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계속해서 비가 오고 있습니다. 서울에 이렇게 와 있지만 마음은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제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은 모기가 밤새 뜯어대고, 비가 와서 몸이 눅눅해져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합니다.”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0.3평 크기 철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동료를 떠올렸다. 장대 같은 비가 김 지회장의 머리에 쏟아졌다. 그는 우비에 달린 모자도, 우산도 쓰길 마다했다. 이유를 묻자 “고생하고 있는 동지들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우산을 쓰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30일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지 29일째였다. 하지만 원·하청 모두 지회 요구에 꿈쩍하지 않고 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냐”며 파업 21일째던 지난 22일 철 구조물에 들어갔고, 온몸으로 악천후를 견디고 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투쟁을 할 수밖에 없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앞에서 김형수 지회장을 인터뷰했다. 김 지회장은 하청노동자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지난 29일 새벽 경남 거제시에서 서울을 찾았다.

“저임금 개선 안 하면
떠나는 노동자 못 막아”

-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기에 서로를 독려하며 견디고 있다. 지도부는 파업 장기화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문제를 해소하려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파업 중인 조합원 생계 지원을 위해 모금 운동도 하고 있고, 현장에 일하는 노동자의 자발적 지원도 늘고 있다.”

지회는 29일 ‘10000×10000’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파업 중인 노동자는 임금을 받지 못하는데, 1만명이 1만원씩 모아 월급날인 7월15일 파업 중인 조합원에게 나줘 주자는 취지다. 반응은 뜨겁다. 연대기금을 모은 지 하루 만에 5천만원 넘게 모였다.

- 파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임금인상이다. 현재 조선소 하청노동자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다. 조선소 경력 10~20년인 노동자 임금이 한 달에 300만원 남짓이고 세금을 공제하면 200만원 중반이다. 목숨 걸고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임금이라기에는 너무 적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조선소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수주량은 늘어가는데 조선소를 떠난 숙련공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조선소를 떠나는 노동자들은 늘고 있다.”

2016년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자 2015년 13만명이 넘던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2020년 5만4천명으로 줄었다. 최근 수주가 늘면서 제2 호황기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하락한 임금 탓에 조선산업은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5년차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2021년 원천징수영수증에 적힌 소득은 3천429만원이다. 2014년 4천974만원 받던 것과 비교하면 7년 새 31% 줄었다.

- 임금 30% 인상이 실제로 가능한가.
“30% 삭감은 가능한데, 30%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2016년 본공(하청업체 정규직)인 하청노동자가 월 4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 현재는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다. 많아도 최저임금에서 10~15% 높은 수준이다. 2016년까지 하청노동자에게 상여금 550%를 지급했지만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사라졌다. 일당도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동의서를 받아 삭감했다. 상황이 개선되면 임금도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니냐.”

- 조선업이 활기를 찾았다고 하지만, 경제 전반 사정이 좋지 않다는 반박도 있다.
“수주를 받는 것만으로 활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희망을 가지고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때 활기가 만들어진다. 조선업은 여전히 인력중심 산업이고 숙련된 노동자의 손과 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저임금·인력부족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일할 노동자는 없다. 노동자는 오늘도, 지금도 이탈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를 억눌러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고령화한 인력은 버티기 어렵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함께 살자. 노동자는 하나다”

- 정규직 노동자가 하청노동자 투쟁에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전체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최근 노조 결의대회때 정규직 노동자 참여한 맞불집회를 보니 원청 관리자나 하청업체 관리자·직원들이었다. 하청노동자 투쟁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우리와 직접 이야기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투쟁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함께 살자. 노동자는 하나다.”

- 하청업체에 집단교섭을 제안 중이다.
“1년이 넘게 개별교섭을 했지만 선언적 요구안 조차 합의되지 못했다. 개별교섭은 사측의 시간끌기 전술이라고 본다. (지회는 20개가 넘는 하청업체와 개별교섭을 진행해 왔다. 하루에 업체 두 곳과 교섭한다고 해도 2주의 시간이 걸린다. 수십차례 교섭한 후에야 노사가 겨우 의견일치안을 마련하는 타사 사례를 보면 사실상 1사1교섭으로 합의안을 이끌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집단적교섭은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교섭의 형태다. 대우조선 모든 구성원들이 이 교섭장에 동참한다면 진정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개별교섭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청이 기성금을 올려야 임금인상이 가능하다. 산업은행이 직접 교섭자리에 나오지 않더라도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하는 임금인상안이 있다면 교섭에 나와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임금이 계속되면 일할 수 있는 노동자는 없다. 결국 수주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수주를 갖다 맡겨도 생산하지 못하는 공장이라고 낙인찍히면 그 다음 수주도 없다.”

- 조합원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동지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역사적 투쟁에 존경과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이 땅의 노동자·민중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여러분 함께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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