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통상임금 2차 구간 개별소송 대응팀이 지난 11일 통상임금 개별소송 1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회사의 임금체계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두 번째로 제기한 통상임금 집단소송에서도 사실상 승소했다. 대법원이 2020년 8월 사측의 신의칙 주장을 배척하고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판결(1차 소송) 이후 나온 첫 법적 판단이다.

법원은 휴게시간·중식시간·인정야간근로시간(21시~22시)·하기휴가기간도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재산정의 기초가 되는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근로기준법에 ‘실근로시간 기준’이 없으므로 노사가 합의한 규정에 따라 근로시간을 적용해 법정수당을 산정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판시했다. 향후 유사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마은혁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기아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A씨 등 2천366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2년9개월 만의 1심 결론이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노동자들은 약 424억원(1인당 1천795만원)의 미지급 임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쟁점 ① 대표소송 취하시 개별소송 가능

이번 소송은 노사가 합의한 ‘대표소송’과 별도로 진행된 ‘2차 개별소송’이다. 기아차 노동자들 2만7천400여명은 2011년 회사를 상대로 1차(임금청구 대상 기간 2008년 8월~2011년 10월) 소송을 냈다. 이 과정에서 소송 참가 인원이 많아 소송이 지연되자 노사는 2차(2011년 11월~2014년 10월) 소송에 대해 2014년 대표소송을 진행해 선고 결과를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대법원은 2020년 8월 1차 소송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13명의 대표자를 선정해 2차 소송(대표소송)이 진행됐지만, 2심에서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되자 노사합의에 따라 노동자들이 2019년 3월 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A씨 등 2천366명은 대표소송에 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정하는 ‘부제소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2019년 5월 2차(2011년 11월~2014년 10월) 소송을 냈다. 회사는 이들에게는 소 취하에 따른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사측은 대표소송 이외에 개별소송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노동자들이 어긴 것이라며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노사합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신의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대표소송 진행 중에 소송을 취하한 경우 ‘개별소송’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쟁점 ② 근로시간 인정은? 노사합의 따라야

재판에서는 1차 소송에서 불인정되거나 다퉈지지 않았던 ‘휴게시간·중식시간·인정야간근로시간·하기휴가기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노동자측은 근로기준법이 ‘근로시간’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재산정시 당사자들이 합의한 근로시간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기법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법정수당의 요소 중 하나로 정하고 있을 뿐, 실근로시간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근기법 56조는 연장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50%를 가산해야 한다면서도 휴일·야간 근로시간의 산정방법에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사측은 ‘실제 근무한 시간’을 토대로 수당을 산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휴게시간·중식시간·인정야간근로시간(21시~22시)·하기휴가기간 모두 근로시간에 포함돼야 한다며 노동자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다. 노사합의로 시간외근무시간을 인정해 왔다면 사용자는 실제 근무시간이 합의한 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유로 근무시간을 다퉈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회사의 ‘근태관리규정’에 따라 휴게시간 근무시간의 1배와 중식시간 근무시간의 2배를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또 21~22시까지로 정한 야간근로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하고, 하기휴가기간도 휴일근로시간에 넣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1차 소송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1차 소송의 경우 휴게·중식 근로시간의 1배만을 근로시간에 포함했지만, 이번 소송에서는 실제 근무한 휴게·중식시간에 제외한 나머지도 1배만큼 추가로 포함시켜 법정수당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테면 1차 소송 결과에 따르면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일했을 경우 1시간분의 연장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이번 판결에 따르면 근태관리규정에 따라 2시간에 해당하는 연장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쟁점 ③ 소멸시효 완성 사측 주장 ‘배척’

임금채권 권리행사가 3년이 지나 시효로 소멸했는지도 쟁점 중 하나였다. 사측은 노동자들이 임금청구 기간인 2011년 11월~2014년 10월을 넘긴 시점인 2019년 5월 소송을 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사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대표소송 진행에 따라 개별소송이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자들은 대표소송 기간 개별적인 소송을 내지 않았다.

한편 상여금에 대해서는 1차 소송과 동일하게 통상임금으로 봤다. 재판부는 1차 소송과 마찬가지로 명절·하기휴가 상여금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 고정 임금이라고 판단했다. 회사가 연장·야간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상여금을 전부 지급한 점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다만 1차 소송에서 쟁점으로 다뤄진 노조 전임자의 수당 부분과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한 신의칙 주장에 대한 판단은 이번 소송에서 빠졌다.

노조 “불필요한 소모전 중단하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지부장 홍진성)는 선고 직후 성명서를 내고 “회사는 2차 개별소송의 1심 판결을 즉각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지부는 “통상임금 1차와 2차 개별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지만, 2019년 3월 사측의 기만적인 통상임금 합의와 거짓으로 2만6천284명의 조합원이 소 취하를 하면서 사측은 5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착취했다”며 “사측은 조합원을 기만하는 행위와 노사 간의 불필요한 소모전을 즉각 중단하고 체불임금을 즉시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측의 전향적인 수용이 없다면 통상임금 소송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단체협약 등에 따라 근로시간으로 인정된 ‘휴게시간·중식시간·인정야간근로시간·하기휴가기간’도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재산정의 기초가 되는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는 판결”이라며 “이른바 ‘취사선택 금지의 법리’를 ‘근로시간’에 대해선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법리 적용의 한계를 밝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통상임금 2차 구간 개별소송 대응팀이 지난 11일 통상임금 개별소송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통상임금 2차 구간 개별소송 대응팀이 지난 11일 통상임금 개별소송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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