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고나 작가가 22일 연재하려고 했으나 KT의 요청으로 연재가 취소된 293화 일부. 달고나 작가

우리나라 웹툰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웹툰분석서비스를 제공하는 웹툰가이드 WAS는 지난해 연재된 웹툰이 8천680편이라고 밝혔다. 2014년 2천90편에서 2016년 5천621편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현재 웹툰 플랫폼에 연재 중인 작가는 1천747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년 전망 보고서'에서 만화·웹툰 매출액이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웹툰시장이 팽창하면서 그늘도 짙어진다. 기안84·주호민·윤태호·이말년 등 인지도가 높은 소수 작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작가는 먹고살기에도 숨이 가쁘다. 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공개한 '만화·웹툰 작가 실태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작가의 절반(46%)에 가까운 이들의 연간 수입이 2천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1천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이가 24.7%. 1천만~2천만원이라고 답한 이가 21.9%였다. 연간 수입이 3천만원 미만인 작가는 68.7%였다. 도구·장비구입, 보조인력비, 작업실 대여료 등 창작활동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연간 1천127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다수 웹툰 작가가 연 수입에서 가용할 수 있는 돈은 2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기울어진 웹툰시장" 작가는 괴롭다

웹툰시장은 작가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 작가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포털사이트, 케이툰 같은 통신사, 레진코믹스 같은 웹툰 전문사가 운영하는 플랫폼 안에 들어가야만 경쟁을 시작할 수 있다. 플랫폼 진입 여부를 결정하는 플랫폼사와 콘텐츠유통사(CP·Contents Provider)가 갑이고 작가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유명 작가가 돼 자체 경쟁력을 가지지 않는 한 이런 구조를 깨고 나오기는 어렵다.

기울어진 시장에서 작가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기 어렵다. 많은 작가는 플랫폼사·콘텐츠유통사에서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당했고 일방적 연재 중단 요구에도 저항하지 못했다. 콘텐츠진흥원 실태조사 결과 웹툰·만화 작가 네 명 중 한 명(25.8%)은 계약체결 전 계약서 수정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계약서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아 미리 살펴볼 여유를 주지 않은 채 계약을 맺은 경우가 22.1%였다.

웹툰 작가 A씨는 "애초 콘텐츠유통사가 2차 저작물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갖는 비독점 형태로 계약을 맺었다"며 "하지만 한창 연재를 하던 중간에 콘텐츠유통사가 2차 저작물에 대한 독점계약권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계약변경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해당 계약의 불공정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콘텐츠유통사가 요구하는 대로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A씨는 "계약 변경을 거부하는 경우 연재 중단에 이를 수 있고 그럴 경우 원고료·MG(미니멈 개런티, 선수금) 등 고정수입이 사라지게 된다"며 "당장의 생계 때문에 불공정한 계약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콘텐츠유통사·플랫폼사, 수익 창출만 골몰"

콘텐츠유통사·플랫폼사는 작가 생존권에 무심하다. 작가 다섯 명 중 한 명은 특별한 이유 없이 혹은 매출 하락 같은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케이툰에 작품을 공급하는 콘텐츠유통사 투니드에서 일방적인 연재 중단을 통보받은 <달고나 일기> 작가는 "작가를 위해 일한다는 에이전시가 연재 중단에 반발하는 작가들에게 '그래서 대체 (연재 중단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달란 말이냐'고 되묻는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배신감이 든다"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작가는 개인의 생계·미래를 걸고 일을 하는데 정작 플랫폼사와 콘텐츠유통사는 작가의 생계권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투니드는 4월 말까지 연재를 중단해 달라는 통보를 올해 1월 작가들에게 보낸 상태다. 이유는 매출 부진이다.

하지만 <달고나 일기> 작가를 비롯한 대부분 작가는 일방적 연재 중단 사유로 제시되는 매출 부진이 사실인지 확인조차 할 길이 없다. 작가와 플랫폼사·콘텐츠유통사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비대칭성 때문이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만화·웹툰 작가들이 업체에서 매출 및 수익배분(RS·Revenue Share) 리포트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39.4%였다. 투니드의 경우 지난해 4월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2017 회계연도 중 온라인 정보제공(웹툰 연재) 용역 수익은 76억6천700만원으로 총 수익의 100%에 해당한다"고 명시 돼 있지만 수익배분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웹툰 작가 B씨는 "(매출 리포트를) 받기는 받는데 신뢰가 안 간다"며 "에이전시를 통해 유료수익 내용을 받았지만 믿기 어렵다"고 전했다.

"유통구조 복잡해지는 웹툰 시장"
작가 권리 찾기 더욱 어려워져


웹툰시장의 불공정한 구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대형 플랫폼사와 작가가 직접 계약을 맺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콘텐츠유통사를 통해 플랫폼에 진출하는 작가가 늘고 있다. 작가가 콘텐츠유통사와 플랫폼사에 이중으로 수수료를 떼이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A씨는 "플랫폼사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을 받을 경우 그 대가로 플랫폼사가 40%가 넘는 수수료를 떼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남는 수익을 가지고 작가와 콘텐츠유통사가 각각 7대 3 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인의 경우 반대로 작가가 3, 콘텐츠유통사가 7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작가가 불공정한 웹툰시장을 바꾸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는 압박도 받는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2017년 레진코믹스 사태로 블랙리스트 실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부 작가가 회사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자 레진코믹스가 항의한 작가 이름과 작품을 적어 놓고 프로모션에서 배제하는 등 불공정한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7월 레진코믹스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인정하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학습효과 탓일까 투니드가 연재 중단을 통보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작가들 다수는 다른 말 내는 것을 포기했다. 연재 중단을 통보 받은 C씨는 전송권 요구를 하기 보다 신작을 준비하길 택했다. C씨는 "지금 상황이 억울해서 전송권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사태를 생각하면 '신작 준비에나 매진하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업계에서 문제 작가로 낙인찍히면 내 작품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플랫폼에 신작을 론칭하지 못할까 두렵다"고 고백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