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천장크레인 보수 작업을 하다가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홍준표 기자>

지난 3월21일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이동우씨를 제외하고도 동국제강에서 최근 5년간 5명이 산재 사망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흡한 안전조치로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였지만 1심 판결이 나온 4건의 사고는 모두 벌금형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에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재해조사 보고서와 판결문을 보니 이동우씨 사고처럼 점검 작업시 기계가 멈추지 않아 사고가 일어난 경우도 여러 건 확인됐다.

2018년 ‘70도 전해액’ 원청 직원 덮쳐
작업계획서 미작성, 펌프 그대로 가동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법원에서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동국제강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6건으로 확인됐다. 원청 노동자 2명, 하청노동자 3명이 숨졌고 나머지 1건은 식자재 납품업자의 사망사고였다. 이동우씨를 포함해 ‘끼임’ 사고가 4건으로 가장 많았고, ‘추락’과 ‘파열’ 사고가 각 1건이었다.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보면 대부분 사고에서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 8월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전기아연도금 생산공정을 담당하는 원청 직원 A(사망 당시 36세)씨는 그해 7월25일 전해액 공급 밸브를 점검하던 중 밸브를 잇는 벨로즈가 터지며 섭씨 70~75도의 전해액이 튀어 전신 화상을 입고 19일 만에 숨졌다. A씨는 7년간 전해액 운영을 담당한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전해액 순환 설비 펌프에 이상이 생기며 펌프 가동을 전환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총 4개의 배관 펌프 중 4번 펌프가 고장 나자 예비용인 1번 펌프를 가동하다가 고무 소재의 벨로즈가 파열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 관계자 진술에 따르면 1번 펌프는 1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됐다.

배관 점검 작업시 펌프가 그대로 가동된 점이 사고를 키웠다. 1번 펌프에서 소음이 발생하자 A씨는 1번 펌프 밸브를 잠그고 2·3번 펌프만 가동하려 했으나, 전해액이 튈 당시 모든 펌프는 가동 중이었다. 기계를 정비할 때 작업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운전을 정지해야 한다고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작업계획서도 없었다. 부산공장 공장장은 전해액 공급 펌프와 배관 점검 작업에 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A씨는 전신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패혈성 쇼크로 숨지고 말았다. 당시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에 따라 14일간 공정이 중단됐다.

‘크레인 추락·끼임 사고’ 잇달아
작업지휘자 없이 단독 작업, 수칙 위반

이후에도 동국제강의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9년 2월2일 인천공장에서는 50대 하청노동자 B씨가 천장크레인 부품을 해체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철근을 화물차에 옮기는 크레인 기사에게 신호를 보내던 중 12미터 높이 난간에서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듬해에도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20년 1월13일 B(사망 당시 48세)씨가 권취기(금속소재를 코일로 감아 주는 기계) 유압라인의 누유 수리 중 벨트가 끊어지며 ‘텐션 릴’과 ‘벨트 래퍼’ 사이에 끼여 다발성 손상으로 숨졌다. 함께 일하던 동료도 타박상을 입었다. 달기구의 안전계수가 화물 하중을 지탱하는 수치에 미달했고, 달기구의 최대허용하중 표식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끼임’ 사고는 지난해에만 두 달 연속 발생했다. 1월 포항공장의 식자재 남품업자가 화물 승강기에 끼여 숨진 데 이어 한 달여 만인 2월16일 부산공장에서 원청 직원 C(사망 당시 54세)씨가 철강 코일에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C씨는 약 13톤의 코일 포장지를 제거하기 위해 천장크레인으로 코일 반제품을 인양해 작업하던 중 인양 중인 코일과 인근에 적재된 무게 6.3톤의 코일 사이에 협착됐다. 동료가 경보음을 듣고 달려와 구출했지만, 심정지로 숨졌다.

작업지휘자 없이 작업한 점이 화근이었다. 작업지휘자인 기장이 지정돼 있었지만, 주로 다른 작업 라인에서 지휘했고, C씨는 대부분 단독으로 작업을 수행했다. 사고 당일도 기장은 무전기를 사용해 비대면으로 작업미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업계획서에는 중량물취급 작업과 관련한 대책은 거의 없었다. 근로감독관은 위험성평가의 구체성과 평가범위가 부족했다고 봤다. 안전보건공단 부산광역사고조사센터는 재해조사 의견서에서 “작업계획서 작성 불량에 따른 근로자 교육이 미흡했다”며 “작업지휘자가 미배치된 상태에서 C씨 단독으로 작업하던 중 무선리모컨 오조작 또는 인양물의 좌우진동과다 등의 사유로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지난 3월21일 크레인의 안전벨트에 협착돼 목숨을 잃은 고 이동우씨가 작업하던 동국제강 포항공장의 내부 모습. <유족측 제공>
▲ 지난 3월21일 크레인의 안전벨트에 협착돼 목숨을 잃은 고 이동우씨가 작업하던 동국제강 포항공장의 내부 모습. <유족측 제공>

동국제강 벌금형 ‘솜방망이 처벌’
법원, 유족 합의·위반사항 조치 고려

형량은 가벼웠다. 재판이 진행 중인 지난해 2월 ‘코일 끼임’ 사고와 고 이동우씨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서 동국제강은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전해액 비산 화상’ 사고와 관련해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2019년 9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동국제강 법인에 벌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공장장과 관리감독자는 벌금 1천만원과 5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재해자의 과실 △합의로 인한 유족의 처벌 불원 △위반사항 시정조치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2019년 동국제강 인천공장에서 발생한 ‘천장크레인 추락사’의 책임자 처벌도 약했다. 인천지법은 그해 8월 동국제강 법인과 공장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듬해 부산공장의 ‘유압기 끼임 사고’와 관련해서도 법원은 그해 9월 동국제강과 협력업체에 각각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관리감독자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불리한 양형조건으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점”이라는 한 줄의 내용만 판시했다.

동국제강의 과거 사고는 이동우씨 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유족측은 △상부신호수 미배치 △점검 전 기계 전원 미차단 △천장크레인 작업자의 무전기 미제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이동우씨가 작업할 당시 상부 신호수가 지상의 트럭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상부 작업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작업지휘자인 기장이 천장크레인 운전자에게 신호해 크레인이 작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을 대리하는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동국제강은 하청노동자에 대해 동일한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하지만, 필요한 안전조치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동우씨가 세상을 떠난 지 54일째가 되던 지난 13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는 첫 추모문화제가 열렸다.<매일노동뉴스 유튜브 채널 참조> 이동우씨 사고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일어난 사고 중 유족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농성을 하는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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