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보건의료·돌봄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노동자들은 ‘영웅’ 칭호를 얻었다. 노동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보건의료 인력은 태부족이고 돌봄노동자들은 저임금·고용불안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노동자 불안은 서비스 수혜자인 국민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대선후보에게 묻는다. 국민 모두가 안전한 의료돌봄서비스를 누릴 방안은 없을까.<편집자>

최지영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동산의료원분회 교육부장
최지영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동산의료원분회 교육부장

의료기관이 돈을 벌고자 마음먹는다면 그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원하는 만큼 값비싼 의료수가를 책정하기만 하면 된다. 당장 치료가 급한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돈을 마련해야 할 것이므로, 그 방법은 매우 잔인하지만 효과적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의료수가를 책정해 병원에서 그 이상의 수가는 지정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고,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과잉진료가 이뤄지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으며, 보건의료 시민단체 차원에서도 영리병원의 설립을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다.

이렇다 보니 병원측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병원은 대형화돼 가고, 운영비용은 높아지는데 환자 한 명당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나라에서 제한을 하고 있다. 마음대로 수가를 책정할 수 없으니, 병원은 내부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때 대기업에서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구조조정이었듯, 대기업화된 병원들도 그에 맞춰 인력조정을 단행했다. 의료는 결국 사람의 손이 필요한 ‘산업’이다. 운영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이니, 이것을 절약해야 수익을 더 낼 수 있다는 산술적인 계산은 당연했을 것이다. 병원은 의료전문성이 필요 없는 보조부서부터 야금야금 비정규직화와 외주화를 진행했고, 그 범위는 점차 확대돼 오늘날에는 현장 깊숙한 내부부서에서도 어렵지 않게 비정규직 동료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비정규직으로 채용돼 더불어 일하는 이들의 업무는 정규직의 업무와 다르지 않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들은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근무 일수가 제한돼 있고, 급여체계를 비롯한 처우도 차이가 있다. 비정규직의 활용은 병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방법이었을 터, 사람을 중요시해야 하는 의료현장에서 사람을 졸라매어 이득을 내고 있는 셈이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료현장에 끼워진 한 조각 톱니바퀴처럼 쉽게 끼워졌다가, 쉽게 교체된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원칙은, 병원에서야말로 크게 의미가 없다. 의료기관이 의료산업기관으로 변질돼 가는 과정에서도 ‘헌신’과 ‘봉사’의 이념은 기가 막히게 내세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하는 의료종사자들이 급여나 처우 같은 세속적인 명목을 입 밖에 내는 것은 불경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노동 3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하소연할 데 없이 제 쓸모를 다하다가, 계약기간이 되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작별을 고한다.

비정규직 확대는 비단 고용불안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간 덕분에, 1년10개월마다 반복되는 이른바 “교체”는 의료현장의 전문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현장업무에 익숙해지려면 누구나 교육과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교육기간 동안 신규 비정규직 직원에게 교육할 인력과 시간을 안배하지 않고 저절로 현장이 잘 굴러가길 바란다. 처음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기에 이 기간에 업무미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다. 어떻게든 인건비를 절약하고자 하는 산술적 경영방식은 전문성이 생명인 의료현장에 주기적 업무미숙 기간을 발생하게 하고, 이에 대한 대가는 다름 아닌 환자가 치르게 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마땅하다.

코로나 전에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비정규직 채용확대 문제는 코로나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환자의 증감이 분명하고 예측불가인 점 때문에 코로나 관리인력을 조절하기 어려워진 병원에서는 비정규직 채용카드를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경제논리에 따라 운영하는 병원에 자율을 허락하기 보다는, 공공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국가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의료연대본부가 지난 1월 진행했던 대선후보 정책질의에서 병원 비정규직 사용제한에 대한 후보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동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부분 동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반대 입장을 표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답을 하지 않았다. 반대 입장을 표했던 안철수 후보는 말미에 “병원에는 다양한 직종이 존재하므로,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가 아닌 경우까지는 정규직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안철수 후보의 뜻이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는 정규직화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이길 바란다. 병원 안에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가 아닌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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