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조선업이 위기였던 2016년 이후 숙련된 용접공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전국의 용접 단가가 많이 내려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노동자들이 떠나간 거제의 쓸쓸한 풍경이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한국 대형 조선사들의 올해 1분기 수주액이 연간 목표량의 40%를 웃돌고, 2000년대와 같은 초호황기가 도래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숙련공들이 많이 이탈한 것이 리스크라고 말한다. 위기의 시기에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거제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선업의 위기라는 이유로 삭감된 임금이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배를 만들어 왔던 숙련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데 어떤 노동자가 조선소에서 일을 하려 하겠는가?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을 3% 인상했다. 물가가 한없이 치솟는 지금, 물가인상분도 안 되고 삭감된 임금의 회복은 기대할 수조차도 없는 액수다. 하청업체는 원청이 지급하는 기성금이 얼마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이 이상의 임금인상은 불가하다고 말한다. 도장업체들은 노동자들에게 시급제 전환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노동자들을 하청의 하청인 아웃소싱 업체로 내몰기도 했다. 사람이 모자란다고 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더 나쁜 노동조건으로 내모는 대우조선해양과 하청업체들의 행태에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이달 2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 30% 인상을 요구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임금인상이 아니라 임금의 원상회복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업 위기 전에는 상여금 550%를 받았다. 그런데 이 상여금이 사라졌고, 해마다 임금은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무런 힘이 없는 협력업체들만 나설 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 산업은행은 아직도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

파업을 하던 하청노동자들은 22일 오전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 1도크 VLCC 5495호선 탱크탑 10미터 높이의 스트링거에 올라 끝장 농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는 탱크탑 바닥에 철판을 용접해서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 높이 1미터의 감옥을 만들어서 그 안에 스스로 갇혔다. 지금 조선소가 지옥이고 감옥이니 여기서 더 나빠질 곳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동안 원청의 관리자들을 동원해 자행된 폭력은 굳건히 견뎌 왔지만, 대우조선해양이 협력업체와 하청노동자들까지 파업 방해에 동원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에서 같은 하청노동자들끼리 부딪칠 수는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몸을 가둘지언정 같은 하청노동자들이 충돌하는 지옥을 만들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동안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항의를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조선소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휴·폐업도 잦았고, 물량팀이라고 부르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더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니 위기의 시기에는 더더욱 권리를 말하기 어려웠다. 2016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중공업의 한 노동자는 ‘개같이 일했고 개같이 쫓겨났다’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연휴에 특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갖은 모욕을 당한 뒤였다. 2017년, 이런 조건을 딛고 어렵게 모여 만든 것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 지회다. 이 노동자들이 그동안의 침묵 속에 담긴 울분을 이제야 터뜨린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은 그 목소리를 탄압하기에 급급하다. 구사대를 동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협력업체들을 동원해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부추긴다.

대우조선해양에 묻는다. 배는 누가 만드는가? 대우조선해양 전체 공정의 80% 정도를 하청노동자에게 의존한다. 누가 다치고 죽었는가? 산재사고가 많기로 악명 높은 조선소에서 주로 하청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었다. 누가 희생돼 왔는가? 위기 때마다 쫓겨나고 임금이 삭감당한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정부가 생색을 내며 하청업체에 4대 보험 납부를 유예해 줄 때 그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도 하청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하청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하는가? 더 이상은 안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더 이상 하청업체 뒤에 숨지 말고, 하청업체를 부추겨 노-노갈등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당장 교섭에 나서 투쟁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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