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최근 수년 새 산업재해예방 정책은 급변하고 있다. 김용균 노동자는 정부 서랍 속으로 들어갈 뻔한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불러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을 이끌었다. 2020년 4월 발생한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현장 사고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산재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안전 관계법령 진보는 노동자들의 피를 거름 삼았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 감독체계를 개편해 주요 중대재해 유형별로 산재를 줄이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설립해 힘을 실었다.

갈 길은 아직 멀다. 플랫폼 노동자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다. 강태선(50·사진)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범정부 차원의 예방대책과 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국민이 어떤 질병·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지 살피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언론의 역할이 크다고 조언했다. 안전보건제도 사각지대를 주제로 삼은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서울사이버대 강태선 교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산업안전보건) 출신인 그는 안전보건행정 이론·실무와 현장 상황을 잘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원활한 집행 도와”

- 최근 한 학술단체가 ‘2022년 한국의 노동자는 보호받고 있는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겠나.
“보호받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 논의는 활성화됐는데 현장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줄어들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 일정 정도는 목적지에 이르는 고속도로, 말을 달리게 하는 박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은 산업안전보건법이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이 잘 이뤄지도록 모세혈관처럼 혈액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닌 듯하다. 사업주가 자기 사업장의 유해위험을 파악하고 위험성을 관리할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도덕성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사업주를 각성시키는 것은 노동부가 해야 할 임무다.”

- 2019년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적용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제공자로 확대했다. 사각지대가 넓다는 지적은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좀 탓하고 싶다. 질병관리청에서 ‘국가손상종합통계’를 내고 있다. 산업보건을 챙길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국민이 어떻게 질병을 얻고 사망하는지 복지부도 들여다볼 수 있다. 국민 보호업무를 소관하는 복지부가 맨날 지역과 나이만 얘기하면 안 된다. 이건 완전한 보건이라 부를 수 없다. 하루 중 3분의 1 이상을 직장에서 일하는데 국민건강을 말하면서 직업을 제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를테면 지역보건에 농업인 안전보건이 있다. 서울에서는 응급구조가 30분이면 가능한데 지역은 1시간이 걸린다면 그 30분은 차별이다. 업종·지역과도 관련 깊은 이 차별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복지부와 소방방재 영역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사각지대 줄이고 있지만 실행 아이디어는 부족
노무제공자 보호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해하길”

- 산재보험 대상은 상당히 확대하지 않았나.
“산재보험 영역이 계약상 근로자 중심에서, 노무제공자로 확대됐다. 이 상황에서 산재예방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과제로 보인다. 선언적으로 플랫폼 노동자 관련 조문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들어갔지만, 실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이디어가 빈곤하다. 안전보건공단은 법을 떠나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려 했다. 법의 취지를 살리는,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업을 공단과 노동부가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 농어업 부문 산재예방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 액셀과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부처가 갈린다. 생산을 중시하는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이다. 노동부·환경부·복지부는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 기능을 한다. 항공이나 광산 등 특수한 현장의 안전정책은 해당 부처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에서는 국민을 진짜 잘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인지, 적합한 부처는 어디인지 늘 따져 봐야 한다. 국무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노동부가 철학이 있어야 한다. 노사정 합의에 따라 어선원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해양수산부가 맡는 어선안전조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부는 골치 아픈 현장인데 해수부에 넘겼다고 좋아해야 할까? 우리가 보호하는 것이 더 좋고, 더 잘할 수 있는데 다른 곳에 넘긴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것이 옳다.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도 노동부가 방치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학생연구원은 산재보험은 적용받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적용받지 못한다. 대학과 교수에게 어마어마한 특혜를 준 법이 돼 버렸다. 이제 학생의 안전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소방공무원·경찰공무원 안전법이 만들어지면 해당 영역에서도 노동부는 손을 털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를 받고, 받아야 하는 이들이 특별법 이름 아래 그다지 많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노동계약 관계가 어찌 됐든 노동부가 철학을 가지고 산업안전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내몰려
누가 일하더라도 안전한 일터 만들어야”

- 양돈장 황화수소 중독사고나 지붕 수리 중 추락사고처럼 농촌지역에서 발생하는 전근대적 산재사고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표본조사이기는 하지만 이제 사고 관련 통계가 나오는 중이다. 액셀을 밟는 부처에서도 브레이크 역할을 하려 했던 일부가 20여년을 노력한 결과다. 누락 없이 사고통계를 확보하는 작업이 계속 필요하다. 양돈장 황화수소 중독사고는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지붕 수리작업 중 추락하는 사례도 많다. 어떤 대책이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다고만 해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사업장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고, 그래서 농촌지역에 어떤 방법으로 안전보건 정보를 전달하고 지킬 수 있게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사료회사 차량에 예방 정보를 담은 포스터를 붙인다든지, 다양한 고민을 해 봤으면 한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안전보건 정책은 무엇인지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주노동자가 취약한 현장에 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안전한 곳인데 이주노동자가 일해서 취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일하더라도 안전해야 한다.”

- 산업안전보건법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조항 등은 상시근로자수에 따라 적용되지 않는다. 그로 인한 영향은 없을까.
“안전보건관리체제 등 일부 조항이 적용되지 않지만 안전보건규칙은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에 해당 조항까지 적용하면 서류작업이 많아져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건 근로기준법을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정이 좀 다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 의무는 안전보건 경영방침을 세우고, 전임자를 두고, 예산을 편성하라는 내용이다. 5명 미만 사업장 사업주가 이런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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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본부에 연구원 설치하자”

- 배달노동자 업무 중 사고는 교통사고로 치부되기 일쑤다. 대책은 없을까.
“중앙사고조사단이 플랫폼 노동자 사고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들의 사고를 조사하도록 한 법조항은 없지만 어떤 경위로, 어떤 배경이 작용했는지, 직·간접 원인과 기여원인을 찾아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가 활동하는 시장의 구조는 어떠하고, 어떤 압력이 작동하는지 봐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작업을 10여년 전부터 해 왔다. 도미노피자 30분 배달보증제 문제점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렸다. 최근에는 첨단기술이라는 외피를 쓰고 (30분 배달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고 원인 규명과 교훈 도출을 위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사고를 조사해 소관 부처에 통보해서 대책을 만들고, 이행하는지 모니터링하는 사고조사활동이 필요하다. 중앙사고조사단이든 누군가든 시작해야 한다. 몇 년 전 버스노동자가 앞서가던 차량을 들이박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우리는 관념을 깨는 경험을 했다. 과거에는 졸음운전을 원인으로 보고 그쳤을 테지만 과로 문제가 드러났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차량 운행과 관련한 일을 하는 분들의 과로는 이제 사회적인 문제다. 주 52시간제만이 아니라 피로예방시스템 같은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

- 재해예방을 위해 재해조사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법과 시기의 문제일 뿐 공개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재해조사의견서와 수사 결과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 모든 사건을 공개한다고 이익이 꼭 큰 것은 아니다. 원인규명과 교훈 도출이 목적이고,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조사가 필요하다. 그런 조사제도가 있어야 한다.”

- 플랫폼업체 새벽배송 문제는 규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산업안전보건법 규제에 포함돼 있지 않은 위험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법이 있어서 아동노동이 금지됐는지 한번 얘기해 보고 싶다. 야간노동과 관련해서는 연장수당·초과근무수당·특별진단 등의 노동정책이 뒤따른다. 규제책에 해당한다. 야간노동을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지만 할 경우 귀찮게 한다. 그런데 이제 이 정도 규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결국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민사·형사·행정책임에 이어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에 의해 사업주가 움직이는 것이 좋은 사회가 아닐까. 예를 들어 20~30년 전에는 비가 오면 폐수를 방류하는 것이 아주 당연시됐다. 지금은 엄청난 범죄다.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법이 있다면 강력하게 집행하고, 없다면 상당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다. (법 밖의 노동에 대해) 어떻게 사회적 압력을 고안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용균 이전에 우리는 산재사고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제는 좀 바뀌지 않았나. 정보가 필요하다. 어떤 사고인지, 왜 그런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많이 보도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보도의 양과 질과도 연관된 것 같다.”

- 중대재해처벌법이 안전보건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면이 많다. 앞에도 말했지만 산업화를 빗대면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 척추가 생겼다. 산업안전보건의 척추는 책임소재다. 진정한 책임소재는 경영책임자에 있다. 경영책임자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중대재해에서 지금은 경영책임자가 신경 쓰는 중대재해로 변화했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충분히 경영책임자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이 잘못한 거다. 양벌규정에 따라 경영책임자를 적극적으로 참고인으로 출석시키고, 회사에는 다양한 안전보건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재량권이 정부에 있다. 소극적으로 임하니 원성이 높아졌고, 사람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원하게 만들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세력이 만든 법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든 법이다. 이 법을 만들기까지 우리 사회가 자행했던 업보를 생각해 보라.”

-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로드맵이 있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법보다 조직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전략적 감독행정이 시급하고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이를 만들어야 한다. 규모가 너무 작아 매우 아쉽다. 본부에 연구기능이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플랫폼 노동자 산재사고가 왜 발생하고, 어느 지점의 문제를 차단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지 등을 연구해야 한다.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청으로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하다면, 그 이전에 연구원이라도 빨리 설치해야 한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 이 인터뷰는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캠페인의 일환으로 안전보건공단과 공동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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