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노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택배노조(위원장 진경호)가 CJ대한통운에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달 28일 파업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노사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택배노동자 20여명이 연이어 과로로 숨지며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인 분류작업에서 택배노동자를 완전히 배제하기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합의 이행 시점인 이달 1일 이후에도 현장 곳곳에서 여전히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과로방지와 처우개선을 위해 쓰기로 한 택배비 인상분도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설연휴를 눈앞에 두고 장기투쟁을 준비 중인 진경호(59·사진) 위원장을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노조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천600명에서 1천900명으로 파업참여 늘어”

- 파업 31일째다. 현장 상황은 어떤가.
“1천650여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파악한 바로는 1천880여명으로 늘었다. 쟁의권을 확보한 조합원은 1천500여명이고, 나머지 인원은 공정거래위원회 택배표준약관에 따라 개선을 요청했는데 아예 집화 제한을 걸면서 사실상 파업상태에 놓인 이들이다. 수입감소를 감수해야 하는데도 파업 참여가 늘어났다. 이례적인 일이다.”

100명의 단식단은 지난 25일 단식을 중단했다. CJ대한통운이 대화에도, 노조가 파업철회 조건으로 제시한 택배비 인상분 검증에도 응하지 않으면서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분류작업 수수료 지급 여부와 소급적용을 두고 우정사업본부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단식을 했던 노조 우체국본부도 재정비를 한다. 진 위원장은 “26일 상시협의체를 통해 설 이후 임금교섭에서 다루기로 합의하고 청와대도 지원·개입에 나서면서 단식 중단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 배송 차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노조가 없는 곳은 20~25% 정도, 조합원이 밀집한 곳은 37%까지 감소했다. CJ대한통운이 내린 공문을 보면 설 특수기 택배물량 감소로 인해 허브터미널을 내일까지 가동하기로 했다가 오늘(27일) 마감하기로 했다. 물량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거다. 이게 어디서 감소한 건지가 중요한데 대리점과 CJ대한통운 집화물량이 6 대 4 정도다. 20~30% 빠진 물량은 거의 대부분 대리점이 계약한 것이다. CJ대한통운 입장에서는 대리점에 떠넘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거다.”

- 파업이 장기화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J대한통운이 대화를 하지 않고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CJ그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비둘기파’로 불리는 그룹 내 노무담당 임원들을 정리했다. CJ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전면화했고 가장 큰 걸림돌인 노조를 ‘손보겠다’는 계획하에 지금의 사태가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만개 물품 확인해 보니 택배비 242원 올라”
“분류작업 제외, 돈 달라는 게 아니라 장시간 노동 해소”

- 핵심 쟁점은 택배비 인상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다.
“CJ대한통운이 지난해 4월 250원을 인상했다. 노조가 최근 20만 박스에 대해 택배요금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월 대비 연말에 242원정도 오른 것으로 확인된다. CJ대한통운에서 실제로 오른 금액은 140원이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른 거다. 올해 또 100원을 올렸다. 인상분 가운데 CJ대한통운이 대리점에 보낸 내용을 보면 분류비용으로 58.1원, 사회보험료로 18.6원을 대리점에 지급한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인상분 170원 중 분류비 150원, 사회보험료 20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250원에 이어 100원을 올리고 76.7원만 주겠다는 거다.

CJ대한통운은 140원이 올랐고, 이 중 50%가 택배기사 수수료로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56원, 올해 100원 별도요금 책정으로 수수료 구간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실제 배송수수료는 5~7원 정도 오르고 집화의 경우에도 20원가량 오른 정도다. 한 발 양보해서 검증을 받자고 제안했는데 이조차도 응하지 않고 있다.”

- 국토교통부가 사회적 합의 이행 상황을 점검한 결과 ‘양호하다’고 판단했다.
“국토부 점검 결과는 ‘양호하다’ ‘완벽한 개인별 분류를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두 가지가 핵심이다. 택배비 인상분 배분 문제를 검증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논외로 한다고 해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지난해 6월 사회적 합의 이후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준비기간이 있었다. CJ대한통운이 58.1원만 분류비로 대리점에 지급하면 분류인력이 10명 필요한 곳에 7명만 투입되거나 적정시간에 비해 적게 투입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까대기’가 여전히 택배기사들 몫이 되는 거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국토부 발표를 보더라도 72%는 여전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대신 분류비용을 보전받는다. 그런데 애초 분류작업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는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었다. 오후 한두 시까지 분류작업을 하다 보면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해 택배기사의 작업범위에서 분류작업을 배제해 달라고 한 거다.”
 

▲ 전국택배노조
▲ 전국택배노조

“장기전 돌입할 태세 갖췄다”

- 26일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회가 조합원 영상을 공개하며 논란이 됐다.
“고객의 물품을 훼손한 조합원에 대해서는 노조 차원에서도 조사를 했고 현재 계약해지가 된 상태다. 이는 이번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다. 다른 영상은 개선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개선요청은 비조합원이나 대리점주가 대체배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물품을 차거나 고객의 물건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긴급지침을 다시 한번 내려서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6일 택배노조 파업을 언급했다.
“이재명 후보가 노동공약을 발표하는 현장에 인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갔고,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 후보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겠다며 ‘합의된 내용이 지켜지지 않아서 이 추운 겨울에 피켓 들고 저렇게 택배노조가 뛰어다니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진전된 입장으로 평가한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모델로 사회적 합의가 거론되는데, 합의를 해도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 것으로 악용한다면 누가 이제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하려고 하겠나. 최선의 모델이라고 칭해진 지난해 6월 도출한 합의가 최악의 모델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 앞으로의 투쟁계획은.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키는 이재현 회장이 쥐고 있다고 본다. 자택 앞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이고 2월11일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파업 장기화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로 이탈률이 높아지고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조합원들 개개인이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설 이후에는 이를 개인의 의지가 아닌 집단적·조직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거다. 서비스연맹이나 타 택배사 조합원들이 돈을 빌려주고 노조가 채권을 보증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아르바이트도 할 거다. 회사도 오케이한 상태다.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고 설 이후에도 힘차게 싸울 것이다.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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