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동국제강 본사가 있는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회사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정당한 배상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이 내 생일이에요. 사고 전날에 아들이 전복밥을 지어서 생일 축하한다고 가지고 왔어요. 생일에 아들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지난달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고 이동우(38)씨의 어머니 황월순씨는 사고 당일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포항에서 건어물을 파는 황씨는 “시장 상인들에게 생일잔치했다고 자랑했는데, 그날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억장이 무너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임신 세 달’ 아내,‘척추암 투병’ 장모 상경 농성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이동우씨 어머니 황씨와 임신 3개월차인 아내 권금희씨, 척추암 4기로 투병 중인 장모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 19일부터 분향소를 설치하고 노숙농성과 피켓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본지 2022년 4월20일자 7면 “‘오락가락’ 동국제강, 참다못한 유족 ‘노숙농성’” 참조>

황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21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고 했다. 그런데 오전 11시께 “아들이 장례식장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주저앉았다.

황씨는 “평생 그렇게 소리 지른 것은 처음”이라며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갔더니 아들이 누워 있었다”고 통곡했다. 영안실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만지니 온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의사가 “실핏줄이 터지면 그렇다”고 답했다. 그제야 실감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남편에게는 차마 아들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아내 권씨도 “다녀올게”라는 말이 마지막이었다고 기억했다.

이동우씨는 크레인 기계정비업체인 창우이엠씨 소속으로 지난달 21일 크레인 보수업무를 수행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천장크레인에서 브레이크를 교체하던 중 갑자기 크레인이 작동해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다.

상부 ‘신호수’ 미배치에 크레인 작동

유족측에 따르면 작업 현장에는 신호수가 제대로 배치되지 않았다. 사고 당일 이동우씨를 포함한 하청 정비작업자 3명이 천장크레인에 올라가 작업했다. 천장크레인 상부에 있어야 할 신호수는 지상의 차량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관리감독자가 크레인 운전을 신호해 천장크레인이 움직였고, 안전고리를 어깨에 고정해 작업하던 이씨는 그대로 안전벨트에 감겼다.

유족은 기본적인 안전의무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족이 사고 이후 방문한 현장에서 안전장치는 찾을 수 없었다. 추락을 대비한 안전망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황씨는 “현장에 가 보니 천장크레인은 까마득하게 높았다”며 “위에 신호수가 없으니 사람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운전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 권씨도 “다른 철강회사는 크레인이 작동되지 않도록 열쇠를 빼고 보수작업을 한다고 들었다”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크레인을 작동해야 할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현장에는 하청 직원들만 작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원청인 동국제강측의 제대로 된 해명은 없는 상태다. 사고 직후 황씨가 사측의 무성의에 대해 고용노동청에 항의하자 사고 발생 8일이 지나서야 김연극 동국제강 공동대표가 장례식을 방문했다. 김 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하청인 창우이엠씨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권씨는 “사고 이후 하청 대표가 병원을 찾아서 ‘변호사 선임비를 아끼고 빨리 합의하자’고 독촉했다”고 말했다.

사측 합의서에 ‘처벌불원’ 요구, 면책 중심

동국제강측은 지난 4일과 7일 두 차례 합의서를 유족에게 보내왔다. 하지만 ‘임직원 면책’ 위주였다는 것이 유족의 판단이다. 합의서에는 “법률상 책임과 관계없이 고인이 회사를 위해 공헌한 점, 유족의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금원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수사 대상이 된 임직원들에 대한 ‘처벌불원’까지 요구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문서를 내야만 배상액을 지급하겠다는 취지다. 손해배상이나 민·형사 소송 등 일체의 법률적 권리 청구도 하지 않는다는 항목도 추가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처벌불원까지 요구하는 합의서는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유족은 포항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 △책임자 처벌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유족은 상경했다. 지난 13일부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과 피켓시위를 했다.

동국제강측의 제안에 18일 만남이 성사됐지만, 진척은 없었다. 이 자리에는 동국제강 상무와 포항공장 이사, 하청 대표이사가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변호사는 “사측은 유족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나왔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포항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했는데도 다시 포항에서 만나자고 하는 게 이치에 맞냐”고 꼬집었다.
 

▲ 지난달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중대재해로 숨진 고 이동우씨의 유족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홍준표 기자>
▲ 지난달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중대재해로 숨진 고 이동우씨의 유족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홍준표 기자>

유족 “대표 아들이 죽어도 이럴 텐가”

무엇보다 동국제강측의 사과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유족은 분노했다. 19일 본사 앞에 분향소가 설치됐지만, 회사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 권씨는 “자신들 안방에 와서 앉아 있는데도 조문하러 오는 직원은 없다”며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은데 ‘힘내세요’라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대표에 대해선 “자신의 자녀가 사고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강조했다.

이동우씨 어머니와 아내, 장모는 현재 비정규 노동자 쉼터인 ‘꿀잠’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열흘 넘게 매일 두 번씩 피켓을 들고 본사 앞에 서 있다. 이동우씨 시신은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채 포항의 병원에 안치된 상태다. 어머니 황씨는 “아들이 ‘엄마 (나) 왔다’며 집에 들어오던 게 엊그제 일 같다”며 “어둡고 추운 영안실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내 권씨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결혼 4년 만에 어렵게 생긴 아이라 둘 다 엄청나게 좋아했다. 이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태명도 떨어지지 말자는 의미에서 ‘딱풀’이라고 지었다며 울먹였다.

유족은 원청인 동국제강의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씨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이 모호한 측면이 있어 회사가 이런 입장이 아닌가 싶다”며 “목숨의 대가만큼 형량이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동우씨가 중대재해로 세상을 떠난 지 34일째를 맞았다. 동국제강측은 “최선을 다해 유족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선임해 소송에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고용노동부 정기감독에서 23건의 법위반 사실이 적발돼 과태료가 부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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