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15일 오후 경기 군포시 의식주컴퍼니 군포공장을 방문해 세탁서비스 ‘런드리고’의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홍준표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모바일 세탁서비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의 군포공장에 방문했다. 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실시한 근로감독에 따른 시정지시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차원이다. 런드리고의 노동환경은 <매일노동뉴스>의 네 차례 취업기 연속보도를 통해 알려져 근로감독으로 이어졌다.<본지 2023년 1월9일자 2면 “혁신에 가린 ‘런드리고’ 노동, 현실 드러났다” 참조>

이 장관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유연화와 파견허용업무 확대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침을 강조하며 주로 사용자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법령 위반 사실이 적발된 사업장을 상대로 한 발언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런드리고는 불법파견을 포함해 임금·복리후생 차별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해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의식주컴퍼니 군포공장을 방문해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와 인력파견업체 윌앤비전 대표, 근로자대표 등과 함께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현장 방문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입고·세탁 등 공정 과정을 살펴보고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직접 런드리고가 자체 개발한 빨래 수거함인 ‘런드렛’을 체험했다.

‘근로시간 탄력성’ 요구에 “노동시장 제도 변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 장관은 “근로감독에서 확인된 위반사항들을 점검하고 보완해 노사 상생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편이 마련된 것 같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스타트업의 모범 사례가 되길 당부한다”고 운을 뗐다.

사측의 애로사항 청취 과정에서 제도 개편 방향을 언급했다. 조성우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늘면서 군포공장을 빠르게 열었다”며 “그런데 직원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등 상황이 악화해 관리직원들도 투입되는 등 법적 기준을 지키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산업 특성과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주 52시간제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성수기에 들어서면 물류가 많아져 근로시간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이 장관은 “현재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노동시장 내 근로자 보호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호응했다. 이어 “근로자 삶의 질은 높이면서 근로조건은 두텁게 보호하고,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에 맞게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연장근로 한도를 연 단위로 확대하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담은 법안을 입법예고한 노동부 방침과 같은 맥락의 발언이다.

“파견법, 고쳐야 할 때” 업종 확대 요구 호응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에서 언급됐던 ‘파견대상업무 확대’와 관련한 견해도 밝혔다. 인력파견업체인 윌앤비전 대표가 “현재의 파견대상업무는 스타트업 등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현장의 인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해 변화된 노동시장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장관은 “1998년 도입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지금까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며 “현 정부 들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제 고쳐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또 “파견업종이 한정적이라 하도급이 불법파견 소송으로 이어져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는 게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인력파견업체 대표는 “노동부가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면 근로자를 오히려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것이 훨씬 근로자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 장관은 “반기업 정서를 벗어나 미국의 ‘아마존’과 같이 런드리고가 ‘고(GO)’ 할 수 있게 인력 지원 등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기자가 노동시간 유연화와 파견업종 확대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이 장관은 즉답을 피했다. 다만 “파견대상과 관련한 논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라고 했다. 노동부는 합법 파견의 범위를 경사노위에 임의기구 성격의 ‘연구회’를 통해 논의할 계획이다.

▲ 홍준표 기자
▲ 홍준표 기자

런드리고 불법파견 181명 적발, 시정지시 이행

그러나 이 장관의 ‘주 52시간제 유연화’ ‘노동시장 유연화’ 발언은 시정지시를 받은 사업장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인다. 노동부가 지난해 11월23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서·성수, 경기도 군포 등 공장 세 곳의 현장조사를 실시해 법 위반사항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본지가 제기한 불법파견 문제를 집중 점검해 인력업체 직원 181명을 직접고용하라고 주문했다. 미이행시 범죄인지와 과태료 부과 방침도 밝혔다. 노동부는 세탁서비스가 파견대상업무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런드리고의 세탁·입고·출고 업무는 파견법이 정한 근로자파견대상 업무에 속하지 않는다. 인력업체 직원이 런드리고의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을 받으며 원청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다고 판단됐다.

의식주컴퍼니는 시정조치를 모두 완료했다고 밝혔다. 조성우 대표는 “불법파견을 비롯해 연장근무 문제도 모두 지시를 이행했다”며 “현재 주 52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 40시간까지 근무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윌앤비전 대표도 “모든 인력업체 직원이 의식주컴퍼니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며 “지난해 말 도급계약이 해지돼 현재는 런드리고에 인력을 파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구내식당도 마련하고 휴게시간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원·하청 간 불합리한 차별도 적발했다. 인력업체의 통상임금 수준은 비슷하지만, 군포공장의 경우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원청 노동자의 급여만 올렸다고 판단했다. 6천만원대의 현금성 복리후생 혜택 일부도 인력업체 직원들이 차별받았다고 보고 7천여만원의 금품 지급을 시정지시했다. 이 밖에 연장근로시간 한도 위반과 시간외근무수당·연차수당 과소지급(100만원대)과 야간근무 및 유기용제 등 취급자 특수건강진단과 특별안전보건교육 미실시도 지적됐다.

“노동개혁 방점, 세탁공장도 유연화 의문”

이렇듯 런드리고의 전방위적 노동법 위반이 적발됐는데도 노동부 장관이 사측 요구를 반영한 듯한 발언은 노동계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법조계는 우려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지식노동사회에서 노동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는 차원에서 근로시간이 유연화된다면 산업 변화에 부합하겠지만, 육체노동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다. 세탁공장에 유연화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타트업이더라도 개별 노동자가 수행하는 직무의 내용은 기존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며 “노동시간이 통제되고 휴식권이 보장되는 것이 미래 산업 발전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노동환경이 유의미하게 변화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군포공장의 한 직원은 “업무가 끝나고 청소하느라 12시에 퇴근한 날도 있다”며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등 직원의 복지를 챙겨 준다는 차원이지만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관리직원들은 지시만 하고 현장 직원들이 청소까지 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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