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폐업으로 근로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는 부당해고를 다툴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근로계약관계가 끝나 원직복직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 지위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구제명령 이익이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노동위원회 구제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더구나 사용자의 폐업 사업장 노동자나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남은 근로기간에 한정해 구제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고된 시점에서 3개월 이내에 구제신청을 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지키기 어렵다는 의미다.

미용사, 군 간부이발소 폐쇄에 해고
폐쇄 이후 노동위 부당해고 구제신청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4일 해고된 육군 간부 이발소 미용사 A(60)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은 경남 창원의 육군 B보병사단 간부이발소 미용사인 A씨가 부대의 일방적인 이발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시작됐다. A씨는 2014년 8월부터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하기 시작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다가 2016년 8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단과 갈등이 일었다. A씨 설명에 따르면 2016년 말에 사병이 일을 도와주지 않게 됐고, 2017년 2월 이발 군무원이 그만두면서 3명이 하던 일을 혼자 맡게 됐다. 이에 상여금 인상과 자격수당 지급을 희망했다. 하지만 부대측은 법무참모부에 계약해지통보 여부를 질의했고, “경영악화를 이유로 이발소를 폐쇄하면서 해고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후 부대측은 임금인상이 불가하다며 2017년 12월로 계약해지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듬해 1월에도 네 차례에 걸쳐 임금협상을 했지만, 부대측이 상여금 지급은 어렵다고 답변했다는 게 A씨 설명이다.

간부의 이발소 회원비 인상이 불발된 것이 폐쇄의 배경이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2019년 5월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부대는 간부 1인당 월 8천원인 회원비를 1만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에 반대하는 간부 비율이 더 높은 점을 근거로 이발소 폐쇄를 결정했다.

부대는 결국 2018년 4월27일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간부이발소 폐쇄를 결정했고, A씨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이후 6월1일 간부이발소를 폐쇄했고, A씨는 다음날 해고됐다. 그러자 A씨는 그해 6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경남지노위는 “복직할 사업장이 없어져 구제이익이 소멸했다”며 A씨의 신청을 각하했다. 중노위도 초심 판정을 유지하자 A씨는 2019년 2월 행정소송을 냈다.

대법원 “구제신청 전후 구분 합리적”
“근로자 지위 이미 상실, 소 이익 없다”

쟁점은 폐업 등으로 근로계약관계가 소멸한 경우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받을 이익이 인정되는지였다. 1심은 노동위 판단이 옳다며 A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반면 2심은 “간부이발소가 폐쇄됨에 따라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더라도, 해고 기간 중 임금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 구제명령을 받을 이익이 유지된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다시 뒤집었다. “구제신청 전후로 구분해 구제이익을 판단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근로계약기간 만료나 폐업 등 사유로 근로관계가 종료된 경우에는 구제명령 이익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당시 근로자 지위가 없어진 경우, ‘행정적 구제절차’를 이용하는 것은 구제명령제도 본래의 보호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봤다. 사용자의 징계권 행사로 발생한 신분상·경제적 불이익에 대해 경제적이며 탄력적인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관계가 종료되면 ‘근로자’ 지위가 상실된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을 할 당시 이미 다른 사유로 근로계약관계가 종료한 경우에는 더 이상 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구제신청 전에 사용자와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헌법이 정한 ‘명확성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근로계약관계 종료 후 구제이익을 인정해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형사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행정법규 해석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단이다. 이어 원직복직이 불가능한 경우 임금 지급의 구제명령 이익을 인정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30조4항)도 근로자 지위가 상실된 경우까지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적용 안 돼”
법조계 “기계적인 해석, 법 취지 살려야”

특히 부당해고 소송 중 정년이 지나도 해고기간의 임금에 대한 구제명령을 받을 소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한 2020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근로자 지위가 소멸한 사안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대법원은 “해고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을 필요가 있다면 중노위의 재심판정을 다툴 소의 이익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해고기간의 임금을 받도록 하는 것도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의 목적에 포함된다는 취지다.

A씨 사건도 이러한 법리 해석을 토대로 구제명령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간부이발소가 폐쇄돼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더라도 해고가 무효라서 해고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을 필요가 있다면 구제명령을 받을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구제명령을 받을 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2020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는 “이번 판결은 구제신청 기간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조항과 금전보상명령제도와 충돌한다”며 “특히 원직복직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구제의 폭을 넓힌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와도 상충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구제신청과 기간 만료 등의 선후에 따라 구제의 이익을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 논리”라며 “행정처분의 법리까지 끌어와 설명하는 것도 노동사건 판결에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보인다”고 강조했다.

A씨도 대법원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해고 이후 4년 넘게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었다”며 “해고되면 자동으로 근로계약관계는 종료되는데, 폐업했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하지 못하면 어디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은 정년퇴직 후 부당정직 구제신청을 한 공기관 자회사 대표이사의 소송도 구제이익을 인정한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