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이은주 정의당 의원 주최로 5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보건의료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으니 확인해 볼 수가 없네요. 이번 달과 지난달 오프(쉬는 날)수가 다른데 월급은 똑같습니다.”(직원 40여명 의원의 간호조무사 A씨)

“10개월마다 계약하고 있어요. 2개월 쉬면서 실업급여받고 다시 계약합니다. 급여도 오르지 않고 휴가도 없고, 경력도 소용없어요.”(직원 70여명 병원의 간호조무사 B씨)

작은 병원 노동자 노동기본권 ‘그림의 떡’

중소 병·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36%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받지 못하고, 35%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폭언 등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병원 노동자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에 해당하는 의사·병원측과 노조가 노동기본권 보장 방안을 찾는 교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5일 오전 서울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보건의료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대한간호협회·대한작업치료사협회·대한치과위생사협회·국가자격보건교육사협회가 행사를 후원했다.

노조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외의 중소 병원과 의원 노동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4월15일부터 지난달 17일까지 설문조사를 했다. 의원·병원, 치과병원·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4천58명을 조사해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은 부당행위 사례, 노동시간과 임금, 노동조건, 모성보호 제도 적용 수준, 노조에 대한 인식을 파악했다.

노동자 10명 중 7명(67.1%)이 연장근무를 할 정도로 의료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은 보편화돼 있다. 그런데 연장근로수당을 받는 경우는 14.9%에 불과했다. 실제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을 수당으로 주는 포괄임금제 적용 비율은 25.7%였다. 노동자 40.6%가 연장근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도 확인된다. 지난해 실수령 연봉 총액을 기준으로 최저임금법 위반 여부를 파악했더니 미만자가 1.4%로 나타났다. 5명 미만 사업장의 미만율은 1.5%, 5명 이상 사업장은 0.9%였다. 연봉 총액에 식대, 교통비, 각종 수당과 연장근로 가산수당 등이 포함됐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명세서를 교부하지 않은 비율은 16.3%나 됐다. 연장근무 가산수당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노동자 당사자가 알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5명 미만 사업장의 미교부 비율은 26.9%로, 5명 이상(14%)의 2배 수준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은 7.7%, 작성하지만 교부하지 않은 비율은 28.4%로 나타났다. 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 미가입한 비율은 각각 3~4%대로 나타났다. 5명 미만 사업장의 비율은 평균보다 높은 3~5%대를 기록했다.

41.3% “고용불안 느낀다”
코로나19 지나며 노동조건 악화

노동자 10명 중 4명 이상(41.3%)은 고용불안을 느꼈다. 고용불안 정도를 물었더니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는 답변이 각각 29.5%, 11.8%로 나왔다. 일하면서 폭언 등의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10명 중 3명 이상(35.3%)이 “경험했다”고 답했다. 비인간적 대우 경험 비율은 5명 미만 사업장 38.2%, 5명 이상 사업장 32.9%로 나타났다.

보건의료 현장의 노동조건은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악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노조는 2020년 8월에도 유사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2년 전과 올해를 비교했더니 근로계약서 미작성(25.1%→30%), 야간수당 미지급(21.8%→30.7%), 토·일 근무율(73.9%→88.2%), 토·일 근무수당 미지급(73.9%→88.2%), 공휴일 근무수당 미지급(31%→42.5%) 등 노동조건이 나빠졌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유나리 노조 조직국장은 “중소 병·의원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노동기본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 주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들 의료현장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는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와 사회적 교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난달 두 협회에 노동기본권교섭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는 작은 사업장에서 기본적인 노동인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근로감독 등을 통해 사업주가 기초적인 고용질서를 준수하도록 견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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