했다”고 흐느꼈다.

‘과로 기준’을 훌쩍 넘은 근로시간이 이씨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줬다. 실제 유족측이 대기시간을 포함한 상주시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이씨는 발병 전 4주간 총 256.5시간, 발병 전 12주간 총 68.9시간을 근무했다. 1주 평균 64~68.9시간에 달한다. 특히 사고 일주일 전부터는 하루 순수 근로시간이 최대 14시간30분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한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인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근무와 1주 평균 4주간 64시간 근무를 초과한 것이다. 유족측은 고인이 2년6개월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고인의 업무시간을 4주간 평균 52.45시간, 12주간 평균 57.9시간으로 보고 ‘만성 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기시간은 제외한 것이다.

나아가 이씨가 사고 직전 일주일 내내 일했다는 이유로 업무량도 30%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고 봤다. 공단의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이 정한 ‘돌발 상황 또는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발병 전날 휴일인 어린이날에 통상적으로 근무했다는 이유에서다.

사고 이후 산재가 인정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유족은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단속적’ 업무 특성상 충분한 휴식이 가능했다며 패소 판결했다. 4~5시간 정도의 순찰 시간을 제외하면 대기시간과 휴식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망인의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고 휴일이 부족한 업무로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3개월 뒤인 5월7일 유족 승소로 판결이 확정됐다.

무너진 가족 “장시간 업무, 고령 노동자에 치명”

그사이 남은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74세의 고령인 이씨 아내는 남편의 죽음 이후 암이 발병해 치료받고 있다. 5살 손주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다.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씨 며느리는 “아버님은 그저 일하는 것에 감사했다. 정말 성실하신 분이라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자체를 즐거워 하셨다”며 “손주들을 너무 예뻐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씨 아내는 대법원의 산재 인정 판결에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고 한다. 이씨 며느리는 “어머님은 유족급여도 있지만 산재를 꼭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라며 “5년의 세월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지 가늠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아버님 사고를 보며 ‘선택권’ 강화를 내세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결혼 전 간호사로 일했던 이씨 며느리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꼈지만 주 5일이라도 환자가 몰리면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실은 제도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 근로시간이 줄어야 그나마 관행적으로 하던 초과근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경비원’의 업무를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소송 과정에서 경비원의 노동강도가 약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며 “대부분의 경비원은 고령에다 잡무가 많고 심리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노동강도가 절대로 낮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도 정부 방침이 ‘고령 노동자’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족을 대리한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는 “장시간 업무는 불충분한 회복을 초래하며 업무에 익숙해진다고 누적된 피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조 변호사는 “경비노동자에 예외적인 근무시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정부 정책은 주 69시간이라는 초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을 은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건강에 취약한 고령 노동자의 취업 기회 자체를 박탈할 가능성도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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