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29일 동안 곡기를 끊으며 제정을 이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지난 9일로 100일을 맞았다. 시행 석 달을 넘는 동안 노동자는 어김없이 죽어 나갔다. 169명이 업무 중 목숨을 잃었고 고용노동부는 이 중 58건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중대재해 1호 사업장인 삼표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도 한창이다. 노동부가 법을 어떻게 해석·적용할 것인지, 사업주 혹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경우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앞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력을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이런 탓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이 격렬하다. 기업들은 “형사처벌 수준이 과도하다” “경영책임자의 법률상 의무가 불확실하다”고 총공세를 펼친다. 노동계는 유사·동일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경영책임자의 포괄적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해야 한다고 맞선다. 윤석열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손질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 동교동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성과와 한계, 보완해야 할 점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 재계에서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노동계에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참여했다. 제정남 매일노동뉴스 노동현장팀장이 사회를 봤다.

“나쁜 법 프레임 씌운 사업주단체 책임”
“처벌수위 높인다고 산재 감소할지 의문”

사회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00일을 훌쩍 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어떻게 보는지 각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

강은미 : 경영책임자가 안전 의무를 다하지 못해 노동자가 죽으면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묻도록 한 법이고, 결국 경영책임자가 안전의무를 다하고 (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도록 한 법이다.

최명선 :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시민의 중대재해가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범죄행위임을 사회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노동자·시민의 과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범죄행위이고 형법으로 다루는 것이다.

임우택 : 법 발의자와 많은 분들이 이 법이 처벌을 통해서 (재해) 예방을 달성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취지가 있다고 말하지만 경영책임자를 형법 규정으로 처벌한다는 면에서 기업 규제에 관한 법률이다.

사회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이 지났다. 총평을 한다면.

임우택 : 단기간에 법률의 효과성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금 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하지는 않았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와 기업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강화된 측면은 있다. 지켜봐야겠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수준이 낮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더 강화한 것인데 처벌 수준만 강화한다고 해서 감소효과가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도 법 시행 후 산재 감소효과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법률 효과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최명선 : 지금 몇 개월 지나서 감소 숫자를 가지고 효과가 있다, 없다를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징조들은 있다. 공공부문 같은 경우는 안전과 관련해서 인력을 채용한다든지, 원·하청이 같이 의견수렴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가 생기고 있다. 또 공공부문이나 민간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조치를 한 후 작업을 시작하는 선행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현장은 바뀌지 않고 사고도 줄지 않고 있다. 그 책임은 사업주단체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쁜 법’ ‘문제가 많은 법’이라고 프레임을 씌워버리니 상당수 기업이 뭘 하려고 노력도 않고 그냥 무조건 이 법은 없어져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 같다.

강은미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대부분 기관은 안전보건 이슈가 중요 안건 중 하나가 됐고, 특히 공공기관에서도 용역·하청업체의 위험요소가 있는지 살펴보게 된 것은 효과다. 처벌의 전제조건은 안전보건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받는 것인데, 그런 전제조건 없이 경영자단체가 처벌된다고 하면서 (안전보건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이 법만 어떻게 좀 바꿔 보겠다는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다 할 것인지와 관련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공포감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시민,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는 데 기업도 큰 차원에서 동의하면 이 법을 어떻게 안착할 것인지 관련해 같이 논의하고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공포감 조성 아니라 기업 호소 전한 것”
“기업들 이제야 산업안전보건법 들여다본다”

임우택 : 산재예방이라는 의미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경영계 입장에서도 법률이 시행된 이상 지켜 나가기 위해 매뉴얼을 만든다거나 설명회, 교육을 한다든가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공포감을 조장하고 프레임을 조성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업주단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것이다. 예방 의지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조차 어떻게 법을 이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법을 준수하면 되느냐고, 많은 기업들이 질문을 하지만 입법자나 행정 관료들이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제가 있고 법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이 법은 기업에는 공포다.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법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처벌에 방점이 있고 처벌의 수단도 강력하다. 기본적으로 태생 자체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사업주가 재해를 예방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최명선 : 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던 시기 전후와 법이 시행되는 올해 1월27일까지 경총이나 대한건설협회 같은 사업주단체가 해 온 활동을 보면 거의 법안을 폐지하자는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문제가 많은 법이라는 주장을 해 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지 10년이 지났고 정말 대표이사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맞냐, 벌금형이나 과징금으로 하자 같은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수십 번 고쳐도 현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대표이사를 형사처벌하는 법이 들어와서야 기업들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산업안전보건법을 보게 된 게 우리 현실이다.

강은미 : 이 법은 강력한 처벌의 공포감을 조성해 사고가 발생해서 들어가는 비용보다 예방하는 비용이 더 적고, 예방을 하는 게 낫다고 (기업이) 판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적은 비용을 치렀다. 경영책임자가 경영방침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유사하고 때로는 똑같은,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결국 이 법이 만들어지게 한 원인은 기업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서다.

최근 여천NCC 여수공장에서 기압실험을 하다가 폭발사고가 났는데 법상 기압실험은 물로 하게 돼 있다. 그런데 물로 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드니까 기압으로 하다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원청은 기압실험을 계속 했어도 이런 사고가 없었는데 왜 이런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고 4명이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지키라고 하는 게 너무 많아서, ‘지켜도 안 걸리는 게 하나 없다’고 불만을 표하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뭘 지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그냥 안 하겠다는 뜻으로밖에 안 들린다.

“노동부 법 적용 두고 혼란”
“수사실무상 문제, 지켜봐야”

사회 :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수사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강은미 : 경찰 조사가 통상적으로 두 달, 그다음에 검찰이 기소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딱 100일이다. 이제 막 중대재해사고 건들이 올라가야 할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창기 발생한 사건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고 있어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이제 두세 달 혹은 서너 달 지나면 노동부가 실력이 없어서 수사를 안 하는 것인지, 결국 (기업) 봐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압수수색을 비롯해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은 조금 미흡한 듯하다.

임우택 : 수사해서 기소하려면 법률을 위반한 구체적인 부분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조항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고 노동부 입장에서도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경총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에 대해서 기준을 물어보면 판결을 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낸다. 역량의 문제도 있다. 지금 본사를 압수수색해 방대한 자료를 얻었는데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 고의성을 입증하는 부분도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최명선 : 지금은 산업안전보건법을 가지고 기소하거나 영장을 신청하는 것이지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가 진행된 상황은 아닌 상황으로 봐야 한다. 다만 법령의 어떤 문제가 있어서 기소가 늦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사 인력이나 역량이 부족하고, 수사 공조나 특히 압수수색 영장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건 수사실무에 관한 문제로 보강돼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초미의 관심
‘재해 원인 분석·현장 개선’ 뒷전 우려

사회 :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집중하다 보니 사업장 안전보건 예방대책을 세우기 위한 특별근로감독이나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임우택 : 중대재해처벌법에 올인하고 있어 현장에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안착 등에 정부나 안전보건공단의 행정력이 부족한 부분은 당연히 있는 것 같다. 경영책임자 처벌에 모두 집중이 돼서 경총 노동안전보건본부부터 일선 (노동부) 감독관까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안전보건진단 명령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강력하게 하고 있다. 특별근로감독 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반기보고 의무가 있어서 법령에 근거하지 않고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부나 공단이 중첩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있어 현장에서 혼란이 있다.

이 법이 안착하려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법 시행 후 6개월이 지나 봐야 사업장에서 인력이나 예산 등에 투자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기업이) 법을 이행하는 과정 중에 있으니 좀 감안해서 사건을 수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사업·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해당 업무절차에 따라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최명선 :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수사해 처벌하고 다른 현장 상황을 감독·점검해 현장을 바꾸는 것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수시근로감독도 중대재해 수사가 진행되면 안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안전보건진잔 명령도 다 내리지도 않는다. 작업중지 같은 경우도 사업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전면 작업중지는 거의 안 하고 대부분 동일작업·부분작업만 한다. 현장 노동자는 무엇을 수사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 길이 없다.

수시감독이든 특별근로감독이든 노조, 노동자와 같이 이야기하고 점검·감독하면서 전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기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분리돼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가 초미의 관심사가 돼 버리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강은미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 4월 말까지 사망사고가 157건 발생했고 169명이 사망했다. 이 중에 법 적용 건수가 58건이고, 그중 노동부가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내린 곳이 27곳,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린 곳이 51곳, 전면 작업중지명령을 내린 곳은 4곳이다.

임우택 : 지금 자꾸 처벌 중심으로 수사가 집중된다. 중대재해 원인 조사를 분명하게 해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전반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강은미 : 사업장별 위험요소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노동자다. 기업과 노동자가 적극 협력해야 하는데 조사에서 노동자를 배제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생각한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원화해 관리해야”
“시행령 개정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사회 :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보나.

임우택 : 보완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력·예산과 관련한 경영책임자의 투자 확대와 리더십 부분에서 내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사업주 의무가 포괄적인 것은 맞는데,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는 부분에서 포괄적인 규정을 두는 것은 문제다. 일정 규모 이상에서 경영책임자는 현장 안전에 대해 일일이 알지 못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사업주 의무 규정은 형법 규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전반적으로 일원화해 관리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이원화된 구조 속에서 불필요한 논쟁이나 다툼을 없애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 시행령 개정안은 어떤 내용인가.

임우택 : 중대재해처벌법 16개 조항 중에서 시행령에 위임된 부분은 별로 없다. 중대산업재해와 관련해 시행령에 위임된 조항이 5개인데, 그중 경영책임자 의무와 관련한 부분들은 4조1호와 4호밖에 없어서 한계가 있다.

법률 시행령은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으로 나뉜다. 법률을 집행하는 집행명령에 관련한 부분들은 법에 위임근거가 없어도 상당 부분 폭넓게 시행령을 규정할 수 있다. 시행령에 위임된 부분들을 포함해 직업병의 중증도 문제라든지, 관계 법령이라든지, 또 원·하청과 관련된 실질적인 지배·운영 관련 구체적인 문제라든지 개별 사항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 의견을 낼 예정이다.

한국경총은 16일 정부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경영책임자 범위와 의무 구체화 요구를 포함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건의서를 제출한다.

강은미 : 상위법의 기본적인 취지를 위배하는 시행령은 만들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노동의제 중 안전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사전 예방에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어 처벌을 못 하게 하거나, 이것을 없애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흔들 수도 없고, 흔들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또 국회법 안에 행정부가 시행령 개정안을 제출하면 국회에서 공청회를 거쳐 문제제기하고 개정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함부로 못할 것이라고 본다.

경영책임자 의무? 모호 vs 충분

임우택 : 시행령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시행령 내용을) 구체화할 수밖에 없다.

강은미 : 동국제강 하청업체 노동자는 작업을 하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가 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이 작동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맨 안전벨트가 재해자의 흉부를 압박해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안전의무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결국 회사별로 각각 다른 안전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의무를 구체화한다는 것은 결국 경영책임자들의 (책임) 범위를 좁혀 그것만 지키면 나머지 것은 안 하겠다는 책임 회피로 보인다.

임우택 :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관리상 의무를 규정하는 법인데 구체적 행위 의무와 관리상 의무가 혼동돼, 사고가 발생하면 행위 의무 위반을 경영책임자의 관리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 개별적인 행위 의무 자체를 경영책임자가 모두 챙길 수 없다.

최명선 :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관리상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에 관한 의무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과 다른 경영책임자의 독자적인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위험성 평가, 종사자 의견수렴 등으로 2인1조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결과를 가지고 개선하는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둔 것이다. 2인1조나 안전난간 설치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 문제니 부장이나 과장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책임자가 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은미 :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사고를 보면 한 층 한 층 올릴 때마다 걸리는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있는데 지하에서 암반이 나타나거나, 주변 민원으로 공사를 못 하게 되면 공기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공기를 어기면 입주민에게 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공사 현장소장이 공기를 맞추기 위해 규정들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다. 이 문제는 관리자인 소장이 조정할 수 있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총괄적으로 경영책임자인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기,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임우택 : 안전과 관련한 예산·시설·설비 등을 이야기하면 자재를 구매하는 것부터 이 부분이 안전하느냐 여부를 따져야 한다. 어디까지가 안전예산이고 필요한 예산이냐는, 사업장별로 기준이 모두 다르다.

사업장에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전반적인 기업 경쟁력 차원이나 각 사업의 특성에서 해야 할 일을 ‘충분한 예산을, 적절한 공기를, 필요한 예산을’ 이런 얘기를 하고 처벌을 한다고 얘기하니 이 부분들을 안 지키면 충분, 불충분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한마디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예견 가능성이 없다. 법이 명확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다하면 책임을 면탈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다. 사업주가 로펌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명선 :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다른 나라 법에 비하면 훨씬 구체적으로 정의돼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장에서 법을 매개로 예방활동을 강화할 때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냐다.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지게 하고, 도급·위탁과 관련해서도 마련돼 있는데 실제로 경영책임자가 책임감 있게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하는 게 필요한지는 좀 토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노사, 작업중지권 필요성 공감

사회 : 경총이나 기업에서 작업중지권 적용을 확산하는 캠페인 같은 걸 할 생각은 없나.

임우택 : 근로자들에게 기본권 측면에서 당연히 보호돼야 할 권리인 것은 틀림 없다. 합리적으로 운영하면 당연히 바람직하다. 많은 기업들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최명선 : 알아서 도입하는 기업도 있고, 기업의 수용도도 있는 상황이다. (작업중지로 인한) 하청업체의 손실 비용도 보존하고, 실제로 작업 거부를 한 하청업체는 다음 계약에서 우선 계약권을 주는 기업도 있다. 작업하는 노동자에게 직접 현금지급하는 곳도 있고, 노사가 제도화하면 좋겠다.

임우택 : 좋은 지적이다. 경총을 비롯한 여러 사업주, 근로자단체도 안전 분야 사업 역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지원 관련한 규정과 조항이 있는데 아직 눈에 띄는 지원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강은미 : 노동부 예산에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조치에 관해 지원해 주는 예산이 있긴 한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 더 확충해야 한다. 하청·협력업체들은 안전조치를 취하려면 기존 비용·단가보다 더 많은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데 대기업(원청)에서 비용을 전가시켜 안전조치를 다 할 수 없는 문제제기도 계속 나온다. 국가예산도 물론 필요하지만 대기업에서 책임감 있게 예산을 마련해 줘야 한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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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자율안전관리체계 내세운 새 정부
“노사 신뢰로 구축” vs “실패한 정책”

사회 : 새 정부의 산업안전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임우택 : 새 정부의 구체적인 안전보건 정책 관련 로드맵이 나온 상태는 아니고 자율안전관리체계 구축 같은 이야기들은 있다. 새 정부도 현장에 여러 가지 법들이 안착하고 혼란 없이 재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구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자율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부분들은 현장 안착이 필요한데, 처벌 위주의 규제 방식은 사업주가 규제를 회피하게 만들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경영책임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현장에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자율안전관리체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보고, 적극적인 정부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 적절한 규제 수준을 가지고 현장에서 그 이상의 자율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새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고, 더불어 노사가 신뢰관계를 가지고 구축했으면 좋겠다.

최명선 : 새 정부의 정책 문제는 기업자율안전관리다. 노동자 참여를 전제로 한 자율안전 관리가 아니다. 자율안전관리와 원·하청 공생 정책은 20년 전에 했지만 실패한 정책이다. 기존에 해 본 정책의 재탕이고, 실패로 갈 위험이 커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강은미 : 정책 기조의 구체적 내용은 들여다봐야겠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의지는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 답했던 것처럼 없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에 자꾸 기업 편에 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문제가 많은 것처럼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 우려는 있지만 한 번 만들어진 법이 쉽게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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