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석열 정부가 올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업주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 총선이 있는 2024년을 법 개정 시점으로 명시했다. 징역형 하한 삭제를 요구하는 재계 의견을 반영할 전망이다. 또 특별채용을 명시한 단체협약을 무효화하겠다며 사문화하던 단협시정명령 제도를 부활한다. 노조탄압 도구로 활용한 박근혜 정부도 명분은 특별채용 방지였다.

<매일노동뉴스>가 12일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검토해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시간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작성한 이행계획서에 대해 대통령실은 최종본이 아니라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서 밝힌 의제 이행 계획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얼개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간섭 없이 행정부 권한만으로 노동정책을 펴겠다는 계획이 엿보인다.

시행령 개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뒷걸음질

‘경영책임자 의무’와 관련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은 올해 하반기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는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정비 등”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기를 ‘2022년 하반기’로 명시했다.

한국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령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준수해야 하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모호하다며 개정을 요구했다. 또 원·하청 관계에서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확보 의무 이행 주체가 불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재계 요구대로 시행령에는 경영책임자의 범위나 안전보건 관계법령 항목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하게 되면 그만큼 경영책임자와 사업주, 기업의 책임은 좁아지게 된다. 예컨대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경우 규정에 따른 ‘안전보건 담당 임원(CSO)’을 내세워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대표이사는 법망을 피해 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더군다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판례도 쌓이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의 핵심 내용인 “경영책임자 안전보건확보 의무”와 관련한 내용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인수위는 또 이행계획서에서 ‘위반행위별 합리적 수준의 과태료 부과기준 설정’ 등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내년 하반기에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특히 여소야대의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2024년 상반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여건과 법령 간 정합성 제고를 위해 안전보건 관계법령을 개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총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앞세워 ‘단협시정명령, 직무급제 도입’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지만 국정과제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계획서에서 드러난 노동 분야 청년 정책은 채용·노동조건 개선·알바 청년 보호 등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개정을 추진하고, 그 내용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마련하기로 했다. 단협상 불공정 채용 조항에 대한 시정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불공정 채용 조항의 예시로는 ‘정년·장기근속자 자녀 우선·특별채용’ 등을 들었다. 이 같은 내용의 단협에 대해 시정명령을 한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도 단협 시정명령제도를 활용한 적이 있다. 조합원 가족 우선·특별채용, 전임자·시설 편의 제공, 유일교섭 단체 규정 등을 시정명령 대상으로 삼았다. 2016년 고용노동부는 100명 이상 유노조 사업장 2천769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한 뒤 특별채용 조항이 있는 694곳에 시정명령을 한 바 있다. 당시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으로 청년 구직자들의 공정한 취업기회가 박탈되고, 노동시장 내 격차 확대와 고용구조 악화가 초래된다”고 시정명령 추진 배경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 계획과 다르지 않지만 단협에 따라 특별채용이 이뤄진 사례가 당시 기준 3년 이내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 정부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남겼다. 단체협약 전수조사에서는 노조사무실 제공이나 경비지급, 유니온숍 같은 노조 가입제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시정명령 대상으로 삼았다. 노조탄압을 위해 시정명령 제도를 악용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에 명시된 단협 시정명령제도는 노사자율을 중시하는 국제노동기준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양대 노총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단협 시정명령제도를 통해 단체교섭·단체협약에 개입하고 있다며 국제노동기구(ILO)에 기본협약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 위반사실을 제소했다. 이듬해 ILO는 이사회 의결을 통해 한국 정부의 국제기준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단협 변경 조치를 하지 마라고 권고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ILO 기본협약 98호를 비준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비준해 올해 4월에 발효한 상태다.

청년의 임금·노동조건과 관련한 정책으로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호봉제를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의미다. 직무급제 도입 추진은 청년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호봉제를 도입한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인 데다가, 그중에도 1천명 이상 기업 대부분은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여력이 크지는 않다.

인수위는 계획서에서 “임금체계는 노사 자율 영역으로 임금 인프라 구축 및 정보제공 강화 등 현장의 자율적 개편 지원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임금직무시스템을 구축해 산업·업종별 직무·직업별 임금정보를 구축한다. 임금체계 개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하고, 직무평가도구와 활용 매뉴얼도 개발해 배포하기로 했다.

직무·직군별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때 해당 부문 근로자 대표와 합의로 이뤄지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그동안 부분 근로자대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 판례(2009두2238)를 근거로 지난해 5월27일 행정해석을 변경한 바 있다. 이런 계획이 실행되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노조 개입력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부문 근로자 대표를 통한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지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는 추진 계획도 명시했다. 그 시기는 다음 총선이 있는 2024년 이후로 잡았다.(4면으로 이어짐)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 경영평가로 강행

민간부문은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지만 공공부문은 ‘강행’한다. 인수위는 공공기관 혁신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임금체계 개편을 꼽았다. 인수위는 “보수체계 합리화를 위한 공공기관 직무급 도입을 확산하고, 이와 연계해 인사·조직관리를 직무중심으로 전환 유도(하겠다)”며 “직무급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별 맞춤형 컨설팅 강화, 직무급 평가체계 정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직무급 도입 여부를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직무중심 보수·조직관리 강화 계획을 마련하는 시점은 올해 하반기로 잡았다. 내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적용을 시작한다. 직무급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정책이기도 하다. 기관의 특성과 자율적 노사합의에 기초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서 도입이 크게 확산하지는 않았다. 2000년 기준 직무급을 도입한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은 21곳이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근로기준법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의 총량 규제를 연간 단위로 확대하고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예외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1~3개월로 제한된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는 완화한다. 이들에게 노동시간 제한을 아예 적용하지 않도록 근기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도 근기법 개정이 필요하다. 인수위는 2024년 근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어 일할 수 있는 부문을 넓히는 조치인 특별연장근로 대상 확대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제정남·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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