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일반노조 강동문화재단분회(분회장 김병규)가 지난 20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공판 직후 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동문화재단분회>
민주일반노조 강동문화재단분회(분회장 김병규)가 지난 20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공판 직후 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동문화재단분회>

서울시 강동구 산하 강동문화재단이 파업으로 공연이 취소됐다며 노조 조합원들에게 3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쟁의행위는 사용자 업무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성격이므로, 적법한 쟁의행위에 대해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지난 6월15일 ‘현대자동차 손배소’ 대법원 판결의 연장선에서 나온 판결이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거론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에도 탄력이 실릴 전망이다.

극장 장비 전원 끄고 퇴근, 재단 “불법행위”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최용호 부장판사)는 강동문화재단이 민주일반노조 강동문화재단분회 전·현직 간부와 조합원 등 9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난 20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제기 1년6개월 만이다.<본지 2022년 4월12일자 2면 “파업 노조에 ‘억대 손배소’ 낸 지자체 출연기관” 참조>

손배소 발단은 2020년 임금체계 개선을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 시작됐다. 분회는 재단으로 통합되기 전 강동아트센터와 구립도서관 직원들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호봉제 전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분회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조합원의 96%가 파업에 찬성했으나 분회는 재차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이 분회를 논의에서 배제해 연봉을 동결하면서 결국 파업으로 이어졌다. 분회는 2021년 11월12일 금요일 소식지를 통해 파업을 예고했다. 당일 구청 앞에서 파업전야제를 열고, 주말인 13~14일 이틀간 파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재단은 파업으로 공연이 취소돼 공연 제작비와 티켓 환불비 등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며 분회 간부와 조합원을 상대로 지난해 1월 3억4천576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무대 파트 조합원들은 전야제를 진행한 12일 오후 6시께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했다. 그러자 재단은 오후 7시30분 시작 예정인 공연 2건을 취소하고, 다음날 공연 4건도 모두 취소했다. 재단은 “조합원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정시 퇴근을 감행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위력으로 재단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심각한 경영상 손해 없어, 파업 정당”

민주일반노조 강동문화재단분회 조합원들이 2021년 11월12일 오후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파업 전야제를 진행하고 있다. <강동문화재단분회>
민주일반노조 강동문화재단분회 조합원들이 2021년 11월12일 오후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파업 전야제를 진행하고 있다. <강동문화재단분회>

법원은 분회 손을 들어줬다.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것을 ‘불법 쟁의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집단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쟁의행위 일환에 해당하고 노조법에 따르면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없어야 불법행위”라며 “그런데 분회는 임금체계 개선을 목적으로 수 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결렬되자 조정절차와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에 돌입해 목적과 절차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극장 장비 전원을 끄는 과정에서 재단의 소유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다시 켜는 데 특별한 용법이나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재단 관계자가 진지하게 시도했다면 전원을 다시 켜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들 행위로 재단이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끼칠 정도로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파업으로 사용자 업무 지장 당연, 헌법상 기본권”

민사 재판부가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판단한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재단은 업무방해 혐의로 분회 간부와 조합원들을 고소했으나 지난해 10월21일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단체행동권에 있어 쟁의행위는 핵심적인 것으로서 사용자의 업무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며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업무의 지장 초래가 당연히 불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회의) 전면파업은 임금 처우개선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사업장의 운영 정지를 목적으로 했다”며 “파업전야제 참가를 위한 집단적 근로제공 거부에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는 조치가 수반될 것을 재단이 예상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무대 감독들이 전야제 참가를 알린 이후 공연전시팀장은 공연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조처한 후 퇴근하라고 거듭 당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판결 직후 분회는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비판했다. 김병규 분회장은 “재단은 노조법 3조를 무시한 채 소송을 제기하고, 형사고소까지 했다”며 “무지에서 비롯된 복수심 때문에 나라 예산을 사용해야 했다. 이번 판결이 경영진에게 좋은 경고가 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회를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것은 적법한 쟁의행위로 판단됐고, 비록 공연이 취소되더라도 적법했다면 손배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법원이 판단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의 강동아트센터 전경. <강동문화재단분회>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의 강동아트센터 전경. <강동문화재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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