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이 대법원에서 노동자 일부 승소로 판결나면서 9년 만에 마무리됐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반환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사측의 주장을 하급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휴게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시해 기아차와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는 사업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기아차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노동자 2만7천500여명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재산정해 미지급분을 지급해야 한다고 2011년 소송을 제기했다.

2심 판결 이후 노사가 통상임금 지급에 합의하면서 대부분 소가 취하됐다. 상고심은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노조원 약 3천500여명에 대해서만 진행됐다. 소송 참여자가 줄어들면서 기아차 사측이 지급해야 할 임금은 원금과 지연이자를 합해 약 5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임금청구로 기업 존립 위태롭지 않아”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기아차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청구가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의칙이란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에 상대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민법상 원칙이다. 사측은 사건 청구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해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해 왔다. 대법원은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 등의 사정을 고려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한국지엠·쌍용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각에서는 신의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신의칙 항변의 인용여부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도 주된 쟁점 중 하나였다. 기아차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에 따라 2시간마다 10분간(야간근무 시에는 15분) 휴게시간을 가져 왔다. 사측은 근로시간을 계산할 때 이러한 휴게시간을 빼고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고측 대리인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기아차와 유사하게 휴게시간을 운영하는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의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임금체계 개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금체계 개편·장시간 노동 해소 계기돼야”

이번 판결은 진행 중인 다른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1차(2008년 8월~2011년 10월), 2차(2011년 11월~2014년 10월), 3차(2014년 11월~2017년 10월·2017년 11월~2019년 3월 병합)로 나눠지는데 이번 판결은 1차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2차와 3차 소송은 1심에 계류돼 있다.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가 3년이라 구간을 나눠서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본지 2020년 5월7일자 9면 ‘끝나지 않은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참고>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3월 상여금 통상임금 지급방안을 합의했다. 1차 소송분에 대해서는 개인별 2심 판결금액의 60%(정률)를, 2차와 미제기구간에 대해서는 800만원(정액)을 지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송 당사자 가운데 3천500여명은 소송취하와 부제소합의 동의서 작성 등을 거부하고 소송을 이어갔다. 2천300여명은 대응팀을 꾸려 지난해 5월 2차 구간에 대한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2차 구간 개별소송 대응팀 관계자는 “2차 소송의 경우 체불임금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며 “그런데 최근 재판부가 변론재개 결정을 한 것을 보면 부제소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기아차 노동자는 기본급이 낮아 특근잔업을 해야 하는 임금구조 탓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왔다”며 “이번 판결이 통상임금이 정상적으로 반영되는 임금체계 개편으로 이어져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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