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철씨는 옷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 의류수선업체 사장이지만 그가 고용한 직원과 똑같이 일한다. 먹고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지만 제도권 ‘노동’을 하는 이들이 누리는 권리는 없다. 노래하고, 연기하거나, 축구경기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위탁이나 용역 같은 다양한 형태의 계약관계를 맺는 ‘나 홀로 사장님들’이다. 그들처럼 다른 n명의 개인사업주가 사회적 보호벽 밖에 놓여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편집자>

“노동하고 올게.”

입말에서 자주 쓰지 않는 표현이다. ‘노동’ 하면 되레 노동운동부터 떠올린다. 대신 사람들은 “일하러 간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일’은 곧 ‘노동’이지만 우리나라 제도는 이 둘을 특별히 구분한다.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사람(15~64세 생산가능인구)은 올해 8월 기준 4천527만명이다. 이 중 2천841만명(62.7%)은 실제로 일을 한다(취업자).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는 사람(실업자)은 61만5천명이다.

일하는 사람 4명 중 3명(76.4%)은 각별히 노동자(임금근로자)로 부른다. 나머지 1명은 임금을 받지 않는 자영업자·프리랜서(비임금근로자)다. 임금근로자에 포함되지만 특수고용직(비전형근로자)도 노동자 취급을 받지 못한다. 노동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노동자와 일하는 사람의 구분은 엄격해서 기본적인 4대 보험 적용 여부부터 달라진다. 대관절 일과 노동이 무엇이 다르기에 이런 차이를 둘까.

“종속돼 월급받는 사람만 노동자”

법적으로 노동이냐, 일이냐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령의 적용 대상이냐, 아니냐를 가른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개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노동, 인적·경제적으로 종속돼 일하는 사람의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 범위를 넘어선 것은 일로 표현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워커(Worker)의 노동은 일이고 임플로이(Employee)의 노동만 노동이라는 식으로 구분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특수고용직처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의 일을 노동으로 보는 것까지는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로 바꿔 부르는 일하는 사람 범위가 넓어졌다는 얘기다.

임금도 중요한 기준이다. 박 교수는 “근로기준법이 그리는 가장 전형적 근로자상은 흔히 월급으로 부르는 임금을 받는 것”이라며 “그 밖의 일을 하고 받는 대가는 노동의 대가로 보지 않아 월급제 노동만 노동으로 보는 인식을 강화한다”고 풀이했다.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 지위에서 탈락하면 많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이탈한다. 당장 건강보험료가 오른다. 노동을 하면 직장가입자라 근로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회사와 반반씩 나눠 낸다.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자산에 따라 납부한다. 대개는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더 비싸다. 일하다 다쳐도 보상을 받을 수 없고(산재보험), 일자리를 잃었을 때 지원(고용보험)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는 꾸준히 제도에 편입하는 노동의 범위를 넓혔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대표적이다. 2020년 고용보험은 제도 시행 근 20년 만에 예술인 가입을 허용했다. 10월 기준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1천498만2천632명인데 예술인 가입은 16만5천여명(11월30일 기준)이다. 지난해 12월 9만여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가입자수는 우상향하고 있다. 다만 산업 특성상 전체 예술인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 강예슬 기자
▲ 강예슬 기자

‘노동자 이름 달기’ 사각지대 해소 한계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고 깊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 사업소득 원천징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0년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노동 같은 비임금근로자는 704만4천964명이다. 이들에게 고용보험은 문턱이 여전히 높다. 2019년보다 35만명 늘었다. 올해 8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른 비임금근로자(668만6천명)보다 많다.

이 때문에 기존 제도에 포함하는 범위를 찔끔찔끔 넓히는 방식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특수고용직 일부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데만 20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또 과정을 반복할 것이냐”며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보호할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각지대를 찾아서 노동을 호명하는 기존의 방식과 일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제3 지위를 만드는 시도, 그리고 일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보호 제도를 마련하는 방식이 쟁점이다. 그의 입장은 세 번째다. 김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정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각지대를 찾아서 노동을 호명하는 방식과 제도 안의 노동을 일로 개명하는 방식 사이의 논쟁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시도와 같은 노력이 새 지향점이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매일노동뉴스>가 취재 중에 만난 당사자들은 처지에 따라 생각이 다양했다. 정형화하지 않은 형태로 일해 온 공연예술인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호명하는 것에 낯설어 한다. 예술인 고용보험도 여전히 구체적인 계약관계를 요구해서 문턱이 높다. 이들은 창작 과정에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노동자로 불리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프로스포츠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하는 지원스태프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달고 싶어 한다. 이들은 구단 사무국과 도급 혹은 위탁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종속성이 큰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는 복합적이다. 양분할 수는 없지만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이해가 다르다. 올해 8월 기준 자영업자 통계에 따르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35만4천명,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33만6천명이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아파도 쉬기 어려웠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 남윤희 기자
▲ 남윤희 기자

“생계 위한 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부합”

김 이사장은 기존 노동관계법령 확대를 지속하면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 같은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자영업자에게 교육훈련과 남녀고용평등, 건강권 보장 같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갖추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하는 일이 노동이 아닐 뿐 결국 생계를 잇기 위한 경제활동이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아실현이나 취미가 되기 어렵다”며 “일은 생계유지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데 생계유지를 위한 임금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은 사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자 정의와 부합한다”고 진단했다.

기획취재팀: 이재·강예슬·어고은·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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