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에 정부가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법적 근거가 빈약해 정부가 ‘무리수’를 뒀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법성 논란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금지한 ‘강제노동’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서 송달 과정에서도 위법성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국민에게 ‘강제노동’ 명령, ‘위헌’
경제 매우 심각한 위기? “독소조항”

정부는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 2004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에 따른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발동된 행정명령이다.

업무개시명령 첫 대상자는 시멘트업계 화물노동자들이다. 국토부는 이날 오후부터 국토부·지자체·경찰 등으로 76개 조사팀을 꾸려 시멘트업계 운수사업장 200여곳과 운수종사자 2천500명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법조계는 업무개시명령이 국가가 ‘강제노동’을 명령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헌법의 노동 3권을 침해하고, ILO 29·105호의 강제노동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것이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업무개시명령은 직업선택의 자유 등 중대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국제노동기준에 맞지 않아 시행되지 않았던 것인데, 정부가 이를 실행했다. 기본권 인식이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업무개시명령의 법적 근거는 화물자동차법 14조에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명령을 거부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해당 조항 자체가 ‘독소조항’으로 위헌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법조계는 업무개시명령 요건인 ‘정당한 사유’ ‘국가경제의 심각한 위기’ 등이 추상적이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한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화물연대 파업이 물류 장애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인력을 동원하는 상태를 고려할 때 국가경제 회복이 어려울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파업이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익적인 측면에서도 화물노동자는 국가가 개입해야 할 만큼 공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견해도 있다.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국민의 멱살을 잡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정부가 다른 방안을 시도하지 않은 채 업무개시를 명령했기 때문에 목적의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노동자 제재 가능성 ‘의문’
“대상자 특정, 적법한 송달” 쟁점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 화물노동자에 대한 제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화물노동자 특정이 어렵고 ‘집단’이 아닌 개별로 운송을 거부하는 화물노동자는 업무개시명령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권 변호사는 “노조간부나 적극 참여자를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별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운송계약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 대상자가 아니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명령서 ‘송달’의 적법성도 쟁점 중 하나다. 화물노동자가 행정명령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되려면 우선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명령을 이행해야 할 당사자에게 ‘도달’됐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행정절차법(15조)은 명령서가 개인에게 도달돼야 송달효력이 발생한다고 정하고 있다. 우편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화물노동자의 경우 고정 출퇴근 장소가 없어 국토부는 이날 주소지로 우편을 송달한 상태다.

만약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당사자나 가족이 부재를 이유로 수령을 거부하거나 반송하면 송달효력이 없어진다. 실제 2000년 의약분업 파업을 주도했던 의사협회 간부의 의료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은 2005년 9월 일부 간부의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명령서를 병원에 부착한 것만으로는 적법한 교부 송달이 아니며, 반송된 등기우편은 송달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앞으로 정부의 조처가 실제로 내려지면 가처분 신청, 행정소송과 위헌소원 등 법적 쟁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송이 진행되면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이 핵심 쟁점으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본부는 집행정지신청과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조연민 변호사는 “빠른 조치로 가처분 신청을 내고 행정소송은 당사자가 신청해야 해서 먼저 명령서를 송달받은 시멘트업계 노동자가 소송을 낼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화물자동차법 조항의 위헌 판단을 받기 위해 본안소송 중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할 계획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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