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혜진 기자

“작가 일이 ‘창작’이다 보니 졸리면 집중을 못 해요. 그래서 일을 못하는 상태에 빠지면 1~2시간이라도 무조건 자자는 게 좌우명이거든요. 규칙적인 삶이 무너지면 햇볕도 못 받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돼요.”(웹툰작가 A씨)

“연재 시작하고 4년이 되니까 슬슬 제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대로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과 약도 먹고 있고 연재도 절반을 포기했어요. 처음 1년까지는 견딜만 했는데 2년이 넘어가니까 미쳐 버리는 거죠. 제 주변에 우울증 없는 작가는 한 명도 없어요. 병원 안 가고 버티는 사람은 몇 있지만요.”(웹툰작가 B씨)

웹툰작가의 정신건강과 신체 건강, 불안정노동 수준을 살피는 첫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모사업에 민지희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임의가 책임을 맡아 연구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1년간 웹툰작가로 50만원 이상 소득이 있는 전업작가 32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와 한국만화가협회 등에 소속된 웹툰작가 1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했다. 그 결과 28.7%가 병원에서 우울증상을 진단받았다. 일반인의 우울증 발병률인 2.4%에 비해 11.7배 높은 수치다. 28.3%는 수면장애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17.3%는 자살 생각을 했고 8.5%가 자살 계획을 세웠다. 실제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4%였다. 웹툰작가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41% 월 최소소득 “50만~100만원 미만”
마감 전날 하루평균 11.8시간 일해
아파도 연재기간 치료받을 시간 부족해 ‘약물 의존’

연구팀은 불안정한 소득과 강도 높은 노동환경을 주목했다. 설문조사 결과 평균 4.15년의 작가경력을 가진 응답자 41%가 월 최소소득을 50만~10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5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도 22.6%나 됐다. 월 최대소득은 200만~400만원 미만이 51.5%로 가장 많았다. 13%는 600만원 이상을 번다고 답했다.

웹툰작가의 1일평균 노동시간은 9.9시간이지만 마감 전날은 1일평균 11.8시간을 일했다.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매주 1회 연재를 위해 평균 70컷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민지희 전임의는 “2020년 콘텐츠진흥원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주평균 45~50컷이었는데 2년 새 30% 증가했다”며 “플랫폼에서 한 회당 요구하는 컷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장시간 노동이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일주일간 1회 연재를 위한 70컷을 그리려면 스토리 구성-콘티 작성-70컷 밑그림-70컷 펜터치-70컷 채색-대사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을 거쳐야 한다. 70컷을 3~4회 반복해 그려야 한다는 의미다. 심층면접조사에서 웹툰작가들은 “일주일 중 4일을 밤늦게 작업하고 마감날과 하루 전날은 밤을 새는 편이다. 마감이 끝난 날 하루 종일 자고 다음날부터 똑같이 반복된다” “하루에 70컷을 도저히 할 수 없다. 2년 정도 본인의 모든 영혼을 갈아 넣는데 2년이 초과하면 더 이상 영혼이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업무강도를 높이는 요인 1위로 ‘한 회당 그려야 하는 컷수가 많아서’(133명), 2위는‘연재 주기가 짧아서’(120명)라는 답변이 차지했다.

‘댓글’ 문화도 웹툰작가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순기능도 하지만 실시간 악의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에 대한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 우울장애 진단 위험이 1.9배 높고, 자살계획을 세울 위험 역시 2.45배 높았다. 작품에 대해 비난받은 경험은 불안장애 진단 위험을 4.09배 높이고, 수면장애증상 위험을 2.4배 증가시켰다.

이 밖에도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질환과 방광염, 위장질환과 안과질환의 발병률이 높았다. 문제는 연재 기간 병원 치료를 받기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마감을 우선순위로 두다 보니 부적절하게 약물을 복용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면접조사에서 ADHD(과잉행동장애 주의력결핍 증후군)가 아닌데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치료약을 처방받아 먹는 경우나 자양강장제, 카페인 음료 같은 각성음료를 섭취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지적했다.

타 플랫폼 연재 불가능한 ‘배타적 계약’
권한 가진 플랫폼 웹툰작가 권리는 외면

연구팀은 권한을 가진 플랫폼이 과도한 업무량과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댓글에서 작가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민지희 전임의는 “조사에서 웹툰작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플랫폼이 수수료를 많이 가져가는 만큼 관리·감독도 충실히 해 달라는 것”이라며 “웹툰작가들이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지만 1~2년 연재기간 동안 타 플랫폼과 계약할 수 없는 배타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작화와 컷수 등 구체적인 업무지시도 있어 종속성과 전속성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면접조사에서 웹툰작가 C씨는 “작화는 온전히 작가의 몫인데도 K플랫폼의 경우 작화에 선이 빠져나온 것부터 배경에 있는 문 위치, 사람의 얼굴에 입이나 턱 위치와 크기까지 피드백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인웹툰을 하는 경우 회차마다 특정 장면을 더 넣어 달라는 압박이 매번 있는데 매출(프로모션)과 직결되다 보니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시급하게는 업무량을 줄이고, 댓글 관리와 저작권 관리, 연재기간 중 질병치료나 휴식을 위해 ‘휴재권’ 보장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 전임의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장을 만들어 낸 웹툰 플랫폼은 단순 게시를 넘어서 작품의 성공 여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기획자·주최자로서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에 책임 있게 개입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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